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디지털포럼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한동안 TED 출장기 연재를 중단한 상태였는데, 마침 외부 원고 청탁을 받아 TED와 관련된 글을 썼다. TED에서 열리는 다양한 공연에 관한 얘기다. TED출장기 열한번째로 가름해도 될 것 같아 올린다. 앞부분은 약간 중복되는 감이 있지만,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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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월초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TED라는 이름의 국제 컨퍼런스가 열린다. TED는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이 세 단어의 머릿글자를 따서 이름 붙여졌다. 1984년 창립된 TED는 시대를 앞서가는 첨단 기술과 제품,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곳이다. 애플의 첫 Mac 컴퓨터 모델이, 첫 CD가 소개된 컨퍼런스가 바로 TED였다. 내가 TED에 대해 알게 된 것은 2008년 가을, 서울디지털포럼을 기획하는 미래부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미래부에서는 TED를 모르면 얘기가 통하지 않았다. '얼마나 대단한 컨퍼런스인데 그래?' 하고 웹사이트인 TED.com에 들어가 봤다가 그만 나도 TED의 팬이 되고 말았다. TED.com에서는 TED토크로 불리는 TED의 강연들을 누구나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이 많았다. 시간만 나면 새로운 TED토크를 찾아 보는 게 취미가 되었다.
그러니 올해 2월, 직접 TED에 참가하기 위해 출장을 떠나며 내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SBS가 한국 언론으로는 최초로 프레스 자격으로 TED에 초청 받은 것이다. 올해 TED는 2월 9일부터 13일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 퍼포밍 아트센터에서 열렸다. 퍼포밍 아트센터라면 공연장이다. 문화부 기자를 오래 해서 그랬는지, TED가 공연장에서 열린다는 사실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사실 나는 웹사이트를 통해 TED를 접하면서, 18분간의 단독 연설로 청중을 확 사로잡아 버리는 TED토크들이 대본과 동선 연출, 소도구를 비롯해 무대장치까지 미리 완벽하게 조율된, '공연' 같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TED에 직접 가보니, TED라는 컨퍼런스 그 자체가 '세심하게 연출된 공연' 같았을 뿐 아니라, 말 그대로 진짜 공연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Entertainment'가 컨퍼런스 이름에 포함된 데서도 드러나지만, TED의 연사들 가운데는 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올해는 에델 현악 4중주단(Ethel String Quartet), 가수인 쉐릴 크로우, 나탈리 머천트, 앤드류 버드, 데이빗 번, 우쿨렐레 연주가인 제이크 시마부쿠로, 그리고 무용단 LXD(the Legion of Extraordinary Dancers)가 '무대'에 올랐다. 라이브 공연이 하루에도 몇 번씩 펼쳐졌다.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작가인 이브 엔슬러는 자신의 TED토크에 연극을 끌어들였다. 이브 엔슬러의 소개로 배우들이 나와서 각기 다른 여성의 삶을 연기했다.
특히 TED는 음악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 TED는 매년 새로운 하우스 밴드(상주 연주단체)를 두는데, 에델 현악 4중주단이 바로 올해의 하우스 밴드였다. 클래식을 전공한 줄리아드 음악원 출신 연주자들로 구성된 에델 현악 4중주단은 현대음악과 록, 펑크,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는 단체다.
TED의 개막선언은 에델 4중주단이 연주한 Verve의 'Bittersweet Symphony'와 함께 이뤄졌다. 에델 4중주단은 주요 세션의 시작을 알리는 연주를 했고, 다른 예술가들의 세션에서는 공연에 동참했다. LXD의 춤 공연에서도 이들의 연주는 극적인 생동감을 더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TED에는 음악 감독이 따로 있었다. 'She Blinded Me with Science'라는 곡의 히트로 국내에도 알려진 영국 출신의 뮤지션 토머스 돌비가 최근 수년간 TED의 음악 감독을 맡아왔다. 그는 키보드를 연주하며 하우스 밴드를 이끌었다.
하우스 밴드가 연주했던 곡들은 모두 그가 세션 구성을 고려해 세심하게 선곡한 것이었다. 레드 제플린의 'Kashmir', 비틀즈의 'Eleanor Rigby',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이모겐 힙의 'Hide and Seek', 트레이시 채프먼의 'Fast Car', 콜드플레이의 'Clocks' 등이다. 토머스 돌비는 이 곡들을 에델 4중주단과 함께, 현악과 일렉트릭 악기에 알맞은 형태로 편곡했다. 리허설도 여러 차례 했다. 이렇게 준비된 '공연'이니, '나는 TED에 음악 들으러 간다'는 말이 미국의 한 매체에 실렸을 정도다.
요즘 국내의 많은 포럼에서도 공연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본 세션 외에 진행되는 '특별공연'이거나 '축하공연', 혹은 '만찬공연'이지, 포럼 내용의 '메인'은 아닌 경우가 많다. 하지만 TED에서는 공연도 '메인'이다. 이 공연들은 맥락 없이 던져지는 게 아니라 예술가의 '이야기'와 함께 전달돼 더욱 큰 반향을 일으킨다.
TED의 모토는 '확산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다. TED는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다. TED의 큐레이터 크리스 앤더슨은 TED의 미덕은 '다르게 보기'를 할 수 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TED는 '나와 다른 것'을 접하고, 나누고, 이를 통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려는 컨퍼런스다. 그래서 TED에는 다른 분야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독창적인 시각과 영감을 지닌 예술가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일 게다.
TED에서 '영감'을 얻고 돌아와 5월 중순으로 예정된 서울디지털포럼을 기획하고 있다. 나는 서울디지털포럼에서도 잠시나마 '공연이 메인이 되는' 세션을 기획해 보고 싶었다. 그냥 공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세션으로 만들고 싶었다. 지난해 서울시향 정명훈 예술감독에 이어 올해는 황병기 선생을 초청했다. 서울디지털포럼은 TED와는 성격도 다르고, 여건도 다르지만, 예술가의 이야기와 공연을 통해 잠시나마 '영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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