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 공개, 당장 안하면?
전교조 명단은 인터넷을 통해 이미 상당히 퍼져나갔습니다. 하루 3천만 원씩 낼 각오를 하고 명단을 공개한 목적을 어느정도는 달성한 셈입니다. 그동안 쌓인 간접강제금을 어떻게 지불할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조 의원이 이 문제를 헌법재판소로 들고 갔으니 결과를 좀 더 저는 개인적으로 '전교조 명단을 공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이해가 잘 안됩니다.
사상을 문제삼고, 이런저런 시비거리를 만들어 내고, 의도와 다른 해석이 나도는 것이 교사들 개개인에게 불편하고 부당하게 느껴질 수 있으리라 짐작합니다만, 교사라는 직업이 학생들의 지식과 인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본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나쁘다고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전교조가 선생님들에게 주는 낙인 효과도 분명 있겠지만, 오히려 선생님들의 학식과 인품이 전교조를 낙인 찍는 면이 더 강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가 학생이었던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좋은 선생님'과 '별로인 선생님'을 구분짓는 기준이 무엇인지는 애써 어렵게 설명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지 않나요? 상식의 눈높이로 이해하자고 들면, 논쟁과 싸움은 불필요해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조 의원이 주장하는 명단 공개가 그렇게 부당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물론 조 의원과 앙숙 관계인 전교조가 명단 공개에 발끈하는 심정이 이해는 됩니다만,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 공익을 그렇게 크게 해치는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저는 원칙적으로 모든 정보는 될 수 있는한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제 개인적인 의견은 그렇다는 겁니다)
하지만 사건을 지켜보는 내내 드는 의문이 있었습니다. "왜 지금 '당장' 공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는 걸까"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소송의 특성상, 적법한 불복 절차를 거치면 앞으로도 시간이 꽤 걸릴 수 있습니다. 거기에 드는 노력과 비용 또한 만만치 않을 겁니다.
전교조 명단을 공개하는 것 자체는 큰 파급력을 갖습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적법한 절차를 거쳐 명단이 공개가 된다면 지금보다 더 큰 논란과 이슈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조 의원 말대로 그것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또 학부모와 학생들의 공익에 충분히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법원이 굳이 명단 공개를 마다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그것도 율사출신들 의원들까지도) 저렇게 절차를 무시해가며 흥분하는 모양새가 어째 좀 군색해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아가 명단 공개 이면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기도 합니다. 조금 줏대 없어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핏대를 세우는 전교조나, 열을 올리는 조 의원 모두.. 저는 이해가 잘 안됩니다. 양 측의 코미디 같고 유아적인 태도가 그저 씁쓸할 따름입니다.
민주주의, 답답함의 결정체
절차를 지키느라 십수년만에 억울함을 푸는 사람들이 아직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고, 얼토당토 않는 법과 조치 때문에..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난 후에 재심 끝에 몇 십년 만에 무죄가 선고되고 한스럽게 우시는 분들이 말입니다.
사안이 너무 오래된 탓인지, 정작 그 분들은 언론의 주목도 크게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년 반 가까이 법원과 검찰을 오가며 생활하면서 그런 분들을 심심찮게 만났습니다. 무죄 판결을 받아들고 한스럽게 눈물을 지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곁에서 위로의 말씀 한 마디 건네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해드리지 못하는 상황이 이상하고 야속하게 느껴지는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법원의 판결이 '무오'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판결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오류가 있을 수 있고, 그래서 불복 절차가 있는 거겠지요. 사법부의 독립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지만, 자유로운 비판까지 묶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상식의 수준에서, 정도를 지켜가며, 수위를 조절해야 할 필요는 분명 있겠지만 건강한 비판과 지적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십년만의 재심 끝에 무죄 판결을 받은 분들은 심적으로나, 실제 생활에서나 많은 불이익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상처 뿐인 명예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과 답답함을 묵묵히 견디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두 사람의 독단적인 결정과 생각이, 사회적인 약속과 정당한 절차를 넘어 설 때 그 사회는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을 상실하게 됩니다.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해야 할 국회의원이 본인의 소신을 천명하기 위해서 정당한 법 절차를 무시한다면, 앞으로 과연 누가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에 따르고 승복하겠습니까? 십수년간 그 절차에 따르느라 만신창이가 된 분들에겐 뭐라고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몸소 답답함을 감내하고 절차를 지켜가며 소신을 이뤄낼 것을 국회의원에게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일까요?
양 쪽 다 좀 진정하고, 그저 상식의 수준으로 좀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도대체 누가 맞는 걸까요? (3)
명단 공개, 상식의 주순으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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