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의 모친 이선애씨 자택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이 발부했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한 언론사의 <특종보도>라는 이름 아래 나간 이 기사는 이후 모든 언론사들이 기사를 받아쓰면서 대대적으로 확산됐습니다. 보도 당일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있던 저는 뉴스를 모니터 하던 도중 잠깐동안 혼란스러웠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는 기사는 보통 쓰지 않습니다. 대신 검찰이 발부된 영장을 들고 압수수색을 집행된 후에 기사를 쓰지요. 체포영장이나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는 기사는 아무런 명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범죄 혐의가 있어 조사를 받는 사람에게 어서 도망가라고 귀띔을 해 준다거나, 범죄의 내용을 입증하는데 필요한 증거들을 없애버리라고 일러주는 것과 다르지 않은 기사니까요.
한 사람이나 기업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어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면, 제대로 된 수사를 통해 유무죄가 가려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국민의 알권리를 제대로 충족시키는 일이라는 것은 너무도 상식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법조팀 기자들이 모여있는 서초동에서는, 압수수색 영장이나 체포영장 발부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을 엠바고 파기와 동일하게 간주합니다. 엠바고를 파기한 언론사는 기자단의 징계를 통해, 기자실 출입통제와 같은 징계를 받습니다. 기자단 징계라는 것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별 것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만, 선수들(?) 사이에서 상당한 불명예스러운 일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압색 영장 발부 기사를 썼다고?"
보도 직후 이곳 저곳에서 비난 여론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해당 기자실에서는 징계 논의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해당 언론사에서는 징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미 두 차례 압수수색 영장 발부가 기각됐다는 뉴스가 나간 상황이기 때문에 해당 기사 때문에 수사가 심각하게 방해를 받은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해당 언론사의 해명 내용 전문을 한 번 옮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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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보도를 하게 된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압색 영장 집행 이전에 기사 작성은 법조 기자단에서는 엠바고 파기로 간주한다는 것은 저희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때 검찰의 판단 기준은 현저한 수사 방해라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판단의 기준이지 불문율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어제부터 영장 2차례 기각 기사 나갔고 재청구 방침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과연 지금 압색 영장 3차례 청구해서 발부받았다고 기사쓰는 게 현저한 수사 방해 행위인가요? 이것은 수사 방해로 볼 수 없다는 출입 기자와 데스크의 판단이었습니다.
제가 어제 봉욱 차장(서부지검 차장검사) 만나서도 이야기했지만, 두 차례 영장 기각 기사 넋놓고 이선애가 보고 있다가 저희 뉴스를 보고 '이제 증거 인멸해야지' 라고 생각했을까요? "어디 어디 갈 것이다, 뭐뭐를 가져올 것이다, 몇 시에 갈 것이다" 이렇게 적시하지 않았고, "그 간의 상황을 봤을 때 어디 어디를 털겠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압색한다고 기사 써도 방해 받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어제부터 서부지검 기자들 주요 관심사가 어제 오후 브리핑 문답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재청구 하는냐 있는데 봉욱 차장검사는 대답을 안 해왔습니다. 서부지검 기자들이 왜 물어봤겠습니까? 재청구 여부에 대해 엠바고 해달라는 검찰의 요청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재청구 확인 됐을 때 확인됐다면 이 내용을 쓰지 않았을까요?
우리도 오후 8시 반에 확인했습니다. 3번째 만에 제한적인 일부만 발부됐지만 중요한 팩트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수사 방해 안 하는 선에서 쓸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이라고 우리가 굽힐 이유는 없습니다. 사실 경찰 기사는 "여기 여기 수사 예정이다, 이렇게 했는데도 못 잡고 있다" 이런 기사 쏟아집니다.
봉욱 차장 검사한테 처음 전달받은 것은, 저희 회사 제외 안 하면 출입기자와 문답 안 하겠다는 것 입니다. 게다가 (봉욱 차장 검사가) 저희한테 개인적으로 말한 것은 "법조기자에게 물어봤더니 통상적으로 해당 회사는 서부지검 1년 출입금지다" 이렇게 말했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물론 각사 기자들의 입장이 있을 거라 판단하는데, 저희의 주된 판단과 요지는 이렇습니다. 첫째. 수사 방해 안되는 선에서 기사를 작성했고, 둘째. 영장 재청구 기사가 나갔기 때문에 새로 받았다는 팩트는 중요했던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이런식으롱 위압적으로 기자들 공격하고 있는데 너무 앞서 나간 발언일 수는 있겠지만, 서부 출입 기자를 알로 보는 상황에서 징계 운운해서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났었는데 여러분에게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엠바고 불문율은 수사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갖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것을 깨지 않았다고 보고 신뢰관계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봤고요. 개인적으로 어떤 결정 내려질지 모르겠지만, 사실상 저희 판단 논리적으로 부족함이 없기 때문에 이것마저도 너무 건방지다고 받아들이시면 어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징계 수위가 결정되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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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명에 저는 개인적으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선애 상무이사 측이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나올 것을 이미 예견했을 것이기 때문에 상관없다고 하지만.. 글쎄요 어째 좀 군색해 보입니다. 해당 기사는 타사와의 특종 경쟁에 혈안이 되어 쓴 기사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는 기사로 인해 누가 무엇을 얻게 되나요? 일반 국민들이 이익을 보나요? 수사 중인 검찰이 득을 보나요? 이득을 보는 것은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 뿐입니다.
경찰을 상대로는 기사를 쓰면서, 왜 검찰을 상대로는 못 쓰냐고요? 이 주장 역시 언론의 비겁함과 졸열함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상대가 누구이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아닌 것은 아닌 겁니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매우 간단하고 분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누구를 나무랄 입장은 못 됩니다. 저희 역시 그 기사를 받아 썼으니까요. 태광 수사는 서부지검에서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저희 법조팀 담당은 아닙니다만, 그 날은 야근인 관계로 제가 단신을 썼습니다. "압수수색 기사인데 이걸 받아쓰면 어떻게 하냐"고 선배에게 묻긴 했지만, 모든 매체에서 내용이 다 나가는데 혼자 버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냥 '알려졌다' 정도로 쓰자는 말을 듣고 더 버티지는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시간에도, 모든 방송 매체들이 대문짝만하게 보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우리만 해당 내용을 빼고 쓰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고 수긍해 버렸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남들이 다 하니까 원칙없이 그저 받아쓰기에 급급했던 것은 앞서 제가 지적한 대로 <아닌 것은 아닌 것>이기에, 이제 와 생각하니 많이 부끄럽고 낯 뜨겁고 그렇습니다.
업계 용어로 이런 큰 수사가 시작되고 전쟁이 붙으면, 아주 조그만 사실관계 하나로 단독보도, 특종보도가 갈리기도 하고 모든 기자들이 자기 이름 걸린 단독보도를 하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뛰어 다닙니다. 물론 그러는 과정에서 검찰이 적당히 덮어 감추려 했던 진실이 드러나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 수고와 결과의 순기능으로 모든 것을 덮을 수는 없습니다.
항상 남 눈의 티만 보려고 노력하는 게 직업인 탓에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과오는 간과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사명감을 가지되 조급함에 매이지 않을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p.s) 특정 언론사를 비난하려고 쓴 게 아니니 오해없으시길 바라고, 혹 표현상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식견이 부족한 저를 탓해 주시되 못난 제 손가락보다는 대신 달을 봐 주시는 아량을 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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