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가면 철공소들이 모여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업체수가 천개를 넘는다고 합니다. 문래2가에서부터 4가, 5가 일부까지 20~30평짜리 조그만 공장들이 표현 그대로 다닥다닥 붙어있습니다. 이 지역의 이면도로는 차 2대가 나란히 다닐 수 없는 수준이고 집 뒤의 골목길은 두 사람이 어깨를 편 채 지나쳐 가기 힘듭니다. 다 쓰러져가는 집들 가운데는 심지어 일제시대 지어진 적산가옥도 있습니다. 마치 1970년대 어느 순간에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듯합니다. 주변을 빙 둘러싸고 40층 가까운 위압적인 고층 빌딩들이 즐비하게 보이지만 이 지역은 순식간에 시간을 30년 전으로 돌려놓습니다.
그러니 생활 환경이 어떻겠습니까? 온 동네에 쇠를 가는 소리가 진동을 합니다. 한 주민은 밤에 나와보면 장관이라고 말합니다. 달빛이나 가로등 불빛을 받아 공기가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입니다. 쇳가루가 그만큼 공중에 많이 떠다닌다는 것이죠. 안 쓰러지는 것이 용하다 싶을 만큼 낡고 쇠락한 집에서 살자면 어려움이 한두가지겠습니까? 이미 수십년전에 새로 개발했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런 서울 속의 별천지는 이곳 한군데만이 아닙니다. 같은 영등포구의 양평동은 지역 규모만 작을 뿐 상태는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심각합니다. 성동구 성수동 2가의 인쇄단지는 공장의 규모가 좀더 크고 약간 더 새로운 건물이기는 하지만 역시 낙후돼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금천구 가산동, 구로구 신도림동 등 서울 시내 7개 구에 퍼져 있는 '준공업지구'의 모습은 대부분 대동소이합니다.
지난해 8월까지 이런 준공업지구에는 아예 아파트를 지을 수 없도록 법규로 못을 박아놨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입니다. 서울이 커지면서 예전에 변두리였던 이들 준공업지역은 도심으로 바꼈고 주변은 주택가로 변했습니다. 여건이 되거나 비교적 넉넉한 업체들은 좀더 넓고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공단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럴 수 없는 극히 영세한 업체들만 남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더더욱 자체적으로 개발을 하기 어려운 여건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쉽게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은 돈 되는 아파트를 짓도록 해줘 민간 건설업체들이 나서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서울에도 소비와 주거 기능 외에 생산 기능이 최소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왕에 공업지역인 곳은 제조업의 기능을 계속 유지해야 했죠. 게다가 이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수많은 업체를 대책 없이 몰아낼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개발 규제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지역의 시계를 멈춰 놓은 채 지낼 수는 없었습니다. 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철공 기계 소음보다 커지면서 드디어 서울시가 나섰습니다. 우선 지난해 8월 이런 준공업 지역에도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습니다. 그리고 1년여의 준비를 거쳐 준공업 지역 종합 개발 방안을 내놨습니다. 큰틀부터 짚어보면 '공업 기능을 살리거나 더욱 발전시켜주면서 주거는 물론 지역의 특성에 맞게 복합적인 기능을 갖도록 해주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공장의 밀집 형태와 주변 환경에 따라 3가지 개발 유형으로 나눴습니다.
우선 산업 밀집지역에는 공공지원형을 제시했습니다. 지역 내에 주거지는 거의 없고 대부분 공장들이 모여 있는 곳은 산업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해 400%로 돼있는 용적률을 1.2배까지 완화해주고 세제 감면과 자금 융자, 도로·공원 등의 기반시설 설치 지원을 통해 더욱 쾌적하고 현대화된 산업지대로 개발시키는 방안입니다. 즉, 정부가 돈을 들여서라도 낙후되고 영세한 공장들을 더욱 일하기 편하게 바꾸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임대로 들어와있는 영세업체들을 위해 산업시프트, 즉 장기전세주택 처럼 공장을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로 안정적으로 빌려 쓸 수 있는 곳도 만들기로 했습니다.
산업체와 주거가 섞여 있는 곳에는 산업정비형을 적용합니다. 이질적인 두 기능을 토지 구획정리를 통해 분리해서 공장은 공장끼리, 주거지는 주거지끼리 모아놓겠다는 것입니다. 다만 공업지역으로서의 성질과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주요 간선도로변에는 우선 산업시설을 배치해 산업축을 만듭니다. 대신 주거 지역에서는 기존에 허용한 용적률 250%를 300%까지 늘릴 수 있도록 했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늘어난 용적률의 절반은 시프트, 즉 장기전세주택을 짓도록 했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서민들도 살 수 있는 곳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역세권이나 교통 요지 주변과 같이 그 지역의 전략거점이 될 만한 곳은 지역중심형으로 개발합니다. 공업 기능에 주거 기능을 더하는 것은 물론 문화와 상업 기능 등 지역의 중심이 될 만한 다양한 기능을 확보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공동주택 등의 용적률을 400%까지 완화해주는 대신 늘어난 연면적의 20% 이상에 문화시설 등을 유치하도록 의무화하는 한편 일정 비율의 토지를 공공 목적의 임대산업시설 부지로 기부채납하도록 했습니다. 공업과 상업, 주거, 문화 전 기능을 망라하겠다는 것이죠.
일견 서울 시내 준공업지역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 틀을 마련한 듯 보입니다. 토지의 집약적 이용을 통해 공업 기능을 위축시키지 않으면서도 주택 공급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 무엇보다 개발의 유인을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재개발이 그러하듯이 모두가 웃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현재 서울의 준공업지역에서 활동하는 업체들이 워낙 영세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업체 사장님의 말입니다. "아무리 산업 시프트로 아파트형 공장을 짓는다해도 현재 여기 잇는 10~20평짜리 공장을 다 수용할 수 있겠어요? 아파트형 공장은 적어도 한 곳당 40평은 넘을텐데 그러면 지금 부담하고 있는 보증금, 월세보다 최소 2배 가까이 더 줘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런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업체는 30%도 안됩니다. 결국 보상금 몇푼 지워주고 다 나가란 얘기 밖에 안될 겁니다. 그럼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겠어요. 잘못하면 용산 참사 하고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주택과는 또 다르기 때문이죠. 살 곳이 있고 없고는 불편의 문제이지만, 일터가 있고 없고는 생존의 문제니까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쿡쿡 박혀왔습니다.
물론 서울시가 열악한 지역 상황을 외면한 채 나몰라라 할 수는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 죽어가는 도시 기능을 재생하려는 노력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래도 준공업지역의 재개발은 신중하게,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의 필요와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따져보세요. 첫머리에 말한 문래동만 해도 어림 잡아 천개의 공장에 일하는 사람이 평균 4명이라 하고 거기에 딸려 있는 식구를 3명이라고 해서 계산해도 무려 만2천명의 생존이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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