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안 복수의 국내 언론사들이 취재진을 현지파견해 보도한 국제분쟁은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2003년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이라크 공격, 2006년 이스라엘과 레바논 헤즈볼라 간의 전쟁, 그리고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의 교전을 꼽을 수 있다. 필자는 공교롭게도 아프간전을 시작으로 4건의 국제분쟁을 모두 현장 또는 인접국에서 취재한 경험이 있다.
전쟁이란 말 그대로 이기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상황인 만큼 금지된 무기류가 무차별적으로 사용되고, 참전자뿐 아니라 무고한 민간인도 다수 희생되는 최악의 환경이다. 특히나 현대전은 무기의 파괴력이 갈수록 커져 사회 기반시설의 대규모 파괴가 불가피하고 전쟁 이후에도 참전병사나 민간인, 그중에서도 어린이들이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만큼 비인도적 처사나 무고한 인명피해의 현장을 가감 없이 전하는 언론인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순간도 바로 전쟁이라 할 수 있다.
기자라면 누구나 이런 인간성 말살의 현장에서 보고 들은 바를 있는 그대로 전하고픈 의욕과 사명감이 충만할 수밖에 없지만 현실은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걸림돌은 날로 험해지는 취재 여건이다.
해마다 전쟁취재 중에 순직한 언론인이 급증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Press' 표지가 종군기자들의 안전을 담보해 주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오히려 언론인이 표적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목숨이 심각하게 위태로웠던 상황이 몇 차례나 된다. 아프간전 때는 인접국 파키스탄에서 간접취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갑갑증을 느낀 나머지 탈레반 연결선과 접촉해 험한 육로로 아프간 땅에 잠입하려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돈 욕심이 난 탈레반 일당이 납치를 시도하는 바람에 야반도주를 감행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적도 있다.
전후 이라크의 혼란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바그다드에 머물 때는 저항세력이 발사한 포탄이 숙소를 강타해 자다 말고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번 가자전쟁 때도 헬멧이나 방탄조끼도 채 갖추지 못하고 가자 접경에서 방송을 준비하다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 3발이 근처에 떨어지는 바람에 혼비백산한 경험이 있다. SBS 동료 가운데는 이라크전 도중 퇴각하던 이라크군에 억류됐다 만 하루 만에 탈출한 경우도 있다.
둘째, 현장접근이 용이하지 못한 점도 큰 걸림돌이다.
최근의 가자지구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전쟁발발과 함께 이스라엘이 철저한 국경통제에 나섬에 따라 외부의 그 어떤 언론인도 가자지구 안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이미 전쟁 전에 가자지구에 특파원을 상주시킨 알자지라 등 일부 아랍계 언론사만 직접취재가 가능했을 뿐 나머지 대부분의 국내외 언론사는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접경지역에서 제한적인 취재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취재망이 우월한 CNN이나 BBC, 로이터, AP 같은 세계 굴지의 방송·통신사도 현지인 Stringer(비상근 통신원)를 통해서만 가자지구 내 상황을 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현지인 Stringer도 없는 언론사는 아랍계 방송사의 보도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에 따라 국내 언론사 가운데 신문, 통신의 경우 단 한 군데도 이스라엘에 특파원을 파견하지 않았고, 지상파방송 3사의 특파원도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접경에서의 양측 교전상황 관찰과 현지언론 보도를 토대로 전황을 보도하는 정도에 그쳐야 했다.(필자의 경우 그나마 휴전 중재를 위해 중동순방에 나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휴전 직후 가자지구를 전격 방문했을 때 동행할 기회를 얻어 가자지구의 참상을 직접 카메라에 담아 국내 방송사 가운데 유일하게 전할 수 있었다.)
