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영국 BBC방송국의 앤드루 마 쇼 프로그램 제작 스튜디오.
다음달 2일부터 런던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회의 참여를 위해 영국을 방문 중인 케빈 러드 호주 총리와 후 잉 영국 주재 중국대사, 그리고 데이비드 밀리밴드 영국 외무부장관 등이 나란히 앉았다.
BBC측은 러드 총리의 왼쪽에 여성 외교관인 후 잉 중국대사 자리를 마련했다.
러드 총리는 후 잉 중국대사를 잘 알고 있다. 그는 2004년 3월부터 3년간 호주 주재 중국대사를 역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총리실측은 방송 시작 전 급히 BBC 제작진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BBC 제작진은 요청을 묵살했고 방송은 그대로 진행됐다. 러드 총리가 몹시 머쓱해했음은 물론이다.
러드 총리는 방송 후 "그동안 가깝게 지내왔던 밀리밴드 외교부장관 옆에 앉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그랬다"고 말했다.
후 잉 중국대사 사이에 밀리밴드 장관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 주재 외교관을 지낸 중국통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늘 중국 고위인사들과 가깝게 앉는 것을 선호했으며 그럴 경우 유창한 중국어로 대화를 나눴다.
이런 그의 평소 행동에 비춰볼 때 이번 BBC에서 벌어진 해프닝은 예사롭지 않다고 언론들이 31일 보도했다.
특히 조엘 피츠기번 국방부장관이 중국계 호주인 여성 헬렌 리우로부터 공짜 중국행 비행기표를 받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것이어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중국통인 현 러드 총리의 노동당 정부가 중국 정책에 관한 한 일반인들로부터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 시작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번 경우도 의도적으로 중국과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한 움직임 가운데 하나가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내놓았다.
호주 정부가 중국 국영 민메탈스의 호주 최대 알루미늄 생산업체 OZ미네랄스 인수에 대해 "인수 대상 광산이 군사지역에 인접해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거부 결정을 내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광산업계는 "인수 대상인 OZ미네랄스의 프로미넌트힐 광산은 관광객들도 자주 거쳐가는 곳"이라며 "정부가 인수 거부 명분을 찾느라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간 디오스트레일리안이 실시한 인터넷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 정부가 지나치게 중국과 친하다고 느낀다"고 응답한 국민이 6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권 노동당 정부는 현 상황이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만큼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중국과 거리를 두는 게 바람직할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을 하게 됐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호주 최대 야당 자유당 대표 말콤 턴벌은 "현 정부는 중국이 원하는 쪽으로 모든 것을 내주고 있다"며 "러드 총리는 국익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호주 정부는 "중국을 특별한 대상으로 여기고 있지 않다"며 "중국은 일본과 함께 호주의 1,2위 교역상대국일 뿐"이라고 맞섰다.
(시드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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