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6일 밤 9시31분.
소청도 서방에 있던 속초함에 긴급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상황이 접수됐으니 사건 현장으로 전속력 항해하라는 지시입니다. 속초함은 최고 속도로 북상했습니다. 명령을 받은 지 1시간9분 만인 밤 10시40분. 속초함은 침몰 현장인 대청도 서방에 도착했습니다.
군의 첫 판단은 널리 알려졌듯, 북한에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대잠경계태세 A급이 발령되어 있던 상황. 속초함에는 대단한 긴장감이 감돌았을 것입니다.
속초함이 현장이 도착하고 15분이 흘렀습니다. 밤 10시55분. 속초함의 사격통제 레이더에 뭔가 잡혔습니다. 레이더는 미상의 물체가 무엇인지 가려내기 힘듭니다.
사람인지 헬기인지 잠수정인지. 속초함은 5분간 미상의 물체를 추적합니다.
밤 11시. 사격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곧 속초함의 76mm 주포가 불을 뿜었습니다. 5분간 130여발을 쐈습니다. 미상의 물체가 북방한계선 NLL을 넘어가면서 사격은 중지됐다고 군 당국은 밝혔습니다.
이 미상의 물체의 실체를 두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군 당국은 사건 당일 '새떼'라고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하필 초긴장 상태의 속초함 전방에, 하필 그 야밤에, 하필 백령도 북방에, 새떼가 짠! 하고 출현했다는 건 누가 봐도 일종의 시나리오라는 냄새가 짙었기 때문입니다.
2005년 11월부터 최근까지 해군이 포착한 미상의 물체가 새떼로 드러난 건 모두 23번입니다. 1년에 많아야 6번입니다. 그렇게 만나기 힘든 새떼를 왜 하필 그때 만났는지에 대해 기자들의 속사포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국방부는 일일이 답하며 새떼 논란 진화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국방부가 공식 자료에서 가장 공들여 설명한 부분은 "그건 새떼가 맞다"입니다.
우선 자잘한 의혹과 해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왜 76mm 주포를 쐈는가? 표적이 9.3km 떨어져 있었는데, 40mm 포는 사정거리 밖이어서 76mm 를 쏜 것이다.
(2) 속초함은 대공레이더가 없는데 어떻게 새떼를 포착했는가? 대함레이더도 수평선에서 15도 상방의 공중 표적을 탐지할 수 있다.
(3) 76mm 포를 쐈는데 새떼가 왜 흩어지지 않았나? 새떼는 포성을 못 들었을 거고 포탄은 새떼 아래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4) 새떼는 따뜻한 날씨에만 이동하지 않나? 현재는 겨울철새가 시베리아 쪽으로 이동하는 시기이며 야간에도 이동을 많이 한다.
군의 해명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군이 새떼라고 최종 결론을 내린 중요한 이유입니다.
군 당국은 우선 레이더의 표적이 1개에서 2개로 분리됐다가 다시 합쳐지는 현상이 2번 일어났다고 밝혔습니다. 새떼가 북상하다가 두 개의 무리로 나뉘어졌다가 다시 합쳐지기를 2번 반복했다, 고로 레이더 표적이 북상하다가 표적이 둘로 나눠졌다가 다시 두 표적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얘기입니다. 레이더로 봤을 때 전형적인 새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국방부는 이걸 지도상에 표시하면서 약간 다르게 설명합니다. 고속으로 북상하던 표적이 밤 11시8분에 '소실' 됐다가, 1분 뒤에 '재접촉' 됐다는 것입니다. 표적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는 얘기인데, 표적이 둘로 나뉘었다가 합쳐졌다는 설명과는 다릅니다. 단지 얼렁뚱땅 설명으로 인한 차이인지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레이더 설명이 미묘하게 바뀐 건 하나 더 있습니다.
