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문화부에서 가장 큰 일이라면 추기경 돌아가시는 일인데 뭐 당장은 아니겠죠'라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말한 다음날 돌아가셨더군요.
종교 담당 기자로서 무척이나 바빴지만, 개인적으로 가톨릭 신자인 저에겐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던 건 또 하나의 행운이기도 했습니다.
추기경이 돌아가신 이후 명동에는 정말로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원래 누군가 돌아가셨을때 함께 가서 '연도'란 걸 해주기도 하고, 교회의 가장 큰 어른이 돌아가셨으니 오는게 당연하기도 하지만...가톨릭 신자가 아닌 분들...그것도 3시간 줄을 서서 추기경이 모셔진 유리관 앞에선 간단히 목례하며 1~2분 정도만 있다 나오는 건데도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언론 매체에서도 추기경에 대한 소식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고, 평가도 매우 후했죠. 그래서인지 일각에선 추기경은 간소한 장례를 원하셨는데 언론이 너무 과대하게 다루는 게 아니냐, 추기경이 말년에 했던 말들을 보면 이렇게 훌륭한 평가만 받기엔 뭔가 찝찝하다란 비판도 나왔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그에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애정을 보낸건 그가 단순히 '한국 가톨릭 교회의 수장'만은 아니었음을 뜻합니다.
흔히 한국의 가톨릭 교회가 개신교, 불교 등 3대 종교 가운데 교세는 가장 떨어지지만, 상대적으로 호감도는 높은 편이라고들 말하지요. 이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굴곡이 많았던 우리 현대사 곳곳에 김수환 추기경이 남겼던 발자욱도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추기경'이나 '종교 지도자'의 죽음이 아닌 민주화 과정에서 하나의 아이콘이었던 '김수환'의 '선종'이었기 때문인거죠.
젊은 신부님들, 당시 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본래 김수환 추기경은 대부분 동년배가 그렇듯 어느정도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의구현사제단'으로 대표되는 젊은 사제들, 보다 강력한 현실 참여를 원했던 젊은 신부들과 때때로 충돌하셨다고 하네요. 젊은 신부들에게 '제발 데모 좀 그만해라'라며 화를 내신 적도 있다고 합니다. 운동을 했던 분들은 추기경이 이럴 때 좀더 목소리를 내주셨음하는 아쉬움도 분명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추기경은 본인의 회고록에서 자신은 겁이 많았고, 보다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라고 매우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데요. 추기경에게 일말의 아쉬움을 갖는 분들도 추기경이 그때 그때 용기있게 역할을 해냈고,그 때문에 더욱 '사회의 어른'으로서 권위를 갖게 됐다고 높게 보시더군요.
가톨릭에선 가장 높은 자에게 가장 낮은 곳을 지향하라고 항상 가르칩니다. 예수가 '신의 아들'로서 화려한 모습이 아닌 가장 약하고 보호 받아야 하는 아기의 모습으로 그것도 가난하기 짝이 없어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건 항상 사회의 그늘을 살피라는 메시지를 주는거죠.
김 추기경에 대해 끊이지 않았던 추모 행렬 역시 진보와 보수, 종파를 넘어선 '서민의 친구'를 갈망하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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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유재규 기자는 2005년 SBS 기자로 입사해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 기자로 취재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취재로 우리 일상의 사건.사고와 숨은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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