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의 문제로 끝날 것 같던 이번 사태에 기름을 부은 건 제1야당 비례대표였다. 통일의 꽃으로 불렸던 그녀의 막말 파문은 이른바 '종북 의원' 제명 문제와 맞물리면서 이념 논쟁을 격화시켰다. 이념 논쟁은 선명성 경쟁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불길은 때마침 피 말리는 승부가 펼쳐지고 있던 제 1야당의 당 대표 경선으로 옮겨 붙었다. 야당의 유력 당 대표 후보가 북한 인권법을 정면 비판하면서 마침내 여야 지도부가 직접 붙는 전면전으로 번졌다.
여당은 종북주의 척결을, 야당은 신 매카시즘 분쇄를 외치고 나선 것이다.
◈ 종북주의... 유래는?
'종북(從北)'이란 말은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에서 처음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6년 10월 국가정보원은 이른바 '일심회'라는 간첩사건을 적발했다. 이 사건으로 최기영 전 민노당 사무부총장, 이정훈 중앙위원 등 주요 당직자들이 북한 공작원에게 남한 내부 동향을 수집해 전달한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일부 유죄가 확정됐다.
이후 노회찬·심상정·조승수 등 민노당 내 PD(민중·민주)계열들은 지난 2008년 2월 임시 전당대회에서 편향적 친북 행위에 대한 징계 문제를 제기했다. 진보정당 내부에서 일종의 금기와 같았던 사항이었다. 당시 심상정 비상대책위 대표는 편향적 친북행위자, 즉 일심회 사건 당사자들을 제명하고 북한에 대한 민노당의 독립성을 강조하자는 내용의 혁신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당권파였던 NL(민족해방. 자주)계열 대의원들의 반대로 통과는 무산됐고 민주노동당은 분당의 길을 걷게 됐다.
'종북'이란 말은 이 과정에서 등장했다는 게 일반적 설명이다. 이번 종북 논쟁도 당내 비례대표 부정 경선 의혹을 따지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고 보면 최근의 '종북' 논쟁은 보수 세력이 끌고 나왔다기보다는 오히려 진보정당 내부 문제에서부터 불거진 셈이다. (물론 이후 벌이진 이념공방이 보수 세력과 무관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난 2008년 당시 종북 논쟁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사태로 일단락된 것과 달리 이번 사태는 정치권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국회 내 캐스팅 보트를 쥔 원내 3당이 된 만큼 그 당 내부의 이념 논쟁이 그저 당내 문제로만 끝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연말로 예정된 대선이라는 대형 정치 이벤트도 보수-진보 진영 간 선명성 경쟁을 격화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 매카시즘 ≠ 반공주의
매카시즘하면 반공주의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매카시즘은 단순한 반공주의가 아니다. 우선 우리가 종종 접하는 매카시즘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950년 2월, 미국 위스콘신 주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J. R. 매카시는 워스트버지니아 주 휠링의 여성 공화당원 클럽에서 연설을 했다. 연단에 선 매카시는 종이 한 장을 손에 쥐고 흔들며 "공산당원이거나 간첩 조직원이면서 여전히 국무부에서 일하고 정책을 만들고 있는 205명의 명단이 여기 내 손 안에 있다"고 외쳤다. 이른바 매카시즘의 시작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공고화되던 당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던 미국은 동독과 중국의 연이은 공산화와 소련의 원자탄 실험 성공 등 공산세력의 급격한 팽창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매카시의 주장은 이런 시대적 상황을 자양분으로 미국 전역으로 뻗어 나갔다.
