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살 김 모 씨는 노트북을 갖고 다니며 일합니다. 해외에서 의뢰를 받고, 인천 가좌동 수출단지로 출근 합니다. 의뢰인을 만나면 노트북 프로그램을 가동합니다. 프로그램으로 전자기기의 숫자를 그가 원하는 숫자로 바꿔줍니다. 숫자 바꾸는 데는 3분이면 충분합니다. 기기를 떼었다 부착하는 시간까지 15분이면, 의뢰를 받은 제품의 가치는 1천만 원 정도 뜁니다.
하지만, 김 씨에겐 사람들이 달리 불러줄 만한 직업명이 없습니다. 기술도 배우고 프로그램이 담긴 노트북도 사서 기술을 익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자동차 관리법 위반 혐의가 늘 따라다닙니다. 경찰에게 김 씨는 중고차 주행거리 조작꾼일 뿐 입니다.
프로그램만 있으면 3분 만에 새 차로
김 씨는 지난달 말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중고차 주행거리를 조작해 온 일당 가운데 핵심 인력입니다. 과거엔 장한평 중고차 매매단지가 활동무대였는데, 2년 전 인천으로 일터를 옮겼습니다. 해외로 나가는 중고차에 주행거리 조작을 하는 일당과 연이 닿은 겁니다. 인천 남동경찰서가 조사해 봤더니, 최근 열 달 간 중고차 1천 5백여 대의 주행기록을 낮췄습니다. 국산차는 한 대 2만원을 받고, BMW같은 외제차는 60만 원까지 받았답니다.
김 씨 같은 전문 조작꾼도 초기 자본이 필요합니다. 현찰로 딱 2천만 원. 이 돈으로 프로그램 공급책으로부터 노트북을 사야합니다. 값은 비싼데 노트북은 10년 전에 나온 ‘삼성 센스’입니다. 2천만 원은 노트북에 든 조작 프로그램 값입니다. 공급책들은 복제나 공유가 안 되도록 구형 노트북에만 프로그램을 장착해 판매합니다. 노트북엔 다른 입출력 장치가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의 칩에만 연결할 수 있는 입력장치 단자만 달려있습니다.
이 단자 끝엔 집게가 달려있습니다. 차량 계기판을 뜯어보면 거의 모든 차량이 똑같이 생긴 주행거리 칩을 씁니다. 주행거리를 인식, 조작하려면 칩에 딱 맞는 집게형 기기가 필요한 겁니다. USB도 넉 줄짜리 동판과 동판이 닿아서 데이터가 인식되듯, 이 조작 집게도 칩의 동판부분과 닿아서 데이터를 인식합니다.
집게를 꽂으면 프로그램은 차량의 주행거리를 인식합니다. 취재를 하면서, 그 다음엔 엔터키나 방향키로 숫자를 낮추면 될 거라고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원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행거리 칩의 수치를 바꾸려면 일종의 코드가 필요합니다. 주행계기판에선 가령 주행거리 ‘17,856km’는 숫자 다섯 자리가 아니라 ‘FB6G’라는 코드로 인식됩니다. 조작꾼 역시 이 코드표를 보고, 자기가 원하는 숫자 옆에 적힌 코드를 입력해야 합니다. 접속하고 코드표를 본 뒤, 입력하면 조작은 완성입니다.
조작된 중고차는 매일 쏟아진다
조작된 차는 어디로 갈까요. 어느 나라에서 이런 조작된 한국 차를 원하는 걸까요. 중동과 러시아가 주된 수입처입니다. 김 씨가 주로 거래한 중동브로커는 압둘라라는 인물입니다. 경찰이 압수한 김 씨의 수첩엔 압둘라 2만원, 로자 3만원 같은 단어가 많이 적혀있습니다. 일종의 외상장부인 셈입니다.
김 씨가 조작한 차는 대부분이 수십 만 킬로미터를 달린 중고 택시였습니다. 소나타나 로체 같은 기종은 40만 킬로미터짜리 중고차 값과 10만 킬로미터대 차 값이 천 만원 정도 차이가 납니다. 중동 중고차 소비자가 고스란히 손해를 보는 겁니다. 압둘라나 로자, 김 씨 외에 한국인 중간브로커가 차익을 챙기는 겁니다.
중고차 주행거리 조작은 너무 흔한 범죄가 됐습니다. 거리 조작이 시세와 직결하는 중고차 시장 특성상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경찰은 김 씨가 가진 유일한 직업이 조작꾼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나이가 41살 이니, 10년 만 ‘종사’해왔다고 해도, 그가 주행거리를 낮춘 중고차가 2만 대는 족히 된다는 얘기입니다. 김 씨 같은 조작꾼은, 조작 프로그램이 담긴 노트북은 얼마나 많을까요. 조작은 너무나 간단하고, 중고차는 매일 쏟아지고, 조작꾼은 벌금만 내면 됩니다. 발본색원은 가능할까요? 조작 프로그램 공급자들을 정기적으로 소탕하지 않으면 영원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취재파일] 중고차 주행거리 조작의 범죄학
꽂고 입력만 하면 끝…매일 쏟아지는 조작 중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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