지난 2001년 아프간전의 경우도 미군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함락하고 난 이후에야 취재진이 미군 탱크 뒤를 따라 갈가리 찢긴 아프간 파괴현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필자를 비롯한 국내외 취재진은 전쟁기간 동안에는 아프간 인근의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진을 치고 이슬라마바드 주재 아프가니스탄 대사나 미군의 브리핑에 의거해 기사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2년 뒤 이라크전에서는 정보차단에 대한 언론의 비난을 의식한 미군의 정책변경으로 이른바 ‘Embedded Program’이 시행돼 제한된 숫자의 기자들이 미 육군이나 해군에 배속돼 전장을 누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도 미군의 통제 아래 미군과 함께 움직이는 상황이라 공격당하는 측의 사정을 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미 키티호크 항공모함에 배속돼 전쟁 초기 3주 가량을 취재했던 필자는 비록 미군 항공모함에 탔어도 보도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생생하나, 결과적으로 미군의 공격양상 중심으로 기사를 작성해야 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셋째, 허약한 취재망과 이에 따른 신뢰성 있는 취재원 확보의 어려움을 지적할 수 있다.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은 세계의 화약고답게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중동지역 곳곳에 특파원이나 Stringer를 파견 또는 고용해 고급정보를 캐낼 수 있는 통로를 유지하고 있다. 이웃 일본 NHK와 교도통신, 중국의 CCTV와 신화통신만 해도 이라크와 이스라엘, 이란, 이집트, 레바논, 두바이 등 중동의 주요 포스트에 빠짐없이 특파원을 파견해 뉴스를 전한 지 오래다. 일본 지방지인 홋카이도일보가 이집트 카이로에까지 특파원을 파견해 중동 소식을 전하고 있는 예만 봐도 일본 언론사들의 폭넓은 취재망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우리의 실정을 보면 중동지역 통틀어 카이로와 두바이에 단 5명의 특파원이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정치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집트 카이로에 SBS와 연합뉴스 단 2개사, 경제 허브 UAE 두바이에 KBS와 연합뉴스, 아시아경제만 지국을 운영하고 있는 형편이다. 방송사의 경우 특파원 1인이 중동과 아프리카뿐 아니라 이슬람권 중앙아시아와 유럽 일부 나라까지 관할해야 하고, 통신사도 특파원 1인당 수십 개 나라를 커버해야 하니 각국의 상황을 소상히 파악하고 취재원을 관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분쟁이 집중되고 있는 중동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주공급지로서뿐 아니라 우리 기업들이 집중공략해야 하는 상권이기도 하다. 중동을 찾는 여행객도 늘고 있고 상호 교류도 확대되는 추세다.
넷째, 분쟁취재 전문인력 양성의 필요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취재는 낯선 환경에서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인 만큼 상당한 배경지식과 노하우가 필요한 영역이다. 어느 날 갑자기 지시를 받고 취재에 나서서는 수박 겉핥기 식 보도에 그치기 쉽고 또 위험에 처할 우려도 크다. 필자도 중동특파원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국제부가 아닌 다른 부서에서 일하다 갑자기 현장에 파견돼 관련서적이나 외신, 현지인 취재를 통해 허겁지겁 흐름을 파악해야 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재 국내 언론사 가운데 분쟁전문 취재인력을 키우고 있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러잖아도 현장접근이 어렵고 독자적인 취재원 확보도 힘든 상황에서 생소한 지역 취재에 갑자기 나선 기자들에게 정확성과 깊이, 전문성 있는 보도를 기대하기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분쟁취재에 관심 있는 기자를 선발해 국제부를 중심으로 외교부(국제관계)와 국방부(국군 파병) 등 흐름상 연관성 있는 부서에 배치함으로써 평소에도 분쟁지역에 관한 정보나 지식을 꾸준히 습득할 수 있게 하는 인사상의 고려가 필요하다.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는 분쟁지역 취재 예정자들을 위해 국내외에서 이따금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위험지역에서의 행동요령과 폭탄 또는 화생방 공격을 받았을 때 응급 대처방법, 최악의 경우 피랍됐을 때 행동수칙 등 분쟁지역 취재에 나서는 이들이 반드시 숙지해야 할 내용이 포함되는 만큼 관련 교육 프로그램이 있을 때마다 해당인력에게 수강 기회를 부여하는 조치도 필요할 것이다.
끝으로 외국 언론사들에 비해 장비 면에서 열세인 점도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지난 2003년 이라크전 당시 미 키티호크 항공모함에 배속돼 취재할 때의 일이다. 아라비아 해역을 떠도는 항공모함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취재·촬영한 뒤 이를 방송하기 위해 필자는 오전, 오후 하루 2회 육지(바레인 미 5함대사령부)를 오가는 미 군용헬기를 통해 테이프를 육지에 있는 가이드에게 전달해 현지 방송사에서 위성으로 송출하게 하는 번거롭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방법에 의존해야만 했다. 반면 당시 키티호크 호에 함께 탔던 영국 SkyTV와 NHK 등은 휴대용 위성장비를 가져와 원할 때마다 배에서 자유롭게 송출하곤 했다. 최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중동순방을 동행취재했을 때도 필자는 인터넷망이 부실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취재한 내용을 본사에 송출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른 반면, BBC와 NHK는 역시 휴대용 위성장비를 이용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방송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분쟁지역 취재를 제대로 하자면 기자 개인의 체계적인 준비와 회사의 뒷받침이 절실함에도 소수의 혈기 넘치는 기자들을 앞세워 그때그때 일과성으로 때워 온 측면이 크다. 글로벌 시대에 해당지역에만 영향이 국한되는 국지적 분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체계적인 분쟁전문 취재인력 양성을 통해 외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우리 고유의 시각으로 세계 각지의 분쟁을 분석·보도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할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관훈저널 2009년 봄호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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