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고 황장엽의 빈소에서 보낸 나흘

지난주 월요일부터 꼬박 나흘을 아산병원에서 보냈습니다.

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의 빈소를 취재했습니다.

사실 저는 황 전 비서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그가 망명했을 때 전 고작 중학생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이야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지만, 그가 쓴 책을 읽어보거나 그의 강연을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저와 특별한 인연이 없는 고인인데, 그의 빈소에서 보낸 나흘은 마음이 참 무거웠습니다.

장례식장이란 공간이 주는 적막함, 죽음이란 단어가 주는 허전함, 일단 그런 것들이 절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유족 김숙향씨가 들려준 이야기가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알려진대로 고인은 남한에 망명해 김숙향씨를 수양딸로 들였습니다.

고인이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은 자살했거나 모두 수용소로 끌려갔기 때문에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녀는 살아있는 고인의 유일한 가족입니다.

검은색 상복을 입은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조문객들을 맞았습니다.

조문객 대부분이 정관계 주요 인사들이다 보니 그들을 일일이 상대하는 일도 그녀에게 꽤나 버거워 보였습니다.

그런 김숙향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건 고역이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요. 

다행히 그녀는 큰 거부감 없이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여줬습니다.

황 전 비서와 함께 보낸 시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그녀의 눈자위가 빨개졌습니다.

그녀의 추억 속에 황 전 비서는 매년 봄이면 딸과 함께 벚꽃 구경을 갔던 아버지였고, 딸과 손글씨 편지를 주고 받는 아버지였고, 병약한 딸의 건강을 걱정해 주던 아버지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슴이 아렸습니다.

이념 갈등의 중심에서 차마 표현할 수 없었던 그의 인간적인 고뇌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망명하기 위해 가족을 포기했을 때 그가 감당한 처절한 슬픔.

그 슬픔이 제가 살고 있는 이 한반도의 기막힌 분단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그는 이제 영면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