사실 경부고속도로의 이곳 휴게소는 막상 가보니 허탕이었습니다. 프랜차이즈 자본이 들어오면 상대적으로 중소 업체가 판매하는 먹을거리 매출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그곳은 한 중견 회사가 모든 매장을 직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회사가 모두 직영하므로, 우동 가게 하나 혹은 라면 가게 하나 문을 닫는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돌아갈 피해는 크지 않습니다. 직영하는 회사의 전체 매출이 조금 변할 뿐이지요. 그런 휴게소가 40% 정도 된다고 합니다. 거기가 직영이라는 것도 모르고 고속도로를 100km 넘게 달린, 왕복 200km를 넘게 질주한 허탈함. 힘은 쭉 빠지는데, 휴게소장 이하 직원들은 허탕 쳤다고 솔직히 말해줘도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취재진은 달랑 2명입니다. 취재기자와 촬영 VJ. 휴게소의 대언론 경계 근무를 하는 사람은 3명이었는데, 배터리 방전 사태의 해결을 무작정 기다리고 있노라니, 이제 롯데리아 매장 직원까지 출동해 경계 근무에 동참했습니다. 롯데리아 간판이 방송에 나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왜요? 자기도 모른다고, 본사 방침이라고 했습니다. 대전 지점 직원이 고속도로 타고 멀리도 온 것 같았습니다. 여차저차 트렁크에서 카메라를 겨우 꺼내고, 간판이 일렬로 늘어선 유리창을 VJ가 찍으려는 순간, 롯데리아 직원 한 명이 몸으로 ‘롯데리아’ 글자를 광속으로 가렸습니다. 대단한 스피드. 왜 그런 몸이 피곤한, 준수 불가능한 방침을 하달 받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건 도저히 제작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도로공사 홍보실을 통해 기획 의도를 설명하고, 휴게소 촬영 협조를 정식으로 받았는데, 되려 정식으로 경계하는 분위기. 다음날 영동고속도로의 한 휴게소를 갈 때는 정직하게 들어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같이 경계하는 식의 취재를 해줘야 맞는 것 같았습니다. SBS 로고가 커다랗게 박힌 차량이어서 정직하지 못한 데도 한계가 있었지만, 일단 차량을 휴게소 출구 쪽, 그러니까 화장실에서 가장 먼 쪽에 대고, 기자와 VJ만 바로 내렸습니다. 그리고 카메라 없이, 몸만 휴게소로 쏙 들어갔습니다.
프랜차이즈 커피와 대형 햄버거 가게. 휴게소 한 구석에는 일반 커피 매장이 있었습니다. 무작정 그곳에 가서 사장님을 찾았습니다. 이틀에 한 번 오신다는 젊은 사장님이 마침, 운명처럼, 그날, 그 시간에 가게에 들렀습니다. 사장님이 서울에서 그 먼 휴게소에 들렀을 때, 취재진이 딱 찾아간 건 행운입니다. 게다가 기획 의도에 대한 설명을 찬찬히 들으시고, 정식 인터뷰를 허락해주신 것도 복이었습니다. 해당 매장은 휴게소에 수수료를 내고 입점한 업체여서 말하기에 껄끄러운 얘기일 수 있습니다. 대형 프랜차이즈와 경쟁하기 버겁다는, 아주 일반적인 얘기도요. 아무튼 이제 카메라가 필요했습니다. 장비를 가져오라고 한 뒤 카페에서 기다렸습니다.
이 휴게소의 대응도 경부고속도로에서 그랬던 것처럼, 빛의 속도였습니다. 카페 사장과 얘기하는 와중에 걸려온 전화만 대여섯 통. 휴게소 직원들이 건 전화입니다. 로고 달린 취재 차량은 휴게소에 들어왔는데, 취재진이 도대체 안 보이니, 직원들은 환장할 노릇, 멘붕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이전 휴게소에서 취재진이 떠나면, 휴게소 측이 도로공사에 보고를 하고, 도로공사는 다음 목적지 휴게소에 미리 연락을 취해놓는 시스템인데, 차만 덜렁 있고 사람이 없으니, 아마 취재진들 엄청 찾아다녔을 것입니다. 뭐 안 좋은 것 찍는 거 아닌지 무척 걱정했겠지요. 그게 아니라고 해도 믿어주지를 않으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동료가 카메라를 가져오고, 카페 사장에게 마이크를 채울 때, 그러니까 3~4분 정도나 지났을까, 휴게소장이라는 사람이 드디어 취재진을 찾아냈습니다. 그는 어렵게 찾아냈다는 생각에서인지, 무례하게도, 취재진이 카페 사장과 인터뷰를 하기 직전 덥석 끼어들어 명함을 내밀려고 했습니다. 불쾌했고, 거절했습니다. 조금 비켜달라고 했습니다. 인터뷰이가 하고 싶은 말을 100% 할 수 없고, 뭔가 조절하고 내부 통제하면서 얘기할까봐 걱정됐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취재 차량이 휴게소 구석에 주차한 뒤 5분도 안 돼서, 직원들 몇몇이 몰려와 차량 주변을 서성였다고 합니다. 아마 경계 근무하러 왔겠죠. 취재차량 기사 분도, 그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휴게소장에게 '발각'(?)되면서, 취재의 자유는 그렇게 종을 쳤습니다. 역시 웃음을 곁들인 경계 근무가 시작됐습니다. 직원 3명이 취재진 2명을 밀착 마크했습니다. 어디서 뭘 찍나, 안내가 아닌 동태 파악이 계속됐습니다. 뭐든 찍을 수는 있었지만, 단 하나, 휴게소에 수수료를 내고 매장에 입점한 중소 상인들을 자유롭게 만나볼 수가 없었습니다. 골목 상권으로 얘기하면, 동네 빵집 영세한 사장들입니다. 프랜차이즈에 밀려 매출이 뚝뚝 떨어지는 우동집 사장님, 라면 가게 아줌마, 김밥집 사장님의 진솔한 얘기가 못내 아쉬웠습니다. 속 깊은 얘기가 실종됐습니다.
