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하늘의 일본'으로 불렸던 일본항공 JAL이 회생의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누적된 대규모 적자로 결국 상장이 폐지되고 법정관리에 들어간 JAL은 뼈를 깎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살아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 회생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워낙 부실의 정도가 심해 정상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입니다. 한때 세계 1위의 항공사로 일본 국민의 자존심이었던 JAL의 추락에 일본인들이 받은 상처는 상당히 깊은 것 같습니다.
'공룡 JAL은 왜 무너졌을까?' 올 들어 일본 언론은 JAL이 몰락한 이유에 대해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대체로 낙하산 인사로 대표되는 관치와 방만한 경영 등이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국토 교통성 관료 출신이 부사장이 되는 관행까지 있었고, 국토 교통성 항공국이 JAL 이사회를 주물렀다고 합니다. 현장과 상층부 사이의 의사소통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조직원들은 위기의식도 없는 등 일본식 대기업병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버블경기가 꺼졌지만, 여전히 그 꿈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JAL을 몰락의 길로 이끌었던 수많은 일화 중 어제자(10/27) 아사히신문에 보도된 '와카야마시 사원 기숙사' 사례를 소개할까 합니다. 'JAL 버블 기숙사, 물거품이 되다'인데, 기숙사 건축과정을 보면 ‘아하, JAL이 이래서 망할 수밖에 없었구나’ 라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JAL 와카야마시 기숙사는 1994년 개항한 간사이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 지워진 건물입니다. 1991년에 토지매입을 시작으로 건축이 시작됐는데, 토지매입에 152억 엔, 건물을 짓는데 105억 엔이 들었다고 합니다. 금융비용 제외하고도 무려 257억 엔이 고스란히 투자된 이 건물의 현재 가격은... 겨우 5억 엔 정도라고 합니다. 아무리 버블이 한창일 때 추진됐다고 하지만, 가치가 최소 50분의 1로 떨어진 것입니다. 더욱이 이용률도 저조해 내년에는 아예 폐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액면으로만 250억 엔이 그냥 날라 간 것인데,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먼저 부지 선정과 땅 구입 과정이 엉터리였습니다. 이 땅의 주인이 당시 집권 자민당의 운수상, 지금의 국토 교통성 장관의 후원회 간부였습니다. 와카야마시에서도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썩 좋지 않은 입지조건에 가스와 전기시설도 전혀 갖춰져 있지 않은 임야임에도 불구하고 부지로 결정된 것부터, 장관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지요. 장관은 더욱 노골적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데, 아무리 버블기라지만 당시 50억 엔이면 살 수 있었던 땅을 무려 3배인 152억 엔에 구입하도록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지만, 당시 땅을 구입한 JAL 간부는 "살 수 밖에 없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백'을 믿고 터무니없는 값을 부른 땅주인의 파렴치함도 어처구니없지만, 회사에 엄청난 손해를 끼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눈감은 JAL간부의 결정에서 당시에 얼마나 주인의식이 없었는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조직의 결정에 괜히 저항해봤자 소용없고, 굳이 문제가 될 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 이 비정상적인 거래는 19년이 지나도록 아무 문제가 없다가, 최근 특별감사 위원회의 조사에서야 겨우 밝혀졌습니다.
현재 이 직원 기숙사의 이용률은 12%에 불과하고, 기숙사 건물 앞 테니스코트에는 잡초만 무성하다고 합니다. 건물은 낡지 않았지만, 결국 내년 3월에는 폐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입지조건이 너무 안 좋은 탓에 관리비용이 많이 들어, 차라리 건물을 폐쇄하고 입주한 직원들에게는 거주비를 지원하기로 한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5억 엔에 물건을 내놓아도 사려는 사람이 나오지 않고 있어서, 자칫 흉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한때 지역 주민들의 자랑거리였던 기숙사는 지금은 'JAL 몰락의 상징'으로 통한다고 합니다.
일본에 살다보니, 가끔 버블기의 일본이 어땠는지 듣곤 합니다. 지금의 몇 배 또는 몇 십 배에 달했다는 집값, 보통 수천만 원이 넘게 들었다는 신혼여행 비용, 헬기를 타고 다니곤 했다는 골프, 한 달 치 월급을 넘는 술값 등등...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본인은 대부분 50대 이상의 중년 남성들로, '그때는 참 좋았다'는 흐뭇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리고 오늘같이 JAL의 붕괴와 관련된 기사를 읽을 때면, 불현듯 그들의 미소가 떠오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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