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 고생을 말할 수 있겠소. 다 말 못하오."
스탈린 명령에 의해 1937년 9월 연해주에서 15세의 나이로 어머니와 함께 카자흐스탄 우슈토베로 강제 이주된 지순옥(90)씨는 지난 2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주 당시에 대한 질문에 첫 마디를 이렇게 힘겹게 열었다.
스탈린은 1937년 일본 스파이 활동의 침투 차단 목적으로 연해주에 거주하는 한인 17만여 명 모두를 카자흐와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시켰으며 그들이 최초 정착한 곳이 우슈토베다.
고려인들은 화물열차로 이주 도중 굶주림으로 많이 사망했으며 정착지에 도착한 그들은 짐승처럼 땅굴을 파고 혹독한 겨울을 나야 했다. 그러면서 또 죽어갔다.
올해는 고려인 강제이주 75년과 한-카 수교 20주년이 되는 해로 카자흐 교포와 고려인들 사이에서 우슈토베 방문하기 행사를 비롯해 그들이 살았던 토굴 복원 및 기념관 건립 문제가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기자가 만난 지순옥 씨는 청각 기관에 약간의 이상이 있을 뿐 당시 기억은 또렷했다. 특히 스탈린 시절의 민족차별과 감시받던 생활을 지금도 두려워하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지씨는 당시 불렸던 수많은 한국 노래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고 지금도 춘향전을 즐겨 읽는다고 했다.
다음은 지씨와의 일문일답.
--강제 이주 당시 연해주에서 떠날 때 상황을 말해달라.
▲ 원동(블라디보스토크) 쁘리모르스키끄라이에 살았다. 1937년 9월 수업 중인 학교에서 집으로 가라고 해서 집에 갔다가 곧바로 어머니와 함께 화물열차를 탔다. 남자들은 그 이전에 밤에 몰래 다 잡아가 여자들만 화물열차를 타고 왔다.
--화물열차 타고 올 때 사정은 어땠나.
▲ 화물칸에 너무 많은 사람이 타 셀 수도 없었다. 그리고 워낙 갑자기 끌려오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 가져온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열흘치 정도의 먹을 것만 갖고 왔는데 아이만 안고 온 사람도 많았다. 열차에서 마실 물도 없어서 빗물과 도랑물을 먹었고 그릇에다 대·소변을 해결했다.
--기차에서 많이 죽었다는데.
▲ 한 달 정도 기차를 타고 왔다. 많은 사람이 오면서 죽었다. 절반 정도는 굶어 죽은 것 같다. 죽은 사람은 화물칸 한쪽에 모아 놨다가 기차가 강을 지날 때 물에 던졌다. 심지어 홍역에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옮을까 봐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목에 돌을 매달아 강물에 던져넣기도 했다.
--강제 이주 후 생활은.
▲ 고려인들이 처음 내렸던 우슈토베는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나는 조금 더 가서 카라간다에 내려 6개월을 그곳에서 생활하다 다시 우슈토베로 왔다. 처음 도착한 카라간다에서는 이주 고려인들이 땅굴을 파고 살았다. 갈대를 베어서 땅에 깔고 덮을 갈대도 없어 그냥 잤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이 많이 얼어 죽었다. 그곳은 소금기가 있는 모래땅이라 갈대가 잘 자라지 못해 50-70㎞ 걸어가 갈대를 베어서 머리에 이고 왔다. 벌판이라 나무도 없었다. 쇠똥으로 불을 때기도 했다.
빵을 배급받는데 아침부터 가서 밤12시에 빵 하나를 타오기도 했다. 점심은 굶었다.
--우슈토베 생활은 어땠나.
▲ 카라간다에서 먹을 것이 없어 고려인이 많이 있는 우슈토베로 38년 5월 1일 왔다. 먹을 것이 없었지만, 고려인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살았다. 강에 물고기가 많아 물고기도 먹고 살았다.
--우슈토베 황무지를 어떻게 일구었나.
▲ (농기구가 없어) 다 손으로 팠다. 손으로 땅을 파서 논을 만들어 벼를 심었다. 밤낮없이 일했다.
--고향(원동)에 가고 싶지 않은가.
▲너무 오래돼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몸이 불편하지 않으면 한국에 한번 가고 싶다.
--하고 싶은 말은.
▲ 이렇게 찾아 준 것이 반갑고 감사하다. 한국 사람들에게 카자흐에 이런 노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전해 주길 바란다.
(알마티=연합뉴스)
"75년전 화물열차로 강제 이주…절반은 굶어 죽어"
강제 이주 고려인 지순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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