매카시 광풍은 1938년 하원에 설치된 '비(非)미활동위원회'를 중심으로 펼쳐졌는데, 반대파 정치인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공격하는 것은 물론,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과 트루먼 대통령의 '페어딜' 등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진보주의 정책까지 공산주의와 연계시켜 심판대에 올렸다. 예술계와 언론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할리우드 영화계와 방송계의 작가·감독·연예인 가운데 수십 명이 공산주의자라는 멍에를 쓰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일자리를 잃었다. 당시 국무장관 덜레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매카시즘의 공포에 떨었고, 이로 인해 미국의 외교정책도 필요 이상으로 경도된 반공노선을 걷게 되었다. 유력한 정치가나 지식인들도 매카시즘에 두려움을 느끼고 그에게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였다.
◈ 근거 없는 선동 '매카시즘'
매카시는 후일 1950년 연설 당시 자신이 들고 있던 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이 아니라 번스의 편지였다고 말했다. 심지어 자신의 측근들에게 "종이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세탁물 찾아가라는 독촉장일 뿐이었다"는 농담까지 했다고 한다.
트루먼 대통령의 국무장관이었던 제임스 번스는 1946년 한 하원의원에게 편지를 보내 국무부 직원들을 직무평가한 결과, 284명이 재임용 추천을 받지 못했지만 79명만 해고되고 나머지 205명은 여전히 재직 중이라고 썼다. 편지에는 205명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물론 그들이 재임용 추천을 받지 못한 이유가 공산당원이기 때문이라는 내용도 없었다. 매카시는 4년 된 남의 편지를 마음대로 써먹은 것이다.
매카시는 공무원과 육군장교까지 공산주의자로 고발한 사건을 계기로 상원으로부터 견책을 당하고 국내치안분과위원장 직에서 해임되면서 매카시즘도 막을 내렸다. 하지만 5년 동안 매카시 광풍이 미국의 대외적 위신이나 지적 환경에 끼친 손해는 막대했다.
매카시즘의 실체는 '근거 없는 선동'이었다.
◈ 종북주의는 매카시즘이 아니다
선명성 경쟁 속에 당선된 야당 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던진 말은 "박근혜 새누리당 매카시즘에는 단호히 맞서 싸우겠다"였다. 또 "다시는 종북주의 매카시즘 하지 말고 이번 대선을 민생 정책 선거로 임해주실 것을 간곡하게 호소드린다"고도 했다.
야당 대표의 지적이 '종북주의를 앞세워 근거 없는 반공주의 선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라면 모르되 '근거없는 종북주의를 앞세워 반공주의, 즉 색깔론을 선동하지 말라'는 의미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진보적 대북관을 매카시즘이 그랬듯 종북주의라고 몰아붙여도 안 되겠지만 그만큼 종북주의에 대한 비판을 매카시즘이라고 호도해서도 안 된다.
매카시즘은 실체 없는 반 공산주의 선동이다. 하지만 종북주의 비판은 다르다. 그 논란을 촉발시킨 일심회 사건 자체가 대법원에서 일부 유죄로 확정 판결을 받은 사안이다. 또 종북주의 논란의 출발점도 보수정당이 아니라 진보정당 내부다. 적어도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을 공격하기 위해 조작해 낸 억지 프레임은 아니라는 얘기다.
현재 통합진보당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기동부연합이나 종북 주사파 논란은 그 실체를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나라에서 종북주의가 60여 년 전 매카시가 아무 근거 없이 종이 한 장 들고 외쳤던 반 공산주의, 색깔론은 아니다.
◈ 분단을 먹고 자라는 독버섯 '색깔론·逆색깔론'
분단이란 특수 상황 때문에 안보와 직결될 수 있는 이념 논쟁은 우리 나라 국민에게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불안감을 촉발할 수 있는 사안이다. 폭발력이 강한 만큼 판을 뒤흔드는 효과가 있다. 그 때문에 대선 같은 대형 정치 이슈가 있을 때마다 관련 문제가 제기되곤 했다.
정략적 목적을 위해 마녀사냥하듯 누군가를 특정세력으로 몰고 가선 안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존하는 위협일 수 있는 세력까지 정략적 판단으로 덮어주며 이에 대한 반론을 색깔론으로 몰아서도 안 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종북 논란에 대한 실체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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