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한 빨리 솔선해서, 일본인은 물론 전 세계인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일본 총리는 지난 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도요타자동차의 대규모 리콜 사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바닥매트에 이어 가속페달, 그리고 하이브리드 차량인 프리우스와 '렉서스 HS250h' 등 거의 전 차종에 걸쳐 전 세계 60개 국가·지역에서 리콜에 들어가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직면하자 총리까지 나서 도요타자동차에 피해 최소화를 위한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도요타 리콜 사태에 따른 일본 사회의 충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도요타자동차의 리콜 파문은 앞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일본항공(JAL)의 법정관리 돌입, 항공기 좌석 메이커인 고이토(小絲)공업의 자재 성능 위조 사건 등과 맞물리면서 '일본'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추락에 가속 페달을 밟았다.
특히 도요타자동차는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으로 불릴 정도로 일본과 전 세계에서 브랜드 가치가 높았다는 점에서 충격이 컸다.
도요타의 추락은 곧 일본 제조업의 추락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는 지적도 속속 제기됐다.
자동차 저널리스트인 가토 구미코(加藤久美子)씨는 11일 "도요타는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일본인의 '양심'과 같은 메이커였다.
열심히 일하는 일본인을 대신하는 이미지 브랜드였다"며 "그만큼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1980년대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에 나서면서 품질개선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도요타식 생산 방식은 전 세계에서 '일본차=안전'이라는 인식을 심어줬고 이는 도요타자동차의 점유율 확대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2008년에는 전세계 판매 890만대로,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르는 등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세계 점유율 확대를 위한 전략으로 선택한 현지 생산, 현지 부품 조달은 오히려 도요타의 최대 강점인 완벽한 품질관리의 한계를 노정하면서 대규모 리콜사태라는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다.
여기에 "세계 제일의 품질"이라는 도요타에 대한 안팎의 평가는 오만으로 변질됐다.
도요타는 소비자들의 불만 제기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기보다는 "제품 결함이 아니다"라고 치부하면서 문제를 키웠다.
이번 리콜 사태의 기폭제가 된 가속페달의 경우도 이미 3년 전에 미국의 한 운전자가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도요타는 "특수한 경우"라면서 무시했고 이는 은폐 논란과 함께 결과적으로 1천만대에 달하는 사상 유례없는 리콜 사태로 비화됐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리콜사태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미국 언론은 연일 도요타자동차 때리기에 나서고 있고 미국 의회도 이달 하순과 내달초에 걸쳐 하원 2차례, 상원 1차례 등 총 3차례에 걸쳐 도요타 리콜사태의 원인과 대책을 조사하기 위한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적어도 내달 초까지는 도요타 리콜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언론의 주요 뉴스로 다뤄지게 되면서 도요타자동차가 수세에 몰리게 된 것이다.
리콜사태의 충격은 이미 수치로도 나타났다.
지난 1월 도요타자동차의 미국 내 판매량은 9만 8천 796대로 전년 동월에 비해 15.8%나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의 경우 2008년 하반기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의 충격으로 자동차 판매가 극도로 위축됐고, 리콜파문이 지난달 하순에 불거졌다는 점을 고려할 경우 대규모 리콜 사태가 판매에 미친 악영향은 이 수치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리콜 사태 초반 꿈쩍도 않던 도요타 창업주의 손자인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사장이 이달 들어 두차례나 직접 기자회견을 갖고 전 세계 고객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나, 9일자 워싱턴포스트에 특별 기고를 통해 "도요타의 사장으로서 개인적 책임을 인정한다"고 재차 사과하는 동시에 "미국 운전자들과 그 가족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즉각 행동에 들어가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위기감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도요타의 리콜사태에 따른 위기감은 자동차 업계 전체로 확산된 상태다.
리서치 업체인 어드밴스트 리서치 재팬의 엔도 고지(遠藤功治) 이사는 "프리우스 등 하이브리드 차량의 리콜이 도요타의 영업실적에 직접 미치는 영향은 40억엔 정도에 그친다"며 "그러나 하이브리드 차량은 도요타 기술의 상징이다.
그동안 구축한 브랜드 이미지가 무너지면서 판매 대수가 대폭 감소해 도요타의 실적에 상당한 타격을 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사상 초유의 리콜 사태로 도요타자동차가 그대로 침몰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적다.
도요타가 1980년대에 해외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현지 생산 체제를 구축, 이번 대량 리콜사태를 불러오는 역설적인 상황에 몰렸지만 그동안 세계 시장 진출 과정에서 보여줬던 기술력과 영업력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뒷북 대응이란 비판에 직면했지만 도요타의 사장이 뒤늦게나마 두 차례에 걸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고객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성의'를 표시한 것도 변화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히려 이번 대량 리콜 사태가 도요타자동차에는 그동안의 느슨하고 오만한 대고객 서비스와 품질관리 시스템을 재점검해 체질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국 자동차 메이커를 비롯한 도요타자동차의 경쟁 업체들이 이번 사태로 인한 반사 이익에 기대를 걸면서 자신들의 품질관리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검증에 나서고 있지만 도요타자동차만큼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회사가 없을 것이란 점에서다.
또 도요타자동차뿐 아니라 역시 두차례에 걸쳐서 리콜을 단행한 혼다나 다른 일본 업체도 이번 도요타 리콜 파문을 통해 그동안의 경영 관행을 전면적으로 재검토, 체질 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이는 등 일본 산업 전체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선반공 출신의 작가인 고세키 도모히로(小關智弘) 씨는 "늑장 대응으로 인해 도요타는 물론 다수의 하도급 회사, 관련 기업도 나쁜 영향을 받게 됐다.
무엇보다 일본 제품의 신뢰가 떨어지는 것이 무섭다"며 "(도요타가) 일본 산업 전체에 책임지는 입장에 있다는 점을 자각하고 확실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도요타자동차가 도요다 사장을 정점으로 하는 '글로벌 품질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추락한 품질신화를 재연하려 하는 것이나 도요다 사장이 미국을 직접 방문해 파문 수습에 나서려는 것도 조기 신뢰 회복을 통한 재도약을 겨냥한 것이다.
다만, 1980년대 해외 진출 본격화 이후 성장제일주의를 지향하면서 수십 년에 걸쳐 생긴 품질관리상의 공백을 단기간 내에 바로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
결국 미국 의회의 청문회가 예정된 이달 하순에서 내달 초 사이에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도요타에 대한 비판 여론을 얼마나 빨리 잠재울 수 있느냐가 도요타의 향후 운명을 가늠할 첫번째 고비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어드밴스트 리서치의 엔도 이사는 "비용 감축을 지나치게 우선하고, 생산을 급속하게 확대하면서 빈틈이 생긴 것은 반성해야 한다"며 "품질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 회사 분위기를 다잡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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