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이란 이름을 들어보셨는지요?
아직 고등학생인 야스나리군에게는 다소 낯선 인물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지간한 일본 사람들은 '김대중'이란 이름을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전직 한국 대통령이었고 한국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지요. 지난 18일 85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타계한 다음 날 일본 조간신문의 김 전 대통령 부음 기사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의 생애에 대한 높은 평가도 평가지만 무엇보다 그 보도의 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요미우리 신문이 1면과 국제면,사회면 등 6개면에 걸쳐 기사를 실었고 아사히 신문은 사설은 별도로 하고 5개면에 걸쳐서 정말 상세하게 파란 많았던 그의 삶을 정리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에서,특히 정치권과 지식층 사이에서 대단한 지명도를 갖고 있다는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부음을 그렇게 보도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과문한 탓이겠으나 일본 언론에서 누군가의 부음을, 외국인은 물론 일본인도 포함해서 말이지요. 그만한 분량으로 보도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러시아의 옐친 전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일본 언론이 크게 보도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김 전 대통령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렇게 위대한 인물이었나하는 생각을 잠시 했을 정도였습니다.
야스나리君.
저는 군에게 며칠 전 타계한 한국의 한 전직 대통령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일본 언론도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85년의 파란만장한 세월 만큼이나 김 전대통령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립니다.
극단적인 찬사와 비난이 있습니다. 그 중 어느 한 쪽의 판단이 맞노라고, 그래서 그 판단의 근거가 될 만한 이야기들을 야스나리君에게 늘어놓을 생각도 없습니다.
그가 결정적으로 일본에서 유명해진 계기는 지난 1973년 당시 한국 중앙정보부가 저지른 김대중 납치 사건입니다.
도쿄 한 복판, 그것도 대낮에 일국의 대통령 후보를 지낸 인사가 납치당한다!
스파이 영화에서나 나올 만한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진 것에 대해 일본은 경악했을 겁니다.경악할 만한 일이지요.
일본 언론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보도했을지 조금은 짐작이 됩니다만, 이 사건으로 김대중이라는 이름 석 자는 지울 수 없는 이름이 됐습니다. 또 이 때부터 일본 사람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지켜주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을 갖게 되지 않았나 짐작합니다.
그 뒤에도 김 전대통령의 일생은 제가 봐도 드라마틱합니다. 감옥에 가고 연금을 당하고,사형 선고까지 받는 수난을 딛고 대통령이 되고 불가능할 것만 같던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노벨상을 받고...등등 그 분의 극적인 인생 드라마는 일상이 조금은 권태로운(?)일본 사람들이 보기에는 흥미진진했을 겁니다.
김대중 씨가 1980년 내란 혐의로 기소돼서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습니다.
그 때 해외에서 그에 대한 구명 운동이 활발해집니다. 일반적으로는 카터와 레이건 두 미국 대통령이 구명운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통성이 결여된 군사 쿠데타 세력에게는 미국의 인정이 무엇보다 필요했고 그래서 미국의 전두환 정부에 대한 인정과 김대중 씨의 목숨을 맞바꾸었다는 것이지요. 사실에 대단히 근접한 이야길 겁니다.
그러나 한 정치인의 목숨을 두고 벌어진 한미 두나라 최고위층의 은밀한 거래에는 저는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훨씬 덜 알려진 일본의 시민단체들의 김대중 구명운동, 그 이야기를 야스나리군과 나누고자 합니다.
야스나리君.
이 글을 적어나가다가 저는 문득 잊고 있었던 일본인 이름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스즈키 젠코.
들어본 적이 있겠지요?
1980년대초 일본 총리를 지낸 인물입니다. 현 아소 총리의 장인이기도 합니다. 그의 이름은 제 머릿속에 망언의 주인공으로 기억돼 있었습니다.
제 희미한 기억은 스즈키 총리가 '김대중 씨를 사형에 처하면 한일 경제 협력이 어려워진다'라는 식으로 한국 정부를 협박했다고 남아있습니다.
정확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인터넷 등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봤습니다. 얼핏 찾아본 내용으로는 사형이 확정된 김대중씨와 관련해 스즈키 총리가 '일본 정부의 깊은 관심과 우려'를 당시 최경록 주일대사에게 전한 것으로 돼있네요. 어쨌든 그 발언을 당시 한국 정부와 언론에서는 내정간섭 망언으로 규정했습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제가 당시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 관제 언론을 통한 스즈키 망언 규탄 열기가 대단했던 거 같습니다.
야스나리군은 잘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불과 이십여 년 전만해도 한국에서는 언론이, 정부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기도 하고 부풀리기도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런 시대가 있었고, '스즈키 망언' 파문이 있었을 때는 그런 일들이 예삿일처럼 벌어지던 때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당시 일본 정부의 최고 책임자가 주일한국대사에게 '깊은 관심과 우려'라는 외교적 언사로 포장되긴 했지만 공객적으로 압력을 가했다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분명히 내정간섭이라는 반발이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스즈키 수상이 왜 그런 발언을 했을까요? 일본 정치인들의 발언에 대해서 한국 정부는 물론 한국 국민들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잘 알고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조금 더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도쿄대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의 기록이 있더군요.
80년대 초반 일본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일본에서 김대중 구명 운동이 대단히 활발했다고 합니다. '김대중을 죽이지 마라'는 일본 국민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는 하루키 선생의 글만으로는 정확하게 가늠하기 어렵습니다만 일본 국내의 김대중 구명 운동이 스즈키 수상의 문제의 '망언'이 나오는데 큰 역할을 했음은 틀림없는 듯합니다.
야스나리君.
김대중 구명 운동이 왜 일어났을까요?
그리고 왜 그 운동이 수상의 파격적인 발언으로까지 이어졌을까요?
저는 그것이 김대중 개인의 목숨 구하기 차원만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1973년 도쿄 한 복판에서 납치된 이웃나라 정치인에 대한 동정과 연민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민주주의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감이, 그 운동의 원동력이었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김대중을 죽이지 말라'는 외침이 여론의 압력이 되어서 스즈키 수상의 압력성 구명 요구로 이어졌을 것입니다.
김대중 구명운동에 참가한 양심적인 일본 사람들의 목소리가 8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소중한 지원 세력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또 그들의 목소리는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 군대 위안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일본의 양심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됐고 말이지요.
야스나리君.
80년 일본에서 일었던 김대중 구명 운동이 실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살리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는지는 저로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평범한 일본인들의 목소리보다는, 한국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 백악관의 요구가 현실적으로 더 큰 힘을 발휘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그래서 김대중 구명운동의 맨 앞줄에는 미국 전직 대통령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위해서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80년 어느 가을과 겨울날의 일본 사람들을 가장 앞자리에 큰 글씨로 적어두고 싶습니다.
김대중이라는 정치적 거인의 타계를 계기로, 그 때 그의 생명과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 돈을 모으고,서명을 하고,집회에 참가하고, 한 목소리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간절히 기도해주었던 이름 모를 일본분들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천국에서 안식하고 있을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런 제 생각이 그르다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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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깊이있는 시각과 연륜이 느껴지는 윤춘호 기자는 2007년부터 SBS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1991년 SBS 공채 1기로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국제부 등에서 일했고 특히, 북한 관련 취재와 통일안보분야, 국회 정당팀에서 오랜 기간 활약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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