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일본 황태자인 요시히토가 대한제국을 방문해 궁궐 등을 둘러보고 경복궁 경회루에서 대한제국의 황태자 영친왕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가만히 사진을 보면 이상한 점이 보인다. 대한제국의 영친왕은 이토 히로부미 통감과 함께 사진 속에서 오른쪽에 치우쳐 위치하고 한가운데 자리는 요시히토가 차지하고 있다.
또 요시히토를 뺀 나머지 세 사람은 수평으로 서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이동해 있다. 그래서 요시히토의 키가 상대적으로 더 커보인다.
흔히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진평론가 이경민이 쓴 '제국의 렌즈'(산책자 펴냄)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만들어진' 사진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식민지 시절 조선 황실의 사진이 초라한 것이나, 미개하고 야만적으로 보이는 백성의 사진은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가지고 찍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식민지 조선의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인 사진사를 고종의 어용사진사로 붙여 조선이 스스로 황실의 이미지를 내보이는 행동을 막았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일본인 어용사진사는 고종을 비롯한 황실 인물을 머리를 짧게 깎고 어울리지 않는 서양 제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렸다. 일본인과 함께 찍을 때는 더 작고 덜 화려한 모습을 하도록 신경 썼다는 것.
그 결과 대한제국의 황제인 고종은 사진 속에서 어설픈 '식민지 군주'로, 순종 황제는 '이왕'으로, 그리고 황태자 영친왕은 '황국의 군인' 정도로 보이게 됐다.
왜곡하는 카메라 렌즈의 시선은 황실만 향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일본의 인류학자 토리이 류조의 사진 역시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조선인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중국과 대만, 몽골은 물론이고 시베리아와 남아메리카에까지 진출해 인종에 대해 현지조사를 했던 토리이 류조는 조선에서 '신체 측정 사진'이라는 인류학 사진 자료를 남겼다.
이 사진에서 조선인은 5~10명씩 줄지어 늘어서서 옷에 번호표를 달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데, 토리이 류조는 이들을 전형적인 인류학 사진촬영의 방법 대로 정면과 측면에서 각각 촬영함으로써 조선인들을 박물관에 전시된 '표본'으로 전락시켰다.
이로써 조선인은 원시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그는 이를 더 강조하려고 일부러 백정이나 무당과 같은 계층의 인물을 선택하기도 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서양인들이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지었던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름도 지금은 찬사라기보다는 전근대의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나라라는 오리엔탈리즘적인 개념으로도 지적되는데, 이런 이미지를 확정한 것이 바로 서구인들이 찍은 사진이다.
프랑스 외교관 이폴리트 프랑뎅과 독일 조사관 헤르만 잔더의 사진을 보면 이런 원시성과 불결함, 또 서러움 등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저자는 풀이한다.
저자는 책 끝의 '보론'에서 역사기록물로서 사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체계화된 사진 아카이브 구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352쪽. 1만 8천 원.
(서울=연합뉴스)
일본 고종 사진사로 일본인을 고집한 이유
'제국의 렌즈'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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