NLL을 넘어간 표적을 계속 추적했더니 육지 위로 올라가더라는 것입니다. 반잠수정이 육지 위로 올라갈 리 없으므로 새떼라는 얘기죠. 국방부는 4월 1일 자료에서 "표적이 최종적으로 사라진 지점이 육지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5일 자료에서는 약간 바뀌는데요. "표적이 육지에 접근하여 소실 시까지 고속을 유지"한 걸 새떼의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이 말은 표적이 육지에서 사라졌다는 설명과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만, 이것도 대충 설명하다보니 빚어진 실수인지 해명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취재할 때는 레이더 상의 육지는 하얗게 표현되므로, '육지 위로 올라간 새떼'를 인식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떠한 표적이든 하얗게 보이는 육지 위로 올라가면 안 보이니까요. 다만 나중에 '사격통제레이더'의 모 기능을 작동하면 하얀 뭍 위로 올라간 표적도 계속 추적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레이더에 대한 군 당국의 설명도 이해가 갔습니다. 결국 지금은 앞서 설명한 표현의 차이, 즉 '표적이 육지에서 사라졌다'와 '표적이 육지에 접근하여 사라졌다'에 대한 의혹만 남았습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으로서 보면, 두 표현은 분명히 서로 다른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레이더는 이 정도로 하고 좀 더 중요한 전자광학추적장비(EOTS)로 넘어가겠습니다. 전자광학추적장비(EOTS)가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설명해드립니다.
EOTS는 한 마디로 초계함의 눈입니다. 밤에는 적외선을 사용해 물체를 식별할 수 있습니다. 레이더는 반사되는 전파를 감지해 평평한 화면에 영상을 보여줍니다. 표적이 포착은 되지만 그게 반잠수정인지, 새떼인지, 헬기인지 즉각 분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EOTS는 이 맹점을 보완합니다. 함정 밖에 달린 적외선 카메라가 찍은 영상을 함정 안 모니터에서 볼 수 있습니다. 2차원이 아니고 3차원 REAL 영상입니다. 밤에 EOTS로 중국 어선을 보면 배 위에서 볼일을 보는 선원의 물줄기까지 보인다고 합니다. 최신 제품의 기능은 놀랄 만합니다. 5~10미터 크기의 표적은 기상 상황만 좋으면 20km 밖에서도 보인다고 합니다. 20km 밖에 있는 표적의 온도를 감지하는 것입니다. 최근 나온 성능 좋은 EOTS는 표적의 온도와 주변의 온도가 0.05도의 차이만 나도 그걸 감지합니다. 그 차이를 영상으로 구현해 승조원들의 밤길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레이더는 새 한 마리를 잡아낼 수 없고, 새들이 군집을 이룰 때 가끔 레이더에 잡히지만, EOTS는 새 한 마리의 체온을 감지합니다. 레이더가 뭔가를 포착하면 즉시 EOTS가 자동으로 사격 표적을 추적하게 됩니다. 밤에 버튼만 누르면 레이더와 EOTS가 추적한 표적을 향해 자동으로 함포가 발사됩니다.
국방부는 이러한 EOTS 장비를 레이더와 함께 새떼의 주요 논거로 들었습니다. 국방부는 4월 1일 공식 자료에서는 "광학추적장비(EOTS)로 확인 시 분산된 점 형태이고, 고속 항해 시 발생하는 물결(wake)이 식별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자료를 설명하는 브리핑에서는 "표적 접촉 시 함정에 있는 EOTS 상으로는 확인이 안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5일에도 비슷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사격 후 속초함의 광학추적장비(EOTS)로 영상 표적을 확인한 결과 표적이 수면 상공에 위치했던 것으로 식별됐으며, 이는 동일 거리의 해상 표적과 상이한 영상 특성을 나타낸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사격을 할 때는 몰랐는데, 사격을 끝내고 다시 봤더니 "새떼더라"는 것입니다.
EOTS를 다시 볼 수 있냐고요? 물론입니다. 천안함 침몰 장면을 촬영해 널리 알려진 백령도 해안가의 TOD(열상감지장비)처럼 녹화가 가능합니다. 자동 녹화는 아니고 Record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버튼을 누르면 자체 내장된 VCR에 녹화됩니다. 다만 TOD는 자체 VCR에 녹화되면서 동시에 평택 2함대사령부 서버에 자동으로 영상이 저장됩니다.
EOTS는 수동 녹화는 되지만 2함대사령부에 동영상이 자동 전송되지는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국방부가 '표적 접촉 시'에는 새떼인 줄 몰랐다가 '사격 후' 새떼라는 걸 확인했다는 뜻은, 이 VCR 녹화 테이프를 꺼내 확인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새떼가 찍혔다는 녹화 테이프의 존재를 두고 국방부 내에서 말이 엇갈리는 것입니다. 생존 장병들이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던 지난 7일. 기자회견이 모두 끝나고 국방부 조사단 대변인(문병옥 준장)에게 물어봤습니다. EOTS 영상이 (레이더가 표적을 포착한) 밤 10시55분부터 다 있냐고요. 레이더로 봤을 때는, 표현의 차이가 있었지만, 어쨌든 새떼가 흩어졌다 뭉치길 2번 반복했다고 했는데. 그걸 3차원 EOTS가 어떻게 추적했는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EOTS가 추적하던 하나의 표적이 둘로 나눠지면, 둘 중 어떤 표적을 따라가느냐는 질문입니다.
