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권에 'New'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New 민주당 선언 또는 플랜'이 그것입니다.
사실 정치권에서의 'New'는, 대체로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왔습니다.
당명에 붙는 '新' 또는 '새'라는 모습이거나, 대선주자의 새 전략을 나타내는 'New'입니다. 새롭게 뭔가 해보겠다는 뜻이겠지만, 솔직히 정치권에서는 뭐가 잘 안될 때 썼던 말입니다.
'탈이념'과 '현대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등을 핵심 내용으로 한 'New 민주당 선언'을 두고, "어정쩡하고 구체성이 없다-천정배 의원-"거나 "한나라당 2중대라는 착각이 든다-추미애 의원-"는 내부 반발이 적지 않습니다.
지금까지는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같이 관심과 시선을 끄는 효과는 있습니다만, 개념을 두고 벌어지는 토론이 늘 그렇듯 소모적으로 흐를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풀고 싶은 얘기는 이런 개념들과는 별 상관없습니다. 그 보다는 정치권에서의 New의 역사, 조금 거창하게는 New의 정치학에 관한 얘깁니다.
2.
정치권에 나타났던 'New'의 첫번째 모습, '新'과 '새'
너무 멀리 가지는 말고 90년대 이후만 봅시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지난 96년 2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만든 '신한국당'입니다. 전신은 그 유명한 '3당 합당의 민자당'이죠.
당시는,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등의 여파로 여당인 민자당이 지자체 선거에서 대패했던 땝니다. 심기일전해서 김영삼 총재의 지도력을 강화하자고 만든 당이지만, 사실 크게 새로움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당연하게도, 이듬해 15대 총선 결과도 신통치 못했습니다. 1당은 됐지만 과반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14대 때 민자당이 149석(득표율 38.5%)을 얻은데 비해, 15대 신한국당은 139석(득표율 34.5%)에 그쳤습니다. 민주당과 통합해 '한나라당'으로 당명을 바꿀 때까지 1년 9개월간 존재한 당입니다.
신한국당의 '新'을 굳이 찾아보자면, 당내 민주주의의 새로움입니다.
여당으로서는 최초로 대선후보를 당내 경선을 통해 선출했습니다. 97년 7월 21일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고문을 15대 대통령선거 후보로 뽑습니다. 그 전 두 후보는(노태우, 김영삼) 사실 최고 권력자의 '낙점'을 받았죠.
그러나 신한국당의 새로움은 여기까지였습니다. 결국,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한 이인제 경기도지사가 탈당을 하면서 대선에서도 실패하게 됩니다.
☞ (돌발 퀴즈) 탈당한 이인제 지사가 대선 출마를 앞두고 만든 당의 이름은? 정답은 글 말미에...
여소야대로 출발한 김대중 정권은 이른바 '야당 의원 빼오기' 끝에 기어코 인위적인 '여대야소'를 만들어 냅니다. 한나라당의 장외투쟁과 반발 속에 16대 총선이 석달 앞으로 다가온 2000년 1월, '새천년민주당'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급하게 만들어진 새로움은 역시 국민을 감동시키는데 역부족이었습니다.
16대 총선 결과는 전체 273석 가운데 115석.
DJP 연합의 자민련(17석)을 합하더라도 원내과반수에 미치지 못합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새로움은 '386세대의 등장'과 '이인제 전 지사의 합류'였습니다. 이인제 전 지사는 당적을 옮겨 여당의 간판으로 발돋움했고, 2002년 여름 '노무현 바람'이 불기 전까지 가장 확실한 여권주자였습니다.
또 이 때 등장한 386세대 초창기 정치인으로 송영길, 이종걸 의원, 임종석, 오영식 전 의원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물갈이' 강도나 규모로만 따진다면, 앞선 15대 총선에서 YS의 아들이자 동반자였던 현철씨가 보여준 것에 비하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또 하나의 '新'은 정말 눈깜짝 할 사이에 '휙--'지나갔습니다.
열린우리당이 해체 분열되는 과정에 '중도개혁'을 표방했던 이 새로운 당은, 뭔가 보여줄 겨를도 없이 '쪼그라든' 열린우리당, 근근히 명맥을 유지해 온 '새천년민주당'과 차례로 합당해 '통합민주당'이 됐습니다.
