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에게 영광을, 고인들이여 영면하소서."
지난 10일 러시아와 폴란드 간 역사의 앙금인 `카틴 숲 학살 사건' 70주년 추모 행사에 참석하려다 비행기 사고로 숨진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이 추모식 현장에서 낭독하려 했던 추모사의 마지막 부분이다.
13일 `카틴 숲 학살 사건' 70주년을 맞은 가운데 이날 카친스키 대통령이 미처 읽지 못한 추모사 내용이 러시아 언론에 공개되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카틴 숲 학살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당시 소련 비밀경찰(NKVD)이 서부 스몰렌스크 인근의 산림 지역인 카틴 숲에서 폴란드인 2만 2천여 명을 살해, 암매장한 사건이다.
소련은 이 학살이 나치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으나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폴란드와 러시아 간 분쟁거리가 되고 있다.
특히 카친스키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폴란드 정부 대표단이 학살 사건 70주년을 맞아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별도의 추모식을 하려다 변을 당하면서 카틴 숲과의 악연이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카친스키 대통령의 추모사를 보면 희생자와 그 가족을 위한 진실규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러시아에 대한 신뢰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카틴은 폴란드 역사에 아픔으로 남아있고 굉장히 오랫동안 양국 관계를 나쁘게 만들었다. 이런 아픔들이 이번에는 치유되고 불태워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미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 폴란드인들은 지금껏 러시아인들이 보여준 것에 고맙게 생각한다. 이런 방향으로 사이좋은 관계가 계속되길 바란다"며 러시아를 크게 원망하지 않았다.
추모사는 이어 "카틴 범죄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고 모든 관련 자료가 공개돼야 한다"면서 "우리는 무엇보다 희생자와 고통받은 그 가족을 위해 그것을 요구한다"고 적고 있었다.
지난 2004년 러시아는 카틴 숲 사건과 관련해 보유한 기록을 폴란드에 제공하겠지만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라 관련자 처벌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대량학살은 독일의 유대인 대량 학살을 일컫는 것이지 카틴 사건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 당국은 카틴 사건과 관련해 보관 중인 문건 183건 가운데 67건 만을 폴란드 정부에 제공하겠다고 밝혔을 뿐 116건은 기밀을 이유로 공개를 꺼리고 있다.
폴란드는 러시아와의 진정한 협력을 위해서는 카틴 사건이 먼저 해결돼야 함을 강조해왔다.
이번 비행기 추락 사고로 `카틴 숲'의 저주가 계속되고 폴란드 국민의 대(對) 러시아 정서가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폴란드 국민을 위한 카친스키 대통령의 용기있는 행동과 그로 인한 희생이 오히려 과거의 아픈 상처를 아물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 또한 없지 않다.
푸틴 총리가 사고 현장을 달려온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를 끌어안고 위로하는가 하면 러시아 정부는 12일 하루를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고 국영 방송들은 앞다퉈 카틴 숲 사건을 조명했다.
그리고 수천명의 모스크바 시민들은 12일 '우주인의 날' 유리 가가린 동상을 찾는 대신 폴란드 대사관을 찾아 꽃과 촛불을 놓고 희생자를 위로하는 모습 등이 카친스키 대통령과 폴란드 정부 인사들의 고귀한 희생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폴란드 외무부는 전날 성명을 통해 러시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사고를 수습해 주고 희생자 유족들에 대한 비자 발급 면제, 무료 숙박, 정신 치료 상담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한 데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13일 "양국이 서로를 이해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말하기는 이르지만, 러시아가 카틴 숲 비극에 대한 슬픔을 먼저 공유하려는 모습은 분명히 이전과는 다르다"고 전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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