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명저 '트러스트'는 '신뢰'가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닌 재화인지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은 경제적 번영의 핵심 토대라는 것이다. 뭐, 어렵게 따져볼 필요도 없다. 우리가 수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사면서 안전성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각자 텃밭을 꾸려 식품을 자급자족 해야 하고 그런 사회적 비용은 막대할 것이다. 정부의 정책을, 사법부의 판결을, 언론 보도의 진실성 등을 의심해야 한다면...국민들의 심리적 고통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실제 치러야 할 각종 부대 비용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그럼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는 우리 사회는 그만큼의 '신뢰'를 구축하고 있을까? 요즘의 상황을 보면 '트러스트'의 논리에 어긋나는 반례나 예외로 들이댈 수 있겠다 싶을 정도이다. 광우병 파동에서부터 최근의 천안함 사태까지 국민 상당수는 도대체 정부의 설명을 믿지 못한다. 급기야 정부 당국은 국민을 설득하기보다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들을 엄단하겠다며 나섰다. 국민이 정부를 이렇게 불신해서 어떻게 지금까지 경제 발전을 이뤄왔는지 신기하다. 아니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금의 경제적 지위를 계속 누릴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그렇다면 현재의 '신뢰 상실'은 보수층에서 주장하듯이 일부 불순분자의 책동 때문일까? 일부의 유언비어에 국민들이 놀아나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신뢰를 얻도록 행동하지 못해서'가 가장 큰 이유다.
당장 천안함 사태만 보자. 정부는 천안함 사태 발생 이후 내내 신속하게 상황을 정리해 설명하지도, 그렇다고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사실을 알리지도 못했다. 사건 발생 시간은 계속 바꼈고, 주요 정황들에 대한 설명은 매일같이 달라졌다. 불신을 자초했다. 그러니 국민들은 최종 조사 결과까지 믿지 못하고 끊임없이 의혹을 내놓는 것이다.
꼭 이 정권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는 건국 이후 60년 넘게 수없이 우리 정부에 속아왔다. 지금도 법원에서는 수십년전 날조된 간첩 사건으로 한 가족의 삶이 풍비박산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은 피해에 대해 명예를 훼복하고 배상을 받는 판결이 줄지어 나고 있다. 이제 와서 거액의 배상을 받으면 뭐하나. 이미 정부로 인해 그 개인, 가족의 삶은 완전히 망가졌는데. 그런 불신의 편린들이 우리 국민들의 의식속에 쌓이고 쌓여 단단한 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그런 '불신의 기억'은 이번 정부 들어 더욱 폭발적으로 분출되고 움직임으로 나타나는 형국이다.
옛 춘추전국 시대 한 성주가 이웃 강대국 군대의 공격을 받게 됐다. 이 성주는 성 주변 주민들을 다 성으로 들어오게 한 뒤 방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당시가 추수철이었다는 점이다. 무르익은 곡식을 추수하자니 시간이 없고 그냥 놔두자니 적국 군대에 군량미를 대주는 꼴이었다. 신하들은 "상황이 급박하니 일단 모든 주민들에게 밭의 소유권을 가리지 않고 추수하도록 해 능력이 되는대로 가져가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성주는 완강히 반대했다. "일단 남의 곡식에 손을 대면 평상시에도 조금만 상황이 안좋아지면 남의 것에 욕심을 내게 된다. 아무리 다급한 처지라도 원칙과 신뢰가 무너져서는 그 사회에 미래는 없다. 차라리 다 불태워버려라. 대신 내 개인 재산을 풀어서 성민들을 구휼하겠다." 그래서 결국 그 많은 곡식을 다 불태웠다고 한다.
너무 고지식한 것 아닌가 싶지만 그 정도의 뼈를 깎는 고통과 살을 베어내는 아픔을 각오하지 않으면 신뢰란 쌓기도, 지킬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신뢰를 얻기 위해 그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도저히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쌓기도, 지키기도 어려운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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