현재 민주당의 전신인 셈입니다.
뭐가 새로운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에 몸담았던 사람들도 그 때를 입에 올리기 싫어해 설명을 듣기도 힘듭니다. ㅋㅋㅋ
3.
대선주자들의 'New' 플랜도 정치권의 대표적인 새로움입니다.
당장 '뉴 DJ 플랜'이 기억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92년 14대 대통령 선거를 겨냥해 썼던 전략인데, 어쩌면 'New DJ'는 'New YS'와 동전의 양면일지도 모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 보다 앞선 지난 87년 13대 대선을, '한복 두루마기' 휘날리며 "평민은 평민당으로, 대중은 김대중으로"를 외치는 '투사'로 치뤘습니다.
DJ만 그랬던 게 아니고, 사실 YS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백발'의 YS가 100만 청중에게 손을 들고 있고, 그 위에 '군정종식'이라고 찍혀 있던 선거벽보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투사'로 경쟁했던 두 사람은, 그러나, '보통사람'임을 강조하며 손가방까지 직접 들고 다니는 모습을 연출했던 노태우 후보에게 패배하고 맙니다.
연출된 이미지가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5년 뒤 14대 대선에서 맞붙은 YS와 DJ 모두, '새로운 모습'을 따라하게 됩니다.
92년의 'New DJ'는 당장 TV 연설을 "주부 여러분..."으로 시작했습니다. "정치보복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습니다. 당시 재야 민주화세력과도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도했습니다. 당시 재야세력의 다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DJ 비판적 지지'로 흘러 갔지만, 상당한 세력이 독자후보-백기완 후보- 전술로 분화해 나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했지만, 결과는 또 실패였습니다.
'New DJ'만이 아니라, 'New YS'도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New YS'는 '백발'을 검게 염색하고 '신한국병 치료사'를 자임했습니다.
'New YS'나 'New DJ' 모두, 초창기 한국 정치마케팅의 산물이랄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New' 대신 '준비된 대통령'을 강조했던 97년 15대에 이르러서야 대선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승리에는, IMF 외환위기와 이인제 경기 도지사의 탈당과 출마 등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그러나 'New의 역사와 정치학'의 관점에서는, 공교롭게도 'New'를 버리고 '준비된-Real'을 외쳤을 때 '승리'를 일궈낸 셈입니다.
4.
자 어떻습니까?
'新'도 좋고 '새'도 좋습니다.
정치권의 역사에서 'New'의 결과는 별 신통찮았던 게 사실인데도, 정당과 정치인은 왜 끊임없이 'New'를 외쳐온 것일까요.
혹시 유권자들을 "새 집 줄께 헌 집(표) 달라"며 '어르고 뺨치기 쉬운 사람들'로 봐 온 건 아닌지...
'새로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아니라면,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치에서, 이 '새로움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국민에게 감동을 준 유일한 경우는, 어쩌면 '2002년의 노무현' 정도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다음 글은 이 부분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어쨋든 민주당은, "지금은 초안일 뿐이고 권역별 공개토론회도 추가로 거치겠다" 하니 일단 'New 민주당 선언'에 대한 얘기는 좀 미루겠습니다.
계속 '개념'과 씨름하는 '구름위의 산책'에 머물런지...
철저한 자기반성이라는 게 도대체 뭔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와 뭐가 어떻게 다르다는 건지...
한미 FTA, 비정규직, 주택과 교육 정책, 미래 비전 등등 구체적 정책과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
특히 미디어법 충돌이 기다리는 당장의 6월 국회에서는 또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출입기자로서 궁금한 '새로움'은 사실 이런 것들입니다. 민주당 내부 논의를 조금 더 지켜보고 차근차근 곱씹어 볼랍니다.
PS. 돌발퀴즈의 답이 빠져서... 이인제 전 지사가 탈당해서 만든 당은? 국민신(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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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날카로운 취재와 필력이 돋보이는 최선호 기자는 1996년 SBS 공채 6기로 입사했습니다. 사회, 경제부 등을 거쳐 현재는 정치부 정당팀의 고참 기자로 활약 중인 최 기자는 민노당 등 진보정당과 정치권에서의 오랜 취재 경험에서 나온 뛰어난 분석력으로 정치현장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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