영동고속도로의 다른 휴게소 한 곳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 갈 때는 로고 달린 차량이 드러나지 않도록, 아예 휴게소 출구 쪽 고속도로변에 내린 뒤에, 휴게소에 카메라 없이 걸어 들어갔습니다. 매장에서 우동집 아주머니한테 사장님과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부른 건 또 휴게소 직원! 휴게소 측에서 매장마다 단속을 세게 해놓은 모양이었습니다. 취재진은 울상이 돼서 카메라를 돌렸고, 2시간여 동안 경계 태세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직원 3명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습니다.
롯데리아 직원은 여기서도, 롯데리아 간판의 'L' 자도 촬영해선 안 된다고 취재진에게 엄포를 놨습니다. 본사 직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남성은 취재진에게 롯데리아 간판을 찍었는지 안 찍었는지 테이프 '원본 확인'까지 요구했습니다. 무슨 엄청난 고발 뉴스를 제작하러 간 것도 아닌데, 촬영 테이프 원본을 보여달라니, 황당할 따름이었습니다. 국가 보안 시설을 촬영한 것도 아니고, 휴게소에 볼일 보러 온 사람들 다 볼 수 있는 간판을 말입니다. 혹시... 롯데리아로 위장한 국가 정보 기관? 이었다면 미안합니다. 아무튼 무서운 엄포에 삼엄한 감시에, 프랜차이즈에 밀리고 있는 휴게소 우동집 사장님은, 또 못 만났습니다. 물론 방송할 때는 그 부분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이 경계심, 그 근원은 무엇인지, 취재하면서 내내 궁금했습니다. 저희 갑니다~ 미리 얘기를 해서 그런가? 서울 올라가는 길에 시험 삼아, 아무 휴게소 한 곳을 그냥 들어가봤습니다. 배터리가 방전돼 전원도 안 켜지는 카메라를 들고 우동집 앞에서 찍는 시늉을 해봤습니다. 두어 컷 정도 찍는 척 했을까. 어디선가 직원 3명이 숨이 차도록 헐레벌떡 뛰어왔습니다. 누군가 실시간으로 보고한 모양. 저희한테 취재 나온 거냐고 따졌습니다. 배터리 떨어져서 시험해보는 거라고 했더니, 그때부터 취재진 주변을 뱅뱅 맴돌았습니다. 한 여직원은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듯 했습니다. 언론에 대한 반응 속도는 역시 대단했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지금껏 가본 그 어떤 곳보다도 방송 카메라를 과도하게 경계했습니다. 과민 반응했습니다. 그 경계심은 아마도, 비위생적인 먹을거리 등 부정적인 내용으로 끊임없이 언론에 오르내린 피해 의식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설이라는 휴게소 대목을 앞두고, 방송 한 번 잘못 나갔다간 매출 반토막 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작용했을 것 같습니다. 도로공사에 기획 의도를 아무리 투명하게 설명해도, 그런 뿌리 깊은 경계심과 위기감을 누그러뜨리기엔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뉴스 카메라에 대한 그들의 반사적이고 재빠른 반응을 보면, 고속도로 휴게소는 아직도 보여주지 못할 부분들이 많이 있구나, 취재할 만한 내용들이 숨어 있구나,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음식 위생 문제, 품질 문제, 입점 수수료 문제, 프랜차이즈 영업 방식의 문제들... 촬영에 협조는 하지만, 조리대 쪽은 찍지 말라는 직원들 말도 떠오릅니다. 이번에는 며칠 전부터 도로공사 협조를 받아 휴게소를 방문했지만, 사실 언론이 고발성 강한 뉴스를 제작할 때는, 도로공사 같은 정식 루트를 거치는 일이 많지 않다는 사실, 또 미리 연락하고 찾아가는 일은 흔치 않다는 사실, 휴게소 측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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