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의 주름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눈동자 안에는 반영된 주변의 모습도 보입니다. 유리병 속에 담배꽁초가 쌓여 있고 마치 냄새라도 날 것 같습니다.
사진처럼 보이지만 세밀하게 표현한 그림입니다. 왜 그림을 사진처럼 그렸을까.
[김우임/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 다양한 영상매체의 발달로 회화에 대한 관심이 소외가 되어 있다가, 이천년대에 들어서 더욱더 그런 매체의 발달이 손으로 사진을 찍듯이 그려내는 극사실회화에 대한 주목과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진이 발명된 것이 아주 오래된 일이 아니어서 ‘사진처럼’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사진은 실물과 너무 똑같이 기록되는 게 보통이니까 상당히 인상적으로 보이는 사진을 '그림 같다' 라고 부르는 게 어울립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둘의 구분이 애매해집니다.
그림과 사진이 둘 다 재현과 기록을 많이 하는 표현방식입니다. 그렇지만 실제의 모습을 기록해 놓은 것만으로 소위 '고상한' 미술이 되기 힘들었습니다. 사진이 발명된 후에 그림은 과감히 재현과 기록의 기능을 사진에게 넘겨 버렸습니다. 그리고 당당히 예술 세계의 주류가 되기 위해 여러 가지 주관적인 형상을 표현합니다. 주관과 철학이 담긴 개념이, 그림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특히 근대적인 과학 기술과 세계전쟁의 충격은 그려지는 형상과 이미지도 충격적으로 바뀌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주제는 시대적인 배경이 담겨있는데, 그림 속에서도 정형화된 인물 모습이 사라지게 됩니다. 해체된 형상들은 순수한 그림만의 개념으로 추상화가 됩니다. 마음과 철학과 개념을 형태를 빌려서 설명하려던 시도에서 아예 그 자체를 그리려는 노력으로 바뀐 것입니다.
사진도 그림의 전철을 밟으려고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스스로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다큐멘터리 장르의 사진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디지털 카메라 몇 개 씩은 가지고 있는 요즈음 기록과 재현이라는 역할이 충격을 주기 힘듭니다. 사진을 합성하고 보정하는 다양한 작업을 거쳐 작가의 주관이 반영되면서 사진이 그림처럼 보이는 작업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촬영할 때부터 기록의 요소보다 마음의 표현이라는 요소를 담기 위해 단번에 알아차리기 힘든 사진을 만들어 냅니다. 어떤 방법이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작가의 의도와 예술세계가 담기면 말 그대로 작품으로써의 사진이 됩니다. 개념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면 본연의 기능이라는 옷을 벗어 던졌다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황규태 작가의 작업실에는 커다란 모니터와 컴퓨터가 있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가지고 새로운 작품 활동을 하는 공간입니다.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해 합성하고 차용된 이미지 들은 작가의 사진 영역을 확장시킵니다. 사진만으로 표현되기 힘든 주제가 있다면 작가가 마음대로 고치며 작품을 완성합니다.
[황규태 / 사진작가 : 한번 찍는 사진으로는 내가 보여주고 싶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을 더 보태고 변형시키고 빼내고 하는 작업을 하다보니까 회화적인 사진이 저절로 나오게 되었죠.]
그런데 왜 사물을 재현하는, 문자 그대로 '사진 같은' 그림이 등장했을까요?
여전히 사실적인 그림은 보는 이에게 충격을 줍니다. 너무나 사실적이기에 사실이 아닌 그림은 일종의 환상을 보게 합니다. 새롭게 구성된 또다른 세계. 더 이상 사진과 그림의 논란은 무의미 합니다. 걷고 뛰고 차를 타는 이동 수단에 위아래가 없어졌듯이 표현방식에 대한 차별은 없어졌습니다. 작가가 선사하는 세계가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사진 같은 그림 속에는 실제를 착각하게 하는 힘이 숨어 있고 작가는 그 힘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형태를 벗어던지는 시도는 미술이 외형적인 형태를 따라하는 것뿐 만 아니라 정신적이고 순수한 아름다움 그 자체를 담아내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이런 시도를 거친 후에야 형태를 그리건 안 그리건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겨 있는 마음과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실적으로 보이게 그렸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창조해 내는 환상의 세계. 소우주인 인간을 닮아 또다른 소우주가 되려고 하는 미술의 한 형태입니다.
한성필 작가의 사진은 또다른 의미에서 회화적입니다. 여러 각도의 시선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작가는 작업할 때 건물의 여러 면을 나누어 촬영하고 나중에 하나로 합쳤습니다. 심지어 다른 시간대의 사진이 하나의 사진으로 보입니다. 실제 인간은 도저히 불가능한 다중 시점과 다중 시각이 한 화면 안에 펼쳐집니다. 마치 시공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차원의 인간이 되어 사진 속의 세계를 바라 볼 수 있습니다.
[한성필/ 사진작가 : 사진이 그전까지 단순한 재현의 매체였는데요. 디지털이 등장하고부터는 컴퓨터상에서 여러 가지로 만들어 질수 있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저는 사진이 단순히 재현뿐 만 아니라 사진의 회화성 특히 여러 가지 방면의 입체적인 방법들, (미술의) 입체파가 보여준 그런 이미지를 하나의 사진 속에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러한 작업을 했습니다.]
미술은 다른 문화예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환상을 제공합니다. 얼마나 멋진 소우주를 담고 있느냐가 미술 작품의 성패를 좌우 합니다. 사진과 그림은 평면이기 때문에 닮아 있습니다. 사진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사진은 담고자 하는 개념 때문에 생겨난 결과입니다. 방법보다는 개념, 철학, 마음 같은 가치가 더 중요한 까닭입니다.
[취재협조]
서울시립미술관/ 2011 서울미술대전 <극사실회과-눈을 속이다> (김우임 큐레이터)
덕수궁미술관/ '추상하라! Abstract it!'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기획전 (유진상 큐레이터)
아라리오 갤러리/ 한성필 사진전
갤러리 LVS (앨비스)/ 조세현 사진전 '소수민족 ; 일상의 초상'
[영상토크] 사진 같은 그림 vs 그림 같은 사진
표현적인 사진작업과 극사실주의 그림에 대해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