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가 22일 외교문서를 공개했습니다.
정부는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들을 공개해 오고 있는데요, 올해는 1979년에 작성된 문서가 그 대상입니다.
1979년…. 역사적으로 많은 일이 있었죠.
카터 미 대통령의 방한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10·26 사건, 이어 신군부의 쿠데타인 12·12 사태 등…. 그래서인지, 이번에 외교부가 공개한 문서는 1,270여권으로 18만여쪽에 달합니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들을 주제별로 나눠 몇 차례에 걸쳐 게재하고자 합니다.
다만, 이것이 당시 외교문서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충분히 예상하시겠지만, 민감한 문서에 대해서는 정부가 사전 검열(?)을 통해 공개를 미루고 있습니다.
대신,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도록 가급적 당시의 언어(예를 들어, 북한을 북괴로 표현)를 그대로 올리겠습니다.
◆"김일성이 모험 감행하면 한국에 불리"
오늘은 첫번째로, 신군부의 쿠데타인 12·12 사태 직후 상황입니다.
12·12가 발생한 직후 12월 13일 오후 5시 30분(미국 시간), 당시 김용식 주미 대사는 미 국무성 홀부르크 차관보의 요청으로 20분간 면담을 했습니다.
이자리에서 홀부르크 차관보는 다음과 같이 얘기합니다.
《한국 정부가 긴급조치 9호를 철폐하는 등 한국의 정치 발전에 큰 진보가 있었음을 미국으로서는 크게 환영한바 있었으나 12·12 후의 사태가 이미 발표한 미국의 성명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려되는 바이다.
둘째, 군 체제가 너무 급격하게 변동됨으로써 군 지휘 체계가 동요될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되는 경우에는 김일성으로서는 군사적인 모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또한 지적하고 싶다.
김일성이 모험을 하는 경우 미 행정부로서는 대한 방위 공약을 이행할 것이나 현재와 같은 여건하에서도 미국내에서 한국에 불리한 여론이 크게 대두될 것을 걱정하는 바이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들어 신군부의 쿠데타를 완곡하게 비판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김용식 대사는 '북괴 내에서 특이한 군사적 움직임이 있는지' 물었고, 이에 대해 홀부르크 차관보는 '아직까지 그러한 징후는 없으나 김일성이가 한국 국내 정세를 오판할 가능성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외교문서에 나와 있습니다.
◆"백악관도 불만"
미국의 불편한 심기는 19일 박동진 외무장관과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의 면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당시 박 장관은 글라이스틴 대사를 오전 10시 30분에 장관 집무실로 불러 1시간 가량 면담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박 장관은 먼저 '저자세'로 얘기합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박 대통령 시해 사건과 관련해 정승화 대장을 조사하려던 것이 의외로 군부대 이동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며, 정부의 안정에 영향을 미칠 어떤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다.
전두환 장군은 연합사 작전통제권과 관련해 12·12 돌발사태로 위캄 장군이나 미측에 불편을 준 점을 극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을 것임을 미측에 확약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한 글라이스틴 대사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본인이 지난 12월 13일 최규하 대통령 각하와 면담한 이후 14일 전두환 소장, 그리고 어제 신현확 국무총리를 뵈온 자리에서 계속 강조하였다시피 본인과 미국 정부가 우려하는 점은 3가지다.
첫째, 한국군이 금번 미측과의 협조를 완전히 무시하고 대대와 사단병력을 자의로 이동함으로써 한미 연합군의 군사적 유효성과 행동의 자유를 지극히 훼손하였다고 생각하며 또한 금번 사태로 인해 한국 장성의 인사와 결속에 미친 영향은 단기적 및 장기적으로 보아 극히 심각하다고 본다.
둘째, 연합사의 작전통제권의 위반 및 위계질서의 문란은 놀라울 정도에 달하였다고 본다. 금번 사태로 앞으로의 연합사의 운영에 많은 문제점이 제기됐다고 본다.
셋째, 한국의 정치발전 문제에 관한 미국의 입장은 이미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본인이 이 자리에서 재차 부연하지 않고자 한다.》
글라이스틴 대사는의 발언은 강도를 더해갑니다.
《상기 3가지 문제 중 첫번째와 두번째 문제에 대해 미국 군부는 극도의 불만을 표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불만은 주한미군 사령관으로부터 미합참의장을 거쳐 백악관의 최고위층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것임을 말씀드리고자 한다.
한국 군부내의 위계질서에 관해서는 앞으로 적지않은 문제점이 야기될 것으로 보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군부가 한국군부와 계속 이야기할 것이다.
지금까지 본인도 이러한 제반문제와 관하여 전두환 장군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바 있으나 솔직히 그의 설명이 모든 점에서 만족한 것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글라이스틴 대사는 군부가 아닌 민간 정부와 상대할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미국 군부가 한국 군부와 앞으로도 대화를 계속할 것이나 미국 정부로서는 어디까지나 한국의 민간정부와 상대할 것이며, 한국의 민간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다.》
◆9일 뒤 미국 태도 변해
이러한 글라이스틴 대사는 9일 뒤 태도에 다소 변화를 보입니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28일 낮 12시 30분부터 1시간 20분 동안 박동진 장관을 다시 면담한 자리에서 먼저 '장관님께서 보시기에 12·12 사태 이후 한국 군부내에 안정이 회복됐다고 보시는지' 질문을 합니다.
이에 박 장관은 다음과 같이 답합니다.
《본인이 보기에 12·12 사태로 군부 내 변동이 있은 것은 사실이나 지난번 요직 개편으로 상당히 안정이 되었다고 본다. 개편 이후 두드러진 특징은 물론 육사 11기 졸업생들의 군 내부에서의 발언권이 증대된 것인 바, 이들 11기생들은 최초로 정기 육사과정을 마침으로써 직업군인으로서 상당한 긍지를 갖고 있는 군인들이라고 듣고 있다.
본인이 이들과 접촉해본 바에 의하면, 그들은 한미 안보 유대의 중요성과 그 유지발전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충분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미측도 12·12 당시 작전권 관계로 다소 문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너무 구애되지 말고 군부의 새 지도자들과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도 한미 군부 상호간에 대화를 좀더 활발히 함으로써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것이 좋겠다.》
이어 글라이스틴 대사의 말입니다.
《미측도 비슷한 생긱이며, 새 군부 지도자들에 대해 그들을 배척하거나 경원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2·12 사태 당시 이들이 작전 통제권에 관한 한미 간의 합의를 위반한 데 대한 위캄 장군 이하 미국 군부의 불만은 아직 잔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측으로서 아직 확실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12·12 사태를 일으킴에 있어서 이들 장군들의 정치적 의도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극도의 불만을 표시하며 '민간' 정부와만 상대하겠다는 9일 면담 기록과는 분명히 차이를 보입니다.
과연, 그 사이 9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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