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을 바라보는 여론의 평가가 다양하지만 큰 기류로 나누자면 4가지 정도로 정리가 가능할 듯 합니다.
(1) 친이 주류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들 수 있습니다. 지난 4.29 재보선에서 친이 주류가 경주에 정종복 전 의원을 공천한 것은 종국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 뿐 아니라 친박측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였는데, 패배로 끝나자 친박측을 끌어안으려는 모양새로 국면 돌파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입니다. 다시 말해서 불순한 의도가 실패로 끝나니까 어차피 박근혜 전 대표가 수용하기 어려운 카드를 내세워 당내 친이들을 결속시키려는게 아니냐는 겁니다. 이런 세간의 평가는 당내 일부 친박측 인사들 사이에서도 공감하는 시각입니다.
(2) 친박 비주류에 대한 비판적 평가도 들립니다. 한나라당이라는 같은 울타리에서 친이 주류들에 대한 소극적 협조 내지는 방임으로 일관하더니 자존심을 벗어던진 친이 측의 제안조차도 끝내 거부하는 게 과연 옳으냐는 시각입니다. 지난 4.29 재보선에서 아무리 정종복 전 의원이 밉다 하더라도 무소속으로 출마한 친박계 인사인 정수성 무소속 후보에 대한 우회 지원 내지, 방임을 통한 사실상 지원을 함으로써 두 나라당의 모습을 보인게 아니냐는 평가입니다. 결국 친박에 대한 영남의 동정 여론을 등에 업고 당 보다는 계파를 챙기는 것이 옳겠느냐는 것인데, 당내 일부 친이측 인사들이 공감하는 시각입니다.
(3) 세 번째 평가는 한마디로 "친이고 친박이고 둘 다 똑같이 잘못한다"는 양비론적 시각입니다. 지난 총선 때도 공천 문제로 친이-친박이 그토록 싸우더니 그런 계파적 시각을 떨치지 못하고 감정의 골을 키워가면서 한나라당은 물론 한국 정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시각입니다. 계파 정치의 한계를 떨쳐내지 못한 채 자기의 세 싸움에 연연함으로써 종국적으로 공멸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그런 시각입니다. 당내에서는 주로 개혁성향의 소장파 의원들의 시각과 일치됩니다.
(4) 마지막으로는 그들이 어떠하든 관심 없다는 시각입니다. 정치라는 것이 밥 그릇 싸움이고, 국민이야 어떻든 그들의 이해관계에서만 판단하는 게 정치니 어찌되건 간에 관심 없다는 겁니다. 적어도 당내에는 이런 시각을 갖고 있는 의원들은 없겠지만 일반 여론 층에서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장황하게 이런 여론의 시각들을 정리한 이유는 지금 현재 이뤄지고 있는 친이와 친박간의 줄다리기가 이런 4가지 여론과 무관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 4가지 시각 가운데 어느 쪽으로 여론이 기우느냐가 향후 한나라당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칠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른바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 카드를 두 차례나 거부하면서 밝힌 이유는 "절차의 문제가 아닌 원칙의 문제"라는 겁니다. 게다가 "당헌당규를 위반하면서 까지 그리 하는데 대해 반대한다"는 첫 번째 답변을 듣고 박희태 대표가 김효재 비서실장을 미국으로 급파해 "그럼 김무성 의원이 경선에 출마하는 것은 어떠냐?"는 새로운 카드를 던졌지만 이 역시도 박 전 대표는 거부했습니다.
결국 박 전 대표는 4.29 재보선 패배는 당이 못해서 지지를 못 받은 것이지 친이-친박간 갈등과는 무관하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 듯 합니다. 일부 강경 성향의 친박 의원들은 "재보선 패배는 MB정부에 대한 국민 여론의 비판을 반영하는 것인데, 이를 마치 친이-친박간의 갈등 문제로 희석 시키려는 의도가 있지 않냐?"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또 이런 얘기도 합니다. "우리(친박)가 한나라당이나 정부에 대해 방해라도 한 적이 있느냐? 한 마디로 자기네(친이)들이 제대로 못해서 생기는 책임을 마치 친박들이 협조하지 않고 훼방놔서 그런 것인양 호도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깊은 불신의 벽을 반영하는 얘기입니다.
반면, 친이 강경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MB가 국정 운영을 잘 하도록 도와야 하는게 아니냐? 박근혜 전 대표가 MB의 국정운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음으로써 종국적으로 MB의 실패를 자신의 차기 대권 구도와 연결 시키려는게 아니냐? 정권 재창출을 위해 도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돕지 않는 것 자체가 훼방이자 방해 아니냐?"고 말합니다.
