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황당한 일을 겪는 주민은 이 할머니뿐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 사는 40대 제보자의 사정은 더 딱했습니다. 이 제보자는 지난달 관리비가 63만 원이 나왔습니다. 평소보다 무려 30배나 많은 액수입니다. 어려운 경제사정에 예정돼 있던 수술까지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관리비는 30배나 나왔지만, 정작 관리는 엉망이었습니다. 난방은 물론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제게 도와달라고 하소연했습니다. 과연, 왜 이렇게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까요?
“남은 세대가 이사 간 빈집 관리비까지 내라.”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재건축을 앞두고 주민 다수가 이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아파트 입주민대표가 남은 세대에게 이사 간 가구의 관리비까지 모두 부담을 시켰기 때문입니다. 남은 세대가 이사 간 빈집 관리비까지 내게 되면서 관리비 폭탄을 맞은 것입니다. 입주민대표는 이사 간 주민이 실제 살지 않은 아파트 관리비를 부담하는 건 공평하지 않다며 자체적으로 그렇게 하기로 의결했다고 했습니다. 과연, 이 아파트의 관리비는 누가 내는 게 맞을까요?
빈집이 없는 때를 가정해 만든 관리비 규정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아파트 관리비 부과 규정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아파트 관리비는 ‘아파트 관리 규약’이라는 규정에 따라 주민이 협의해 관리비 부과장식을 정하게 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파트 관리비 부과방식은 법적으로 정해진 게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파트마다 난방방식(중앙난방식/개별난방) 등 운영체계가 모두 달라서 천편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규정이 빈집이 없는 평상시를 가정해 만들어진 제도라는 점입니다. 평소에는 빈집이 없어서 전체 관리비를 세대 수로 나눠내도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재건축이 진행되면 이사 가서 빈집이 생기게 되는데, 이때 관리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 명확한 기준이 없습니다. 간단하게 보면, 한날한시에 모든 세대가 동시에 이주하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가정입니다. 이사 갈 집을 못 구했다든지, 집 주인이 전세금을 안 준다든지 혹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사를 늦게 가게 되는 경우가 어쩔 수 없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사 간 세대와 남은 세대에게 관리비를 어떻게 물릴지 논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건축 시행 초기, 그러니 이사 가지 않고 남은 세대가 많을 땐 ‘모든 세대가 관리비를 나눠내자’ 이런 주장이 힘을 얻겠지만, 재개발이 임박해져 남은 세대가 적을 땐 ‘남은 세대에게 부과하자.’ 이 같은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관리비를 30배씩 더 내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서울 아파트 단지의 2/3가 겪게 될 문제
그럼, 지금까지는 이런 논란이 크지 않았던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건축으로 기대되는 경제적 이익이 추가로 나오는 관리비보다 훨씬 더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민은 재건축을 통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대의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 주민에게 관리비 수십, 수백만 원은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재건축에 들어간 아파트 단지가 많이 않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 됐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근 재건축이 지지부진해지며 실제 시공까지 기간이 길어지며, 이런 재건축 아파트 관리비 문제가 조금씩 회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이런 일을 겪게 될 아파트 단지가 한두 곳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서울 아파트 단지의 3분의 2, 그러니까 약 250여만 가구가 앞으로 10년 안에 재건축 대상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누구도 이 관리비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됩니다. 한 세대가 수십만 원씩 관리비를 더 내게 된다고 해도,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그 액수는 최소 수천억 원이 넘게 됩니다.
재건축 심사 항목에 ‘관리비 부과 항목’ 명기 해야
해결책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재건축을 심사할 때 관리비 부과 항목을 해결하도록 명시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재개건축을 신청할 때 우리 아파트 단지는 관리비를 어떻게 부과하겠다고 자체적으로 결정해서 그 내용을 명시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재건축을 진행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주민이 협의를 거쳐 문제를 해결해서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라인홀드 니부어는 저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 사회’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사람들도 사회 내의 어느 집단에 속하면 집단적 이기주의자로 변모한다.” 이 주장을 관리비 문제를 놓고 보면, 개인적으로는 관리비를 어느 한쪽만 내도록 하는 게 부당한 일인 줄 알지만, 내가 그 집단에 속하면 이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따라서 니부어는 이렇게 집단 대 집단이 부딪히는 문제는 개인의 이성에 맡겨두지 않고, 구체적인 제도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가 니부어의 조언에 귀 기울여 할 이유입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