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타란티노 감독 팬들이 꽤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영화광들 눈높이에 맞춘 영화적 인용들 때문에 일반 관객들은 쉽게 그의 영화를 좋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국내에 소개된 그의 영화들은 뜨거운 평단의 반응에 비해 흥행성적은 그리 신통치 않았습니다.
이번 영화는 감독이 눈높이를 대폭 낮춘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촌스러울 정도로 익숙한 방식으로 영화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전작 '데쓰 프루프'가 감독 자신을 중심에 놓고 한판 놀았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관객을 염두에 더 두고 화끈한 한판 굿을 벌였다고 할까요.
2차 대전이 한창 뜨겁게 전개되던 1940년대 미국 남부 테네시 출신 알도 레인(브래드 피트) 중위는 유태인 출신 미국 병사들을 모아 특수부대를 조직해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려 독일군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으로 떠오릅니다.
유태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파리에서 작은 극장을 운영하는 쇼사나(멜라니 로랑)는 몇 년전 유태인 사냥꾼으로 악명높은 독일군 장교 한스 란다(크리스토프 왈츠)에게 가족들이 몰살당했습니다.
그녀가 운영하는 극장이 히틀러와 괴벨스 등 독일군 최고위층 인사들이 참여하는 전쟁 선동영화의 VIP 시사회장으로 선정되자 그녀는 복수를 위한 계획을 세웁니다.
한편 연합군을 위해 일하는 첩자인 독일 여배우 브리짓 본 해머스마크(다이앤 크루거)로부터 이 정보를 입수한 알도 중위 부대도 독일군 장교로 위장해 극장에 들어가 이들을 제거하는 작전에 돌입합니다.
등장인물들도 많고 전개되는 사건도 많습니다.
그래서 상영시간도 두시간 반 정도됩니다.
하지만 복잡하거나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타란티노 감독은 탁월한 능력으로 적절하게 인물들을 배치하고 사건을 전개시킵니다.
우리가 많이 보아온 2차 대전 소재 영화들의 기본 구조를 충실하게 따르며 시작해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며 의외성, 돌발성을 훌륭하게 배합해 독창적이면서 재미있는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다른 타란티노 영화들처럼 대사들이 많습니다.
앞 뒤 설명해주는 요소로 작용하기 보다는 주고받는 대사 자체가 엄청난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파리 교외의 한 마을 지하 선술집 장면은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안톤 쉬거가 사막의 휴게소에서 주인과 동전 던지기를 하며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만큼 시종 조마조마하게 가슴 졸이게 만들며 오싹한 서스펜스를 느끼게 하는 명장면입니다.
이런 긴장을 끌고가다가 해소하는 총격이나 격투 장면의 의외성도 좋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다양한 국적이어서 사용되는 언어도 많은데, 영어, 불어, 독일어, 이태리어가 뒤엉키며 억양의 차이, 문화적 차이에 입각한 제스처 등으로 재미있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사건 전개에서 중요한 계기로 사용됩니다.
음악의 사용도 독특합니다. 흘러간 추억의 명화에 쓰인 음악처럼 얼핏 듣기에 촌스러워보이는 악기로 편성한 음악들은 묘하게 영화 장면들과 잘 맞아 떨어집니다.
웅얼거리는 듯한 미국 남부 사투리로 건들거리는 브래드 피트의 연기도 좋지만 이 영화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탄 크리스토프 왈도의 한스 란다 연기가 단연 돋보입니다. 등장하는 장면마다 독특한 제스처를 곁들이며 자신이 대단한 교양인이고 정교한 프로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연기가 스크린을 압도하더군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만들때 소위 역사적 상상력을 가미해 변형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등장인물 문중의 후손들이 들고 일어나는 것부터 걱정해야 하지요.
하지만 타란티노는 과감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영화를 보다보면 그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모든 비디오가게 점원 출신 영화광들이 명감독이 될 수는 없겠지만 타란티노는 정말 훌륭한 전직 비디오가게 점원입니다.
(* 그때는 그 정도였고 요즘 경호 기술이 발달해서 그런지 몰라도 총통 참석 행사치고 극장 경비가 너무 허술한 점은 리얼리티가 다소 떨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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