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는 내년 경제전망을 내놓았다. 핵심은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4%대에서 3%대로 낮춘 것. 선진국 경기둔화로 내년 상반기까지는 성장의 힘이 약해지겠지만 하반기부터는 다소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통상 KDI의 경제전망 보고서와 다른 분류가 기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최대 0.3%P 추가 성장이 가능하다는 분석이었다. 즉 세계적인 경기둔화로 우리나라 내년 전망이 다소 하향 조정됐지만 한미 FTA가 예정대로 내년초 공식 발효되면 3.9~4.1%의 성장이 가능해 당초 정부가 예상했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KDI의 보고서가 나온 게 11월 20일. 국회에서 ISD를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한 갈등을 반복하며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국책연구기관의 친절한 전망치, 뭐 그럴 수 있다 생각할 수도 있다.
KDI 측은 교역확대로 인한 소비와 투자 증가 효과를 고려했다며 내년 민간소비가 0.1~0.4%포인트, 설비투자는 0~0.4%포인트, 상품수출 증가율이 0.2~0.4%포인트, 상품수입 증가율이 0.1~0.2%포인트 각각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런 수치가 나온 구체적인 산출근거를 밝히지 않으면서 일부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KDI의 최대 0.3% 포인트 경제성장률 진작이란 결과가 어떤 근거로 나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한-EU FTA 발효 후, EU 국가들의 경기침체 원인도 있겠지만 초반엔 수출도 늘긴 했지만 수입이 훨씬 더 많이 늘어서 대EU 무역수지는 오히려 악화됐다. 즉 FTA로 인한 효과는 보다 장기적으로 봐야 수치 산출이 가능하지, KDI처럼 당장 내년 1년의 효과를 수치화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이 보고서를 발표한 후 KDI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관련 업무를 한 박사가 원장에게 거세게 항의를 했다느니, 사표 내기 일보 직전까지 갈 정도로 갈등이 있었다느니 그런 소문이다. 이유는 아무리 국책연구기관이라도 매년 근거있게 가져가야 할 성장률 전망치에 깜짝 쇼 하듯이 한미 FTA로 인한 효과를 포함하라는 데서 의견이 맞지 않았고, 갈등이 커졌다는 것이다. KDI가 자발적으로 FTA 섹션을 추가하진 않았을 터. 자연히 FTA 경제효과를 강조해서 국회 비준을 이끌고 싶어하는 현 정부의 의도된 작품 아니냐는 소문도 돌고 있다.
뭔가 잡음이 일어나는 배경을 들여다보면 무리수를 뒀을 때가 많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수출 영토 확장을 위해 미국과의 FTA라는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데는 기자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한미 FTA의 효과를 알리기 위해 벌이는 활동을 보면 블필요하게, 과도하게 한미 FTA를 의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례로 정부는 국민의 소비행태 변화 등을 고려해 소비자물가지수 품목을 바꿨다. 예전만큼 안 쓰는 품목은 빼고 많이 쓰는 품목은 포함시켰다. 그런데 여기서도 'FTA'가 등장했다. FTA로 수입이 확대된 것을 고려해 돼지고기와 고춧가루, 포도, 고등어, 마늘 등의 수입산 규격을 추가했다는 것이다. FTA 후 물량 수입이 늘어 물가가 하락하는 효과는 반영하고 싶은 것이다. 한 연구기관 전문가는 수입이 늘어나는 물량이 있으면 그 분량만큼 가중치를 조정하면 되는데 굳이 'FTA 확대를 반영한다'는 문구는 상당히 튄다는 느낌을 줬다고 얘기했다.
특히 이번 물가지수 개편은 올해 소비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줬던 농축수산물, 전월세값 가중치는 줄이는 등 일부 품목 조정에 있어 논란이 되고 있는데, FTA를 앞세우는 듯한 모습이 좋아보일 리가 없다.
FTA 효과, 수출이 늘어 기업은 살고, 수입이 늘어 물가 떨어지고 선택의 폭 넓어져 소비자에 도움된다는 명제를 광고하고 싶은 건 이해하지만 좀 더 요령있게 했으면 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산업연구원, 금융연구원 등 10개 연구기관이 내놓은 "한미 FTA 발효 후 10년간 우리나라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5.66% 증가, 일자리가 35만 개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치는 FTA 효과에 관련된 기사에 이리저리 인용된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그런 거시지표가 별로 와닿지 않고, 지나치게 장밋빛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사람들은 실제로 FTA가 발효되면 내 일자리, 내 밥상, 내 소득은 뭐가 달라질지, 그런 일상의 변화에 더 관심이 많다는 뜻이다.
FTA로 우리사회가 뭔가 위험에 빠질 것이라는 무책임한 괴담을 퍼뜨리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FTA로 대한민국이 완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떠는 것도 별로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반대의견도 여전한 게 사실이지만, 국민의 절반 이상이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 FTA가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니 한미 FTA 반대 의견을 과다하게 의식해서 무리수를 두는 홍보는 그만해도 될 때다. 이젠 차분하게 피해는 줄이고 기회는 살리는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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