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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뉴질랜드 기자의 거지 체험

남에게 구걸하는 게 어떤 것인지 직접 체험해보기 뉴질랜드의 한 기자가 수염도 깎지 않고 어두운 색의 챙 없는 털모자를 깊숙이 눌러 쓴 채 '돈도 없고, 희망도 없다'고 쓴 피켓을 목에 걸고 웰링턴의 거리에 앉아보았다.

행인들로부터 무시나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두려움까지 안고 생전 처음 구걸 행각에 나섰던 그는 깜짝 놀랐다.

지나가던 많은 사람이 예상을 뒤엎고 따스한 손길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웰링턴에서 발행되는 도미니언 포스트의 데이브 버제스 기자는 거지의 참담한 생활을 체험해보기 위해 거지 차림을 하고 웰링턴 길거리에 4시간 동안 앉아 있었더니 빵 등 먹을 것은 물론이고 자기 앞에 던져진 동전도 126달러20센트(한화 약 10만원)나 됐다고 16일 밝혔다.

이는 시급으로 계산했을 때 뉴질랜드 최저 임금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그는 돈보다도 사람들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배려하는 데 놀랐다면서 특히 밑바닥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보이는 동정과 인심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고 거지 체험 소감을 피력했다.

다음은 도미니언 포스트에 쓴 그의 거지 체험기를 발췌 번역한 내용이다.

"거지 체험을 하기 위해 털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거리로 나서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강력한 감정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것은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무시나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길바닥에 쓸쓸히 앉아 있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마치 거대한 탑처럼 느껴졌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더 높은 위치를 점하고 있는 수많은 무릎과 발들의 행렬이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우울한 메시지와는 달리 현실은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많은 사람이 밑바닥 인생에 대해서도 따뜻한 동정과 인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들은 나이와 인종을 불문하고 남자들보다 훨씬 더 마음이 따뜻했다. 두 군데서 4시간 동안 구걸행각을 벌이는 동안 총 32명이 126달러 20센트를 던져주었는데 그 중 남자는 단 5명뿐이었다.

국세청은 내가 구걸한 돈은 일종의 선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세금이 붙지 않는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

수입을 신고해 세금을 내야 하는 길거리 악사와는 다르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돈뿐 아니라 치즈버거, 감자튀김, 음료수, 요리한 치킨 조각과 각종 빵 등 먹을 것들도 적지 않게 내 앞에 쏟아졌다. 먹을 것은 전부 여성들이 준 것이었다.

도미니언 포스트는 음식 가격에 해당하는 돈 등 구걸한 돈은 전부 웰링턴의 한 구호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내가 이번 거지 체험을 하면서 나는 사람들이 보여준 동정과 인심에 감동을 받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 여성은 슈퍼마켓에 가서 7.54달러짜리 치킨커틀릿을 사다 10달러짜리 지폐 두 장과 함께 내 손에 쥐어주었다.

그는 "기차를 타러 역으로 가다 당신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먹을 것을 사왔다"고 말했다.

한 정부 당국자는 지난 6개월 동안 약 20여 차례나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거지들을 찾아가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라는 말을 했었다면서 하지만 대다수는 얘기를 잘하려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웰링턴 시의 공공장소에 관한 조례는 거지들이 행인들을 위협하거나 귀찮게 하거나 길을 방해할 경우 쫓아낼 수 있다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기자로서 거지체험을 하면서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누가 물어보는 말에는 교묘하게 모호한 대답을 하곤 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고개를 떨어뜨리고 기죽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특히 내가 손으로 직접 쓴 '돈도 없고, 희망도 없다'는 피켓의 문구 때문에 더욱더 나를 거지로 보아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이번 거지 체험에서 얻은 결론은 단순 명료하다.

혹시 돈벌이를 위해 구걸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리 사람들이 따뜻한 동정심을 보여준다고 해도 구걸은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로 마지막 수단으로나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오클랜드<뉴질랜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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