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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이러다 붕어빵 장사도 하겠다!"

[취재파일] "이러다 붕어빵 장사도 하겠다!"

'FAUCHON', 'DALLOYAU', 'Vecchia&nuovo', 'Day&Day', 'artisee', 'OZEN'

처음 이 이름들을 듣고는 제가 모르는 해외 의류 브랜드인 줄 알았습니다. 어떻게 발음을 해야 하는지 난감했던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 재벌가 딸들이 운영하는 빵집이라고 하네요. 이름이 워낙 이국적이어서 빵집이 아닌 '베이커리'라고 불러야 더 적절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해외 명품 수입에 열을 올리던 재벌가 자제들. 그런데 왜 하필 빵 사업일까요?

사실 이내들이 왜 이렇게 빵 사업에 잇따라 나서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대부분 해외 유학파라서 해외에서 보던 것을 들여왔을 뿐이다', '여자로서 제빵 사업같이 아기자기 한 사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괜한 자존심 경쟁이 붙은 거다' 등 많은 분석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확한 이유는 자신들만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제빵 사업이라는 특성과 재벌가 자제들이 몸담고 있는 기업집단의 특성에 비춰 이유를 추정해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롯데 신격호 회장의 외손녀 장선윤 씨가 운영하는 'FAUCHON'(포숑). 이 빵집은 프랑스의 유명 베이커리 브랜드인데, 장선윤 씨가 국내 사업권을 따 왔다고 하는 군요. 길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롯데백화점에만 입점해 있기 때문이죠.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의 경우에는 이전에는 한 중소업체가 운영하는 제빵 코너에 이 빵집이 들어섰습니다. 330제곱미터라는 이래적인 규모더군요. 그런데 왜 롯데백화점에만 입점해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백화점에 입점할 수 있었을까요?

                  



'DALLOYAU'(달로와요)와 'Day&Day'(데이앤데이)는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딸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정확히는 신세계 계열사 중의 하나인  조선호텔베이커리에서 운영하는 업체입니다. '달로와요'는 신세계 백화점에 '데이앤데이'는 이마트에 빵을 독점 공급하고 있습니다.

'artisee'(아티제)는 삼성 이건희 회장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계열사인 '보나비'를 통해 운영하는 업체입니다. 삼성 본관 건물에 자리 잡고 있고, 이제는 일반 거리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홈플러스'로 공식 명칭이 바뀐 '삼성홈플러스'와는 합작으로 '아티제 블랑제리'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전국이 홈플러스에 빵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OZEN'(오젠)은 정몽구 현대차 그룹의 딸들이 전무로 있는 해비치호텔&리조트가 운영하는 빵집형 커피숍입니다. 제주 해비치 호텔에 처음 생겼고, 양재동 현대차 사옥에도 들어섰고, 강남 기아차 사옥에도 입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각 빵집이 입점해 있는 곳을 보시면 눈치 채셨을 겁니다. 소위 명당 중에 명당이라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백화점 식품 매장과 대형 오피스 빌딩, 대형 마트와 호텔. 일반 사업자들이 입점하기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인 곳에 새로 브랜드를 만들거나 들여오자마자 입점했습니다.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포숑'과 '달로와요'의 경우에는 백화점에 내야하는 입점 수수료 등이 26% 정도 된다고 하네요. 반면,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업체들의 평균 수수료율이 29%를 웃돌고, 중소업체들의 경우에는 이 보다 많은 32%를 수수료로 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재벌가 딸들이 왜 이렇게 빵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조금 풀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기가 몸담고 있는 기업들의 후광으로, 일방 업체들은 꿈꾸기 힘든 넓고 튼튼한 유통망을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이용할 수 있습니다. 빵 사업과 같은 산업은 소유 유통이 생명이라고 부르지요. 입점을 할 때는 특혜에 가까운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빵 사업은 다른 사업에 비해 규모도 적고, 소비재 산업이다 보니 '위험(risk)'도 훨씬 적습니다. 말 그대로 땅 짚고 헤엄치기입니다.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받고 경영능력을 보이는데 이보다 좋은 조건이 있을까요?

                  


그런데 재벌가 따님들이 무심코 시작했을지 모르는 빵 사업에 공들이는 동안, 개구리인 동네 빵집들은 고사하고 있습니다. 2003년 초 1만 8000개였던 빵집이 작년에는 4000개로 대폭 줄었습니다. 8곳 가운데 1곳 정도만 남은 셈입니다. 요즘에는 빵집 운영하면서 자식을 대학에 보냈고, 시집보냈다는 분들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것의 1차 원인은 물론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의 확장입니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로 대표되는 대기업 빵집은 지난해 각각 3000여 개와 1500개로 둘을 합치면 전국 동네 빵집보다 숫자가 많습니다.  게다가 파리바게뜨의 경우 지난해에만 300개 매장을 추가로 개장했습니다. 매장 위치도 기존 동네빵집 바로 옆이나 바로 앞에 들어서는 경우도 있고, 취재하다 만난 많은 빵집 사장님들에 따르면 동네빵집을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간판을 바꿔달라는 압박도 많이 들어온다고 하네요.

실제로 취재를 나간 서울 홍은2동의 경우 2003년 8개에 달했던 동네 빵집이 이제는 1곳만 남았습니다. 특히, 몇 년 전에 파리바게뜨가 매장을 열면서 인근 20미터 안에 있던 빵집 3곳이 문을 닫았다고 하네요.

그런데 빵집 사장님들은 요즘에는 이런 프랜차이즈 빵집 못지않게 백화점이나 마트에 있는 빵집들도 운영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백화점이나 마트에 쇼핑을 갔다 오면서 빵을 사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그런 사람들이 빵을 아예 사서 오더라는 겁니다.

                  


동네 빵집 사장님들은 "IMF 때 나라가 힘들다고 해서 돌 반지도 내어 놓았다. 그런데 그런 IMF를 불러 온 것이 재벌들 아니었나. 그래서 국민 혈세까지 들이부어 재벌을 살려놨는데, 이제는 내 밥그릇을 빼앗으려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한 마디로 "힘들다고 해서 없는 살림에 살려놓았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한다. 우리도 좀 먹고 살자"는 외침입니다. 이렇게 힘들다보니 취재를 하면서 만난 한 빵집 사장님은 대학생 자녀 둘 중 한 명을 군대에 보내기도 했고, 다른 사장님은 한 명 있던 종업원을 해고 살림만 하던 부인과 둘이서 근근이 영업을 하고 계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 본 책 중에 '상도'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임상옥이라는 주인공은 장사는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며 아무리 힘들어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장사를 마다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큰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래도요. 이런 기업인도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상도(商道)'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작하기보다는 해외에서 잘 될 것 같은 브랜드를 들어오기 바쁩니다. 그리고 돈이 된다면 빵과 두부, 국수까지 가리지를 않습니다. '상생'이라고 앞에서는 구호를 함께 외치지만, 뒤에서의 모습은 딴판입니다. 이러는데 재벌들은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가 있다고 툴툴거리고 있습니다.

한 빵집 사장님은 "이러다 보면 재벌이 돈 된다고 하면, 붕어빵 장사도 하겠다"라고 냉소 섞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럴리야 있겠냐는 생각을 했다가 빵집에 두고, 국수로까지 진출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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