문병옥 준장의 답변은 이상했습니다. 녹화된 테이프가 없다는 것입니다. 질문을 잘못 들은 것 같아 다시 물었는데 같은 답변을 들었습니다. 대변인이 정확히 모를 수도 있겠죠.
박정이 국방부 조사단장에게 다시 확인했습니다.
Q 새떼가 안 찍혔다는 얘기인가요, 녹화가 되지 않았다는 얘기인가요?
A 녹화된 것이 없다는 거죠. 녹화는 하지도 않았고 녹화했다는 얘기는 하지도 않았고.
Q 테이프가 없는 겁니까?
A 테이프가 있는 게 아니라 녹화를 하지 않았다는 거죠. 타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물살이 있을 거 아니에요. 물살도 나타나지 않고 그냥 뭍으로 미상의 표적이 이동해버리다 보니까 나중에 보니까 새떼다 이렇게 판명이 난 거죠
Q 지금 다시 확인할 수 없다는 말인가요?
A 그렇죠.
제가 알기로는 그런데요. "녹화를 하지 않았다. 테이프가 없다." 조사단의 이 말이 사실이라면 '새떼'에 대한 온갖 의혹이 제기되던 4월 초, 국방부는 전 국민을 상대로 소설을 써가며 거짓 해명을 한 셈입니다. 표적을 접촉했을 때 새떼인지 뭔지 몰랐다가, 사격 후 새떼라는 걸 확인했다고 했는데. 녹화된 테이프가 없다면 어떻게 확인을 했겠습니까.
녹화 테이프를 보지 않고, 사격 당시 새떼라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했다면 5분 동안 130여 발을 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속초함은 분명 '사격 당시'에는 미상의 물체가 대체 무엇인지 몰랐던 게 분명합니다. 새떼를 확인했다면 일찌감치 사격을 중단했을 것입니다.
녹화 테이프가 정말 없다면, 국방부가 어떤 속사정 때문이든, 국민들에게 소설을 써가며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유통시켰다고 의심할 만합니다.
"녹화를 하지 않았다. 테이프가 없다." 조사단의 이 말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뻔히 있는 '새떼 녹화 테이프'의 존재를 은폐하는 발언이기 때문입니다. 해군의 상식을 적용하면 EOTS 녹화 테이프는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속초함이 사건 현장으로 항해를 지시 받은 시각은 밤 9시31분이었고. 전속력으로 달려 사건 해역에 도착한 게 밤 10시40분입니다. 미상의 표적을 발견한 건 밤 10시55분입니다. 출동을 지시받고 표적을 발견하기까지 1시간20여 분의 긴 시간이 있었고, 사건 해역에 도착한 뒤 표적을 발견하기까지도 15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대잠경계태세 A급이 발령된 비상 상황에서도 record 버튼을 누를 시간은 충분했습니다. 속초함 사격통제장치의 핵심인 EOTS를 녹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사건 발생 시각을 9시45분에서 9시22분까지 당긴 것은 실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워낙 경황이 없어, 보고 시각을 발생 시각으로 착각했다는 해명을 받아들입니다. 백령도 해안가의 TOD 동영상도 정말 "또 있는 줄 몰랐다"는 해명을 수긍할 수 있습니다. 군인들이 TOD 장비의 자동 녹화 시스템을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좀 늦게 공개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공개는 했습니다. 그러나 새떼 녹화 테이프가 '있다 없다'는 전혀 다릅니다.
누구 말이 맞든, 그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의도적 고의가 개입됐을 우려가 큽니다. 국방부가 미상의 물체=새떼'를 입증하는데 사용한 핵심 근거 중 하나인 EOTS가 이렇게 흔들리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국방부 내 진실게임입니다. 그들은 누구 말이 맞든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기자와 시민들의 상식이 살아있다면, 잠잠해진 새떼 논란은 다시 살아날 게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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