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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올해 서민·중소기업 보호 '올인'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정책 무게 축이 서민과 중소기업 보호로 옮겨갔다. 경제 위기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나 부당 행위에 대한 감시와 규제에 중점을 둔 과거 정부와 달리 현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기업 친화적 정책)를 내세운 것도 작용했다. 다만 규제는 풀되 불법 행위에 대한 제재는 강화해 부작용을 막겠다는 것이 공정위의 입장이다.

공정위는 세계적인 휴대전화 부품업체인 퀄컴의 불공정 거래 혐의, 교복업체의 가격 담합 의혹, KT와 KTF의 합병 심사 등 관련 업계와 소비자의 관심이 많은 사안은 조속히 처리할 계획이다.

◇ 서민생활 안정 1순위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1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올해는 서민과 중소기업의 피해를 방지하는데 역점을 두겠다"고 강조한 것은 가격 담합이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황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한 불공정 거래 행위가 급증할 것으로 우려되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식음료와 교육, 문화콘텐츠, 물류.운송, 지적재산권 관련 업종 등 5개 업종을 중점 감시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 이를 반영한다.

공정위는 서민 생활과 직결된 생필품의 가격 동향을 살펴보고 있으며 업체들의 담합 의혹이 감지되면 곧바로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설탕과 소주, 계란 등 식음료 가격의 경우 작년 말부터 줄줄이 올라 주부들의 장바구니를 무겁게 하는 실정이다.

공정위는 ▲신학기마다 오르는 학원비와 참고서 가격, 교복값 ▲영화 배급 과정과 관람료, 인터넷 게임료 ▲택배비와 물류창고 보관료 ▲정보기술(IT) 업체와 제약사의 특허권 남용도 주시하고 있다.

해당 업체들이 제품이나 서비스의 공급, 유통, 판매 과정에서 부당하게 가격을 책정하거나 소비자에게 불리한 조건을 부과하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경기침체를 틈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되는 다단계업체와 대부업체, 프랜차이즈업체, 상조업체 등의 불법 영업에 대해서는 이미 감시를 시작했다. 특히 다문화 가정이나 노인, 대학 졸업자 등이 이들 업체의 유혹에 빠져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소비자 교육을 강화할 계획이다.

공정위는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대기업의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와 대금 미지급 등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이 납품단가 인상을 요구하면 대기업이 반드시 협의에 응하도록 하도급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공정위는 이런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의 자율적인 법 준수가 중요하다며 더 많은 대기업이 하도급업체와 공정거래 협약을 맺도록 유도하고 있다.

◇ 대기업 규제 완화..반칙행위는 엄단

공정위는 투자를 활성화하고 경제 성장의 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 기업 규제를 지속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작년에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한 회사가 순자산액의 40%를 초과해 국내 회사에 출자할 수 없도록 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현재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다.

백 위원장은 "출총제 폐지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어 기업들이 아직 체감하지 못할 수 있다"며 여야가 이 법안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해달라고 촉구했다.

공정위는 일반 지주회사에 금융 자회사를 허용하고 대기업이 설립한 사모펀드(PEF)의 비금융회사 의결권 제한을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계열사 간 출자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대기업 집단을 지주회사로 유도하기 위해 일반지주회사가 은행을 제외한 보험, 증권, 저축은행, 여신전문금융사 등을 자회사로 거느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자산규모 5조 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가 설립한 PEF가 비금융회사 지분을 취득할 때 의결권 15% 제한 규정을 5년간 적용받지 않도록 해 기업 구조조정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그러나 백 위원장은 대기업들의 과도한 규제 완화 요구에는 제동을 걸었다. 재계가 출총제에 이어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채무보증 제한 규제도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나 무분별한 출자나 빚보증으로 부실화되고 경제에 충격을 주는 것을 막으려면 필요한 규제라는 설명이다.

공정위는 현재 추진 중인 규제 완화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계열사간 출자 현황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담합이나 시장지배력 남용행위 등 `반칙 행위'에 대해서는 조사와 제재를 강화하기로 했다.

◇ KT-KTF 합병 승인, 퀄컴.교복업체 제재 임박

공정위가 심사 중인 KT와 KTF의 합병 문제는 조건부 승인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백 위원장의 취임 이후 공정위가 기업결합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KT와 KTF는 지난달 22일 방송통신위원회에 합병 신청을 했고 방통위는 다음 날 공정위에 경쟁 제한성 여부에 대한 심사를 의뢰했다.

KT는 유.무선 통합과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세계적 흐름을 따라잡으려면 KTF와의 합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쟁사인 SK텔레콤은 "통신시장 경쟁구조를 심각하게 악화시킬 우려가 있는 경쟁제한적인 기업결합"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백 위원장은 "통신시장의 경쟁 촉진을 위해 어떤 결론이 바람직한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결합에 대해 과거처럼 시장점유율만을 잣대로 삼아서는 안 되며 시장의 빠른 변화를 감안해 동태적으로 보고 국제 경쟁력 확보 차원의 시각에서도 접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아직 심사가 진행 중으로, 결론을 예단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백 위원장은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퀄컴을 우월적 지위남용 혐의로 조만간 제재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조사는 마무리 단계에 있다"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거래를 했다면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2006년부터 퀄컴이 CDMA 모뎀 칩과 다른 부품을 끼워팔았는지, 경쟁사의 제품을 쓰는 곳에는 높은 로열티를 부과했는지를 조사해 왔다.

공정위는 2005년 말 마이크로소프트(MS)에 시장 지배력을 앞세워 PC운영 체제인 윈도에 메신저와 미디어 플레이어 등을 끼워 판 혐의로 32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작년 6월에는 인텔에 대해 한국 PC제조업체들에 경쟁사 제품을 못 쓰도록 하며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260억 원의 과징금을 물리는 등 글로벌 IT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강하게 제재했다.

공정위는 3월 새 학기를 앞두고 학부모들의 원성을 사는 교복가격 인상과 관련, 교복 제조업체와 판매 대리점들의 가격 담합이 있었는지 2차례에 걸쳐 조사를 벌였고 현재 일부 지역에서 제보를 받아 추가 조사를 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런 조사만으로 교복 가격을 안정시키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교복 공동 구매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 학부모들의 공동 구매를 통해 교복값을 반으로 떨어뜨린 것을 사례로 들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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