명분과 실리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정치인들이 내세우는 명분 뒤에는 실리에 대한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는 게 당연할 겁니다. 친이와 친박간의 뿌리깊은 불신은 현재의 권력 구도 상 쉽게 수그러들것 같진 않습니다. 과거에 DJP연대를 보면, 당시 DJ나 JP 모두 독자적으로는 정권 창출이 힘든 만큼 연합을 통해 이회창 후보를 물리치고 서로 결별할 때까지 공동 정권을 운영했습니다. 총리와 장관 자리를 자민련쪽에 나눠 줬습니다. 자민련의 입장에서는 독자적으로 정권을 창출할 여력이 안되는 만큼 공동 정권의 형태를 통해서나마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실리를 챙겼습니다.
그러나 친이-친박간에는 이와 다릅니다. 친박측에서는 어차피 친이측과 한판 승부를 벌여서 승리하면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정권을 다시 창출해 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돈 정치가 많이 사라지고 '공천'이 세력을 키우고 유지하는 절대적 열쇠인 만큼 향후 친이와 친박간의 당권 경쟁이 불가피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그 시기가 내년 지방선거와 전당대회가 될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좀더 늦춰지거나 당겨질수도 있을 겁니다.
친박측은 구태여 친이측이 제공하는 극히 일부의 자리로 얻는것 보다 잃는게 많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아예 차기에 대한 확고한 인정도 아닌 앞으로 1년간 그리 큰 권한도 없는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자리를 친박 측이 떠맡게 되면 짐이 될 거란 생각도 할 겁니다. 당장 6월 국회에서 야당과 싸워야 하는데 그 싸움의 책임과 그에 따라는 비판 여론 등을 친박 측이 나눠 짊어질 필요가 있냐는 생각들을 할 겁니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총리 제안설이나 친박 인사들의 장관 임명설 등이 무산됐던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친이 주류측은 "도대체 얼마만큼 더 줘야 하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친박측은 "우리가 언제 뭘 달라고 구걸했느냐? 너네끼리 그냥 해라"고 반박하기도 합니다. 같은 당의 테두리 안에서 서로에 대한 불신의 골은 치유하려 할수록 더 깊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이제, 친이 주류측은 큰 고민거리를 안게 됐습니다. 어떻게 하면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측 인사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불가하다면 아예 '한지붕 두가족'이 아닌 '이혼을 각오해야'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기에 소장파 의원들과 범 친이계와 일부 친박계 인사들의 우려가 놓여 있습니다. 공존하기 어렵다고 해서 공멸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 쇄신에 대한 요구가 봇물같이 터져 나오는 겁니다. 당 쇄신위원장에 내정된 원희룡 의원이 '공천에 대한 전쟁'을 1순위로 제시하면서 당내 계파 갈등의 원인으로 공천을 지목하고 이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함으로써 계파의 벽을 낮출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소통의 문제, 인적 쇄신의 문제 등 한나라당 쇄신의 길 역시 평탄해 보이진 않습니다.
더욱이, 친이와 친박계에서는 이들 소장파들의 움직임 조차도 계파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양 계파 사이의 갈등을 이용해 '자기 정치' 내지 '독자 세력화'를 기획하려는 게 아니냐는 불신입니다.
장황하게 썼습니다만, 앞서 제기했던 한나라당의 계파 문제를 바라보는 여론의 4가지 시각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이 4가지 여론의 시각 가운데 어디가 비중이 높아지느냐가 한나라당의 향배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동시에 당내 친이건 친박이건 소장파 들이건 그 4시각 가운데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의 비중이 높아질수 있는 카드를 계속 던질 겁니다.
때문에, 이 문제를 조기에 정리할수 있는 방안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회동입니다. 당내 상임고문단이 요구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서 얻어낼 것이 없는 상황이라면 만남 자체가 두 사람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친이-친박간에는 갈등이 없어요"라는 선언만 하고 실제적으로 그것을 담보할 후속 조치가 함께 제시되지 않는다면 국민들에게 일종의 정치 쇼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립과 갈등이 반복되는 여야 관계 문제보다도 당내 계파 갈등이 더 풀기 힘든 것도 그만큼 경우의 수와 조건들이 다양하게 개입되기 때문입니다. 조기 전당대회론이 불거지면서 뭔가 새판을 짜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나오고, 그럴 경우 친박-친이간 갈등이 겉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갈수 있다면 반대함으로써 논란이 불거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겁니다.
한나라당은 지금 위기이자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지금껏 권력을 잡은 이후 여러 차례 국민의 호된 질책을 받아 마땅한 실수와 실패를 반복했으나 운 좋게 지나간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금의 사태를 얼마나 슬기롭게 푸느냐 그리고 자신들의 개인적 영달이 아닌 국민을 위한 길이 뭔지를 찾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위기는 분명 기회가 될 겁니다. 잘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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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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