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단 '북극성'
우리는 터키군이 한국전쟁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그들이 UN군 소속으로 전쟁에 참여했는지도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터키는 그 어떤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가했다. 심지어 파병 지원 인원이 지나치게 많아 제비뽑기를 해야 할 정도였다. 국경을 맞대고 있던 소련의 위협 때문에 한국전 참전은 조국을 지키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1950년 10월 부산항에 도착한 터키여단 5천명에겐 '북극성'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슬람의 전사… 그들의 눈을 통해 본 한국
그들은 전투를 앞두고 '알라'를 외며 기도했다. 적군과 마주칠 땐 '알라'를 외치며 싸웠다. 이슬람의 전사들은 그들만의 음악과 춤으로 전장에서의 긴장을 줄이려 노력했다. 한국전쟁에서 그들의 활약과 일상의 모습이 담긴 칼라 영상물이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취재진이 터키의 한국전쟁 전문가들을 만나 입수한 이 영상들엔 우리에게 익숙해진 유럽의 '눈'이 아닌 이슬람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 전쟁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들은 한국을 '칸카르데쉬'라 부른다
'칸카르데쉬'는 터키어로 '피를 나눈 형제'라는 뜻이다. 터키엔 '피를 흘리지 않은 땅은 조국이 될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한국전쟁에서 터키군 사상자는 3천 2백여 명이었다. 그들의 국경 밖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나라는 머나 먼 이국땅 한국이었다. 한국은 그들의 또 다른 조국이었고 한국인은 그들의 형제인 것이다. 취재진이 터키 현지에서 만난 참전 용사들은 60년 만에 가족을 다시 만난 듯 반갑게 맞으며 한국전쟁의 기억을 풀어냈다.
앙카라 고아원
한국전쟁에 참여한 터키군은 한국에 자신의 아들과 딸이 있었다. 그들은 전쟁통에 고아가 된 아이들이었다. 생사의 기로에 선 상황에서도 그들은 아이들을 자식처럼 챙겼다. 군 막사엔 하나 둘씩 아이들이 늘어났다. 터키군은 이들을 모아 아예 '앙카라 고아원'을 세워 운영한다.
'칸카르데쉬-이슬람에서 온 전사들'에선 그들의 눈으로 보는 한국전쟁 영상기록을 최초로 공개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을 겪고 있는 그들의 기억을 통해 전후 60년이 지난 한국전쟁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SBS 인터넷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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