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나라.
비행기로 태평양을 횡단, 10시간 넘게 날아가야 닿을 수 있는 나라지만 정치.경제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한국과 이만큼 가까운 나라는 없다. 바로 미국이다. 한국의 신문.방송에서 '미국'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 날이 단 하루라도 있을까.
인접한 일본이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라면, 미국은 정반대로 '멀고도 가까운 나라'다.
미국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가장 가까운 우방이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혈맹 관계가 됐다. 1950,60년대 미국의 개발원조와 핵우산은 자애로운 후견자이자 자유의 수호자로 여겨지며 한국민에게 자연스럽게 친미(親美) 의식을 심어줬다.
그러나 유신시대와 80년 광주민주화항쟁을 거치면서 미국은 독재정권을 비호해 한국의 정치발전을 가로막은 장애물로 여겨지며 젊은층 사이에 반미 의식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주한 미국대사관 앞은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한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며 초등학생들까지 미국을 향해 조기유학을 떠나는 열풍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맡아 미국과 거리를 두는 정책을 펼쳤던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정권이 끝난 후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나 대학에 적을 두고 재도약을 모색 중이고, 반미자주 노선을 표방하는 진보인사들조차도 자녀를 미국에서 교육시키는 모습에서 한국민의 미국에 대한 이중적 인식의 단면을 읽을 수 있다.
미국은 이처럼 한국민에게 복잡하면서도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존재다.
미국의 자성(磁性)은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선진국들이 예외 없이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로 신음하고 있지만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지구촌 주민들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개방과 관용의 이민정책을 통해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
3억명의 인구로 전 세계 부존자원의 절반을 소비하는 나라, 연간 1조달러가 넘는 재정적자를 기록하면서도 달러를 무한정 찍어내며 경제를 꾸려갈 수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국토면적은 983만㎢, 한국의 100배에 달한다. 200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14조2천560억달러로 세계 1위. 1인당 소득은 4만6천381달러로 세계 9위다.
대통령제와 철저한 3권 분립에 기초한 견제와 균형의 정치체제를 발전시켜오면서 전 세계에 자유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을 전파하는 역할을 해왔다. 50개주(州)가 입법권과 재정부문에서 일정부분 자치권을 갖는 연방제 국가지만 외교.국방분야에서는 연방정부가 막강한 파워를 행사한다.
영어가 공용어지만 전인구의 15%에 달하는 히스패닉 인구가 점점 빠르게 늘고 있어 스페인어의 병용이 일반화되는 추세다.
천혜의 부존자원과 광활한 땅, 세계 최고수준의 과학기술 수준, 필적할 경쟁자를 찾아볼 수 없는 국방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슈퍼파워는 전혀 흔들림이 없을 것 같아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나름의 골칫거리도 적지 않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등장할 정도로 흑인의 민권이 크게 신장됐지만 인종갈등은 여전히 가장 큰 사회문제다. 총기휴대가 법으로 허용된 탓에 총기난사로 인한 참극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마약 문제로 치르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찮다.
미국의 슈퍼파워 지위를 흔들리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경제문제다.
전 세계에서 고용이 가장 탄력적인 미국에서는 해고와 이직이 간단히 이뤄지며, 특히 직장에서 주간단위로 급여를 받기 때문에 실직은 곧바로 생계곤란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두자릿수에 육박하는 미국의 실업률로 인한 경제적 고통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경기회복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세계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해온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위안화 절상을 압박하다 못해 애걸복걸하는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가쁜 숨을 몰아쉬는 미국 경제를 속히 살려보기 위한 발버둥에 가깝다. 1조달러 가까운 미국국채를 보유한 중국이 위안화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해 대미 수출을 확대해 이윤을 챙김으로써 미국의 수출산업을 궁지에 몰아넣고 결과적으로 미국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다.
하지만 미국의 역사에 정통한 학자들은 중국이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어가고 있지만 미국을 능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개방과 관용이라는 무기로 전 세계의 두뇌와 에너지를 흡인하는 미국의 국가운영 시스템을 중국이 모방하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다.
(워싱턴=연합뉴스)
G20 나라들 ① 멀고도 가까운 나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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