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5일) SBS가 단독 보도를 했습니다. 한 부장 검사가 사건 관련자로부터 고급 승용차를 받았는데 수사 청탁의 댓가라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다는 내용입니다. 또 검찰이 이런 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여 몇 달 전 무혐의 결정을 내렸는데 이는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검찰측에서는 "차값을 빌렸다가 갚았던 것일 뿐 대가성을 인정할 수 없었고 모든 수사가 절차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졌다"며 "일련의 과정에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견이 없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을 따로 정리해봤습니다. 그러니까 일체의 추측이나 의혹은 모두 빼고 검찰도 인정하는 사실만 쭉 나열해보겠습니다.
- 정모 당시 부장검사가 대학 후배인 D모 검사에게 자신의 18년 지기 친구인 김모씨 사건과 관련해 부탁을 했다.
- 이후 이 사건을 수사한 D검사는 정 부장의 친구 김씨가 고소한 사람들을 모두 죄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기소했다.
- D검사가 기소한 4명은 1, 2, 3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 수사 과정에서 백억 원 넘는 아파트 개발 사업권이 양측의 합의 아래 정 부장검사의 친구 김씨에게 넘어갔다.
- 이후 김씨는 정 부장검사가 부인 명의로 산 그랜저 승용차 값을 대신 납부했다.
- 그런데 김씨측은 차값을 바로 그날 빼낸 뒤 자신들 직원 이름의 계좌로 세탁해 새로 납부했다.
- 몇 달 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피고소인들이 두 검사를 고발했고 정 부장검사는 차 값을 김씨에게 갚았다.
- 정 부장검사는 자신에 대한 고발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자 사표를 내고 나갔다.
어떠세요? 그럼 여기에 한 가지 팩트를 추가해 보겠습니다.
- D검사는 사건을 수사하면서 피고소인도 아닌 사업권 소유업체 사주를 불러 조사했고 결국 이 사주는 사업권을 정 부장검사의 18년 지기라는 김씨에게 넘겼다.
피고소인도 아니면서 검찰에 불려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은 사람이 자신에게 뭔가 해가 올까 두려워 사업권을 넘겨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련의 사태가 이렇게 전개됐는데도 그랜저 승용차 수수가 단순히 돈을 빌리고 갚는 과정이었을 뿐이고 수사 청탁 관련 뇌물로 볼 수 없다고 보이시나요? 저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검찰은 "친구 사이에 차값을 대신 내준 뒤 나중에 갚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아니, 차가 집도 아니고, 당장 없으면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까? 그래서 3천4백만원 짜리 그랜저를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사야 합니까? (당시 정 부장검사는 부인 명의로 소나타 승용차를 갖고 있었습니다.) 차용증도 없고 이자도 받지 않았는데 빌린 돈이라고요? 검찰의 뇌물 수사를 숱하게 지켜봤습니다만 이렇게 판단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검찰은 사건 관련 부탁이 있었던 시점과 차값 대납이 1년 이상 차이 나고 이미 김씨가 고소한 사람들이 1심에서 무죄를 받아서 청탁의 실익이 없기 때문에 대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가 무슨 서비스를 부탁해 그 일이 끝나고 나에게 실제 이익이 생기면 그 때 댓가를 지불하지 않나요? 김씨가 정 부장검사의 차값을 대신 내줄 때는 김씨가 수사 과정에서 상대방의 합의를 얻어내 백수십억 원 짜리 아파트 사업권을 받아낸 뒤 그 이익이 현금화 되면서 수중에 들어오던 무렵이었습니다. 딱 댓가를 지불하기 좋은 시점이죠.
게다가 사업가인 김씨가 검찰에게 바랐는 것이 고소한 사람들에 대해 유죄를 받아달라는 것은 아니죠. 그런 청탁이라면 법원에 가서 해야죠. 이미 검찰이 기소를 해줘서 궁지에 몰린 상대방으로부터 유리한 합의를 받아냈다면 원하는 바를 이룬 것 아닌가요?
사건이 복잡해서 많은 분들이 무슨 소리인가 하실지 걱정됩니다. 어떻든 저는 검찰의 활동을 5년 넘게 지켜보면서 검찰이 이렇게 세상을 착하고 아름답게 바라보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그랜저를 주고 받는 것도 친구 사이의 우정 때문이고, 무리하다고 볼 수 있는 수사도 불의를 참지 못하는 검사의 충정 때문이고, 수사 과정에서 엉뚱하게 사적 거래를 뒤트는 이상한 합의가 이뤄진 것도 당사자의 자발적인 의지 때문이고... 세상이 이처럼 아름다우면 검찰이 필요가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 검찰은 왜 외부인에게는 서슬 퍼런 눈을 번뜩이다가 자신의 식구만 이렇게 아름다운 눈으로 봐주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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