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위의 기적'으로 불리던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는 올 한해 자존심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두바이는 최근 몇 년 간 고속 성장 가도를 달려왔지만 국제경제위기에 따른 채무 상환 압박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지난 달 25일 사실상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을 선언했다.
정부 소유 최대 지주회사인 두바이월드의 채무 260억 달러를 6개월간 유예해 달라고 채권단에게 요청했다는 두바이의 전격 발표는 시장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두바이 정부는 채무상환 유예 요청이 두바이월드에 대한 채무 구조조정 작업의 일환이라고 밝혔지만 두바이의 채무 상환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며 시장은 일순간 패닉에 빠졌다.
두바이 정부의 채무유예 선언 다음 날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국가의 주요 주가지수는 일제히 3% 이상 폭락했으며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증시도 2~5%의 급락세를 보였다.
세계 최고 건축물, 세계 최대 인공섬 등 상상을 초월하는 대형 프로젝트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두바이가 빚 독촉에 시달리는 신세로 전락한 것은 과잉 투자와 과도한 차입 자본 때문이다.
석유 자원이 거의 없는 두바이로서는 프로젝트 진행에 필요한 자금을 지나치게 외국 자본에 의존했고 이 때문에 두바이 정부와 정부 소유기업들의 부채는 어느덧 800억 달러에 달했다.
2006년 두바이 GDP(국내총생산)가 374억 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과도한 부채 규모가 아닐 수 없다.
부도 위기에 몰렸던 두바이가 잠시나마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 것은 '맏형' 아부다비의 자금 지원 덕분이었다.
아부다비는 지난해 2월과 11월 채권 매입 방식으로 각각 100억 달러, 50억 달러를 두바이에 지원한데 이어 지난 14일 100억 달러를 추가로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아부다비가 두바이의 몰락을 방치하진 않을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기대가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1971년 UAE 출범 이후 대통령은 아부다비 통치자가, 부통령은 두바이 통치자가 각각 나눠 맡는 방식으로 권력 배분이 이뤄져 왔다. 아부다비가 UAE의 맏형으로 불리는 이유도 이 같은 권력 배분 방식에 기인한다.
세계 3위 석유 생산국인 UAE에서 아부다비는 전체 석유 매장량의 95%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석유 매장량의 4%를 보유한 두바이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자금력을 자랑한다. 현재 운용 중인 국부펀드만 6천억~7천억 달러에 달한다.
그러나 아부다비가 지속적이고 무조건 두바이를 지원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부다비 측은 두바이 쇼크 직후 "두바이가 내건 약속들을 검토한 뒤 사안별로 접근해 언제 어디서 도울 것인지를 선택할 것"이라고 밝혀 선별적 지원 의사 방침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이번 위기를 계기로 두바이의 알토란 같은 자산을 손에 넣고 두바이 경제에 대한 통제권 강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은 금융권에서는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두바이 회생의 관건은 무엇보다 두바이가 총 800억 달러에 이르는 부채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에 달려 있다.
2012년까지 3년 안에 상환 또는 재융자해야 하는 금액만 500억 달러에 이른다.
경제 호황일 때만 해도 '두바이'라는 명함만으로도 자본 차입과 재융자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투자자나 금융기관들은 각종 건설 프로젝트가 중단된 두바이에 신규 자금을 투입하거나 채무 상환을 유예해 주는 일이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돈줄이 막힌 상황에서 거액의 빚을 갚아야 하는 현재의 상황이 두바이에는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두바이와 채무 협상을 벌이는 채권단은 두바이가 주요 자산 매각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지만 두바이 정부는 경제 상황의 압박에 밀려 자산을 헐값에 매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채무 협상에 정통한 한 서방 금융인은 "자산 매각 방안을 배제하는 것은 두바이가 매우 영리하거나 아니면 상황을 전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두바이는 금융, 물류, 관광 분야에서 여전히 강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두바이는 화약고라 불리는 중동의 한복판에서 안정된 치안을 유지하면서 각 분야의 허브로서 인프라를 공고하게 구축해 놓았다. 이는 이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월등한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위기만 넘기면 어느 국가보다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두바이 정부 관리들의 말을 과장된 것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두바이의 재기는 채무 상환이 제대로 진행된다는 가정 하에서 가능하다.
채권단과의 채무 협상이 결렬되는 최악의 경우 채무 불이행(디폴트) 상황까지 치닫게 된다면 그로 인한 후폭풍은 모라토리엄 선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메가톤급 충격이 두바이를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
두바이호가 격랑의 파고를 헤치고 순항할 수 있을지, 결국 좌초하게 될지 세계는 주목하고 있다.
(두바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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