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임기 4년을 끝내고 퇴임했습니다. 4월 1일 부터는 새로 임명된 김중수 전 OECD대사가 한국은행 수장으로서의 임기를 시작합니다.
이성태 한은총재는 이임사에서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중앙은행의 위상,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이 총재는 "정부와의 관계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화이부동'이란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지만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결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국가경제 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각자에게 주어진 고유 역할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존중해나갈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동안 '재경부의 남대문출장소' 등의 말에서 미루어 짐작할수 있듯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정부가 간섭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이성태 총재 임기 말년에는 허경욱 기획재정부 차관이 금통위에 참석하면서 논란에 또한번 불을 붙였습니다. 법에 보장된 '열석발언권'에 따른 것이라고 정부는 해명했지만 혹시 금리를 인상할지도 모른다는 분위기를 감지한 정부가 경기부양을 이어가야 한다는 입김을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파다했습니다.
이성태 총재는 중앙은행과 정부가 서로 잘 지내지만 지나치게 가까울 필요도 없다는 말로 정리를 한 셈입니다.
이 총재는 "그동안 위기 대응차원에서 도입, 추진된 금융완화 조치들을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정상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또 한번 강조했습니다. 그동안 경기회복세가 안정적으로 뚜렷하지 않아 13개월연속 금리를 최저수준에서 동결하면서도 이 총재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현재 금리수준이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인식을 피력해왔습니다.
특히 과도한 가계 부채때문에 금리를 올려서는 안된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으로 경제학적으로도 부채가 많으면 금리를 올려서 부채를 조정할 수 있도록, 줄여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게 맞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임사에서도 "과도한 가계부채는 금융 불안 요인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성장잠재력 확충을 어렵게 하는 등 실물경제에도 큰 부담을 줄 수 있는만큼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주문했습니다.
이성태 총재는 재임기간동안 통화 긴축(금리인상)과 완화(금리 인하)의 '극과 극'을 달렸습니다. 한국은행이 1999년 이후 27차례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렸는데 그 가운데 11차례, 41%가 이 총재 재임기간 이뤄졌다는 것만봐도 그렇습니다.
임기 초반 2년은 오르는 집값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린 시기, 후반 2년은 금융위기 등 외부변수로 위기에 처한 경제를 부양시키기 위해 금리를 낮춘시기로 정리됩니다.
결국 올해 들어서는 위기가 빠르게 극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회복국면으로 접어들었고, 금리 인상을 포함한 출구전략의 시기와 폭에 대한 시장의 관심도 증폭됐습니다. 하지만 경기 회복세가 뚜렷하게 정착되지 못하고 주춤한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13개월 연속 사상 최저금리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묶어놓고 후임 총재에게 자리를 넘겨줬습니다.
이 총재는 지난주 한국은행 출입기자들과 조촐하게 송별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 40년 생활을 접는데 대한 소감을 물으니 "시원하다"고 말하더군요. "시원섭섭하진 않느냐?"라는 질문에 솔직히 섭섭한 감정보다는 후련한 것이 더 많은게 사실이라고 진솔하게 얘기했습니다.
당일에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이 총재가 피력한 '80%論'입니다.
"임기 중 최선을 다하셨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나온 말이었는데요. 이 총재는 "나는 능력의 80%만 했다. 100%으로 끌어올리려고 무리를 하면 항상 문제가 생긴다. 자기 힘들고 주변에 민폐를 끼치게 된다."라고요. 언뜻들으면 '게으름에 대한 변명?'쯤으로 들릴 수도 있는데요.
이 총재는 "나는 능력의 120%,140% 일하라는 사람들한테 항상 그렇게 말한다. 욕심을 키우지 말고 능력을 키워라. 그래서 그 능력의 80%만 해라. 그게 본인과 주변에 두루 도움이 되는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능력도 안되는데 무리수를 둬서 오버를 하는 것과 능력을 전반적으로 키워 거기서 여유를 갖는것, 일의 총량은 결국 비슷할 수 있지만 일의 결과물의 질, 주변에 미칠 영향 등을 고루 판단하면 큰 차이가 난다는 말이었습니다.
항상 'fighting!!하는 것, 헝그리 정신까지 다해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미덕이고 가치라고 말하는 우리나라 사회적분위기에서 어찌보면 상당히 신선한 시각으로 느껴졌습니다.
무리수를 둘 때에 생길수 있는 부작용은 아예 부족하게 일한 것만 못하는 결과를 내는 경우를 우리는 여러차례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능력이 80%만 하고도 조직에 만족을 줄 정도가 되는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부터도 그렇고요. 자신의 능력에서는 120%, 140%해야 그나마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지 않겠냐는 막연한 불안감이 그것입니다.
어느 개그프로그램에서 풍자했듯 '1등만이 살아남는 우리 세상' 은 '80% 론'을 어느 정도 설득력있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한번쯤 새겨보고, 또 능력이 된다면, 실천도 해보고 싶은 그런 말이었습니다.
이성태 총재의 '80%論'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