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법 김천지원이 18일 제일모직 주주 3명이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판결에서 주주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 회장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저가발행에 따른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이 대부분 무죄로 결론이 난 다른 판결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대법원은 2009년 5월에 에버랜드 CB를 적정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발행, 이재용씨 등 자녀가 최대지분을 확보토록 해 회사에 97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기소된 이 전 회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에버랜드는 1996년 전환사채를 주당 7천700원에 발행했고, 제일모직 등 법인주주들이 인수를 포기한 상태에서 이재용 등 이 회장의 자녀들이 이를 인수했다.
재판부는 당시 "에버랜드 CB 발행은 주주배정 방식이 분명하고 기존 주주가 스스로 CB의 인수청약을 하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CB 저가 발행으로 에버랜드가 손해를 입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이번 민사소송에서 "삼성에버랜드가 자체적으로 CB를 계획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건희 회장의 지시를 받은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발행을 지시하고 법인주주에게 권리를 포기하도록 해 이재용 등에게 CB를 배정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전환사채의 발행가격은 실질가치보다 지극히 낮았고 제일모직이 CB 인수를 포기할 만한 이유가 없었으므로 피고 이건희가 삼성그룹 비서실을 통해 조세를 회피하면서 자녀들에게 삼성그룹 경영권을 이전하려는 목적으로 제일모직에 CB를 인수하지 않도록 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에버랜드의 기존 주주가 스스로 CB의 인수를 하지 않았다고 봤지만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이건희 회장 지시를 받은 삼성그룹 비서실이 주주에게 권리를 포기하도록 했다고 본 것이다.
김천지원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전환사채 발행 전 에버랜드 주식가치액이 1주당 22만3천659원이었음에도 사실상 신주발행과 같았던 전환사채의 발행가액이 7천700원으로 실질가치가 크게 낮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때문에 삼성에버랜드의 주주인 제일모직이 CB를 인수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인수하지 않은 점은 삼성그룹 비서실과 협의해 인수를 포기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로 재판부가 제일모직이 CB 인수를 포기하는 과정에 개입했다고 본 이 회장에게 배임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 회장의 자녀인 이재용씨 등이 증여세 등 조세를 피하면서 삼성그룹 경영권을 이어받고자 전환사채를 인수했다는 의혹이 다시 한번 불거질 것으로 보여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번 판결과 관련해 원고측 김영희 변호사는 "삼성에버랜드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제일모직의 손해를 입증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전환사채 = 전환사채는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사채다. 사채는 사업자금이나 투자금을 모으고자 회사가 발행하는 채권을 가리킨다. 회사가 채권을 발행하고 일정기간이 지나서 주가가 상승했으면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 수익을 실현하고 주가가 별로 상승하지 않았거나 하락했다면 일정 수익률을 약속받은 채권으로 만기에 원리금을 상환받게 되는 구조로 돼 있다. 발행인은 보통 사채에 비해 전환권이 붙어 낮은 이율로 발행할 수 있고, 주식으로 전환이 서서히 진행돼 증자에 비해 배당부담의 급증을 피할 수 있다. 전환사채 인수자는 사채의 안정성과 주식의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김천=연합뉴스)
이건희 회장 배상 판결로 '편법 승계' 재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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