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천만인 서울이 바야흐로 '발굴공화국' 시대를 맞고 있다. 도심 곳곳이 문화재 발굴장으로 변하면서 '도심 고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탄생케 하는 주역이 되고 있다.
2000년대 접어들어 청계천 복원공사가 불을 댕긴 '발굴공화국' 서울은 이후 그 추세가 가속화했으며, 그런 경향은 당분간 지속할 전망이다.
지난달에 사실상 발굴을 완료한 옛 동대문운동장은 어쩌면 발굴공화국 서울의 막간극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더 많은 대규모 발굴이 서울을 기다리는 중이다.
당장 세운상가가 대기 타석에 들어서 있다.
현재의 상가 건물들이 철거되면 동대문구 세운상가는 거대한 발굴현장으로 변모한다. 발굴 개시 지점은 확실치 않지만, 빠르면 올해 안, 늦어도 내년이다.
문화재 발굴은 서울시 신청사 자리도 피해가지 못했다.
서울시는 구 청사 인접 지점에 신청사 건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신청사에 방해가 된다며 전체가 등록 문화재인 옛 청사 중 부속건물인 태평홀까지 철거하려다가 문화재청의 제동에 걸린 적이 있으나, 이번에는 신청사 부지 자체가 정식 발굴대상이 됐다.
이 신청사 자리에서는 공사 과정 중 문화재가 나오는지를 관계 전문가가 지켜보는 소위 '입회조사'만 이뤄졌으나, 조선시대 유적 흔적이 드러남으로써 문화재청은 지난주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한강문화재연구원(원장 신숙정)에 정식 발굴조사를 명령했다.
서울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수도였다. 그 흔적은 지금도 경복궁을 비롯한 4대 궁과 종묘라는 우람한 건축물로써 남아있다.
이들을 둘러싼 전체 담장이 서울성곽. 이 성곽에는 남대문인 숭례문과 동대문인 흥인지문을 비롯해 안팎으로 통하는 네 개 주요한 문이 있다고 해서 그 내부는 '사대문 안'이라 불리며, 당연히 왕궁과 종묘를 제외한 조선시대 유적은 이곳에 밀집한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볼 때는 종로구와 동대문구가 중심 지역이다.
이런 점에서 서울, 특히 사대문 안은 신라 천년 왕도(王都) 경주나 다름없는 '유적의 지뢰밭'이다.
이는 발굴성과로도 증명되고 있다. 사대문 안에서 조선시대 유적이 나오지 않은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발굴공화국 서울, 그 웅변은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는 종로구청을 둘러싼 지역들인 피맛골과 중학동이 하는 중이다. 이 지역은 전체가 발굴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환경정비를 앞두고 이 일대 풍광은 최근 들어 급속도로 변했다. 기존 상가건물은 대부분 철거됐고, 그 자리에서는 발굴이 이뤄지는가 하면, 발굴을 앞두고 기존 건물 철거가 한창 이뤄지는 중이다.
종로구청 전면, 교보빌딩 뒤편에서는 최근 15세기말-16세기초 무렵 제작된 보물급 조선시대 백자호 3점이 출토되어 화제가 됐지만, 앞으로 이 일대에서 이런 일은 일상사가 될지도 모른다.
이순신 장군 동상 주변 세종로 거리 또한 국가상징거리 조성 계획에 맞춰 발굴이 진행 중이다. 이 일대에서는 조선시대 육조거리가 나타났다.
가칭 '대한민국관'이라는 전시시설이 들어설 현재의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와 그 인근 공원인 '광화문열린마당'도 전시관 계획에 어떻게 확정되느냐에 따라 대대적 발굴이 불가피하다.
지금의 문화부 청사는 당초 리모델링을 통한 재활용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가, 최근에는 그대로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새로운 건물을 '신축'하는 방향으로 대세가 급격히 흐르고 있다.
문화부 청사는 지하실을 마련하지 않은 건물이라, 그 밑에는 조선시대 육조 관련 유적이 그대로 살아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지역이 개발에 따른 이른바 '구제발굴' 성격이 짙지만, 다른 이유로 '학술발굴'이 이뤄지는 곳도 적이 않다.
광화문 및 경복궁 원형 복원 계획에 따라 경복궁 한쪽 귀퉁이 자체가 발굴장으로 변했으며, 역시 복원공사가 예정된 숭례문 주변에 대한 발굴도 한창 진행 중이다.
서울은 사대문 안 옛 도심지역 뿐만 아니라 그 외곽 또한 발굴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사실 '도심 고고학'의 서장을 연 곳은 송파구 풍납토성이다. 그 내부에 대한 발굴은 1997년에 본격화해 2009년 현재도 진행형이다.
은평뉴타운은 하필 그 자리가 조선시대 공동묘지인 까닭에 수만기에 달하는 분묘를 조사하느라 조사단의 등골이 휘어진 곳이다.
발굴공화국 서울은 여타 지역보다 물과 기름 같은 문화유산의 보존과 개발이라는 해묵은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을 역임한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은 "서울, 특히 그 사대문 안은 경주와 똑같은 왕경(王京) 유적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면서 "따라서 사대문 안 도심 재개발 계획 또한 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그 보존을 염두에 두고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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