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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창설 40돌…남북관계 따라 명암 교차

남북관계 타개·조직위상 재정립 과제

통일부가 1일 창설 40돌을 맞아 남북관계의 부침과 함께 한 영욕의 40년을 뒤로 한 채 새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통일부는 1969년 3월1일 `국토통일원'이라는 간판으로 창설됐다.

당시 국토통일원은 주로 민간에서 이뤄지던 통일 논의를 제도권 안에 끌어 들이는 한편, 정부 각 기관에 분산돼 있는 통일관련 업무와 기능을 일원화하고 통일 준비 및 대책을 강구하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남북 대결의 시기로, 체제 경쟁이 한창이던 당시 장.차관 이하 정책기획실.조사실.교육홍보실 등 3개 실에 정원 45명의 `미니부서'로 출범한 국토통일원은 초기 북한 문제에 대한 조사.연구 및 자료 관리, 통일 문제에 대한 교육.홍보 업무를 주로 맡았다.

국제 냉전체제가 균열되기 시작하고 동서 화해.협력의 분위기가 조성된 1980년대 후반에 와서야 국토통일원은 당시 안기부로부터 남북 대화업무를 이관받으면서 명실상부한 대북 정책의 중심 부처로 자리 잡았다.

이어 사회주의권 붕괴와 함께 시작된 1990년대 들어 남북기본합의서(1991년)가 채택되고 대북지원과 민간 교류를 중심으로 한 남북 교류협력의 맹아가 싹트면서 통일부는 급부상했다.

1990년 통일원으로 개명하는 동시에 부총리급 조직으로 격상되면서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총괄.조정 기능을 부여받은 것이다.

1998년 2월 현재 이름으로 개명하며 장관급 조직으로 복귀한 통일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제1,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한편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이 상징하는 교류협력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르네상스'를 맞았다.

임동원, 정동영, 이종석 전 장관 등 당대의 `실세'들이 장관을 맡았던 이 시절 통일부는 폭증하는 업무 수요에 맞춰 조직의 몸집도 불려 나갔다.

그러나 통일부는 작년 `햇볕정책'에 다소 비판적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폐지 대상 부처로 지목됐다가 국회 협의과정에서 가까스로 살아 남았지만 550명이던 통일부 정원이 470명으로 축소되는 시련을 겪었다.

게다가 현 정부 출범 후 1년간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동안 남북대화와 사업이 `전공'인 통일부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외교.안보 관계 장관회의때 북한 관련 의제가 상정되면 통일부 장관은 주로 소수의 목소리가 되곤 했다는 후문이다.

`1.19 개각'에 따라 현인택 장관 체제로 새롭게 정비한 통일부는 크게 남북관계 상황 타개와 조직의 위상 회복이라는 두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대화 재개시 지난 1년간 상당부분 끊어진 남북 교류.협력의 끈을 복원해야할 뿐 아니라 과거와 달라진 남북관계 상황에 맞춰 새로운 자리 매김을 해야할 때인 것이다.

또 남북관계 악화 속에 사실상 구호로만 존재하는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을 구체화해 우리 국민과 북에 정확히 알리는 일과 이 대통령이 강조한 중장기 대북전략을 수립하는 일 등이 통일부의 앞 길에 놓여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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