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이나 공연기획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우아한 일 하시니 좋겠어요'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요즘 씨엘로스 웹진(http://www.crediacielos.com )에 매달 예술경영. 문화마케팅 관련 글을 쓰고 있는데, 이번달에 쓴 '문화계에서 일하기'에 대한 글을 올린다.
3E가 뭔지 궁금하신 분들, 끝까지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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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라는 말이 있다. 요즘은 3D 영화, 3D TV 등 '입체영상'을 일컬을 때 많이 쓰는 말이지만, 나는 위험하고(Dangerous), 더럽고(Dirty), 어렵다(Difficult)는 뜻의 3D에 더 친숙하다.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이르는 말인데, 방송국 사람들끼리는 '방송 일도 알고 보면 3D'라는 얘기를 하곤 한다. 언뜻 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힘들고 험한 일이라는 것이다.
부서에 따라 조금식 차이는 있지만, 나만 해도 사회부에서 끔찍한 사고 현장을 여러 차례 취재했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을 무릅쓰고 취재를 강행해야 할 때도 있었다.
문화부에서 일하는 지금도 휴일 근무니 야근이니, 이른바 '웰빙'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 초대형 재해나 전쟁을 취재하는 기자들의 경우야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겉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힘들고 험한 일 투성이인 곳이 또 있다.
문화계도 그렇다. 문화부에서 공연을 오래 취재하면서 공연장이나 관련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자주 접하다 보니 이거 정말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다 싶다. 일단 퇴근 시간이 늦고 휴일을 반납해야 할 때가 많다. 해외 아티스트가 오면 운전 기사나 가이드 역할까지 한다. 공연 표 팔고 협찬 따오고 수지 맞추느라 골머리를 앓는다. 우아하게 예술을 논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 절대 아니다.
공연 한 편 올리려면 온갖 성가신 허드렛일들이 필요하다. 각종 홍보물과 집기, 급할 때는 무대 장치까지 들고 나르는 '육체 노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무대에서는 각종 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수업시간에 '문화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특징'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만 그런 줄 알았더니, 영국에서도 문화 관련 직종의 특징에 대해 '자원봉사자의 마음으로 일한다'고 하고 있었다. 보수 때문이 아니라,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마케팅 과목을 가르쳤던 교수는 지금도 가끔 졸업생들에게 영국의 공연장 직원 채용공고 등 취업정보를 이메일로 보내주는데, 영국의 비싼 물가를 고려하면 급여 수준이 별로 높지 않다.
하지만 문화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사람들은 많다. 특히 한국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예술경영 관련 과목이나 학과를 개설하는 학교들이 늘어난 것은, 이 분야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나도 문화계 '주변'에서 일하다 보니, '공연계에서 일하려면 무슨 공부를 해야 하느냐, 무슨 경력을 쌓아야 하느냐'고 문의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문화 관련 직종은 보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인데도 직업 만족도는 다른 직종에 비해서 높은 편이라는 내용을 봤다.
왜 그럴까. 왜 문화 관련직종이 다른 직종에 비해 경제적 보상 면에서는 상당히 취약한데도, 취업 희망자들이 많고 직업 만족도도 높은 것일까.
나는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걸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영국에서 문화산업 경영을 공부한 남편은, 경제학 공식을 이용해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심리적 보수'가 크다는 내용의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따져보면 비슷한 얘기다. 경제적 보상은 크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는 '보람'이 이를 상쇄한다는 얘기다.
나는 공연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장밋빛 전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겉보기엔 우아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절대 속은 그렇지 않다고, 이 세계에 뛰어들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막연히 좋아보여서 하기에는 힘들고, 돈을 많이 벌기도 어려운 일이라고 겁을 주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야,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느 직종보다 더욱 보람을 안겨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나는 방송계에 종사하고 싶다는 사람들한테도 비슷한 얘기를 해주곤 한다.)
영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얼마 전 서울을 다녀갔다. 이런저런 대화 끝에 '3D'가 한국에서는 힘들고 어려운 업종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고 했더니, 재미있어 했다.
"사실 방송 일도 3D라는 얘기를 하기도 해." "그래? 그래도 넌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는 거 아니야?" "음. 그런 편이지." "그러면 왜 3D만 얘기하는 거야? 딴 얘기를 좀 해 봐. 3E라든가." "3E? 그게 뭔데?" "3E는 말이지, Entertaining(재미있다, 즐거움을 준다), Enjoyable(즐길 만하다, 즐겁다), 음……또 뭐가 있지? 맞아! Engaging(매력적이다, 참여시키다)!"
즉석에서 3E를 만들어낸 친구의 재치에 웃다가, 이게 그냥 농담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면 문화 관련 업종이야말로 3E와 정말 잘 들어맞는 일 아닌가. 보기보다 힘들고 어렵지만, 남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나 자신도 즐길 만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일.
'심리적 보수'와 '보람'이 큰 일. '3E'라는 말을 만들어낸 친구에게 로열티라도 줘야겠다.
문화계에서 일하기, 3D보다 3E?!
겉과 속이 다른 문화계 일,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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