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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연가 - 대학로 연극 배우

내가 그녀를 만난 곳은 일산에 있는 한 학원이었다. 영어 전문 학원, 그녀는 그곳에서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한 손에는 영어 교재를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짤막한 나무 막대기를 들고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따라 읽히는 그녀는, 영락없는 학원 강사였다.

 

 "자, 따라서 해 봐, What are you going to do?"
"홧 알 유 고잉 투 두"
"그럼 어떻게 대답해야 되니?"
'침....................................묵'
"자, I'm going to study, 저는 공부할 거예요. 자 따라해 볼까, 아임 고잉 투 스터디?"
"아임 고잉 투 스터디"
"넌 뭐하니 여기 안 보고, 선생님 따라서 안 할 거야"

책도 펴지 않는 채 멍하게 앉아 있는 아이, 옆 친구와 장난치는 아이, 필통 속 뭔가를 꼼지락 꼼지락 하는 아이, 강의실은 정말 정신 산만했다. 그녀는 그런 초딩들을 때론 무섭게 그리고 때론 부드럽게, 어르고 달래며 능숙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동안 시간 날 때마다 과외와 아르바이트 학원 강사를 꾸준히 해오면서 쌓은 그녀만의 노련한 '초딩 다루기' 솜씨였다. 아이들은 그런 그녀를 조금은 엄한 학원 선생님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녀는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물론 학교 다닐 때부터 영어 과외를 하곤 했다. 하지만 나중에 영문과를 졸업했다는 게 이렇게 생계유지에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사실 그녀의 꿈은 연극 배우였다. 대학 입학 때도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배우의 꿈은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공연 일을 시작했다. 공연 일을 하면 배우를 향한 열기가 조금은 식을 거라 생각했다.

처음에는 일이 무척 재미있었다. 공연 포스터를 만들고 공연 홍보 기획 일을 도왔다. 공연 개막일은 아직도 몇 달이나 남아 있었다. 그런데 온갖 잡일부터 할 일은 끝이 없었다. 포스터 하나만 해도 컨셉 회의부터 시작해서 어떤 사진 어떤 그림 어떤 소품과 소재를 넣을 지등등등 회의도 많았고 밤새는 날도 적지 않았다. 회의 자료와 회의 결과를 작성하고 보여주고 전달해 주고, 사진촬영과 인쇄를 위해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면 하루가 휙 지나갔다. 달랑 포스터 하나 만드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 밑에는 온갖 잡일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공연 일은 그랬다. 마치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다시 야곱을 낳고 야곱은 다시 유다를 낳고 하는 식으로 일에 일이 이어졌다. 공연 일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힘들었다. 게다가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라 서툴러서 혼도 많이 났다. 유명한 배우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위안도 됐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자 그것도 금방 덤덤해졌다. 오히려 별별 요구를 다 하고, 별것도 아닌 것에 소리를 지르며 오버하는 여배우의 까탈스러움에 혀를 내 둘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왠지 모를 허전함이 그녀를 엄습했다. 왠지 모를 허전함이.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그녀가 참여했던 공연은 멋진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고 관객들은 환호했다. 배우와 스태프들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물론 그녀도 뿌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 공연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공연 일을 하면 배우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리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래서 그녀는 대학원 연극 영화과에 가기로 결심했다. 대학원에 가서 그녀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 대부분 학부를 거쳐서 온 학생들이 많았다. 그녀는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에 더 열심히 배우고 익혔다.

"야, 너 이거 되게 힘들다. 정말 힘들어. 한 삼십은 넘어야 어디 가서 배우라고 할 수 있어. 그 동안은, 뭐 그 뒤라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무지하게 힘들어. 신중하게 생각해라, 알았냐? 너가 아직 몰라서 그러는데 나중에는 정말 할 게 없어서 이거 하게 된다. 할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니까."

3년 뒤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녀는 무작정 대학로의 한 극단을 찾아갔다. 연극 영화과를 졸업했다고 해서 누가 배우를 시켜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스스로 찾아갔다. 그리고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극단 선배가 조용히 말했다. 무척 힘든 일이니 잘 생각해 보라고. 하지만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래도 하고 싶어요'라고 그녀는 대답했다. '꼭'이라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잠깐 스치긴 했지만 그냥 두었다. 배우가 되고자 하는 열망은 그녀의 가슴속에서 아직도 '펄펄' 끓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대학로 극단의 연극배우가 되었다. 회사에 처음 들어가면 인턴이나 수습시절을 거치듯 극단도 마찬가지로 연습 단원 또는 연구 단원으로 불리는 시절을 거친다. 선배 배우들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배우고 익히고, 또 역시 어디나 마찬가지 듯 온갖 잡일은 그런 막내의 몫이다. 대학로에서의 배우 수업 1년이 흘렀다. 그리고 또 다시 1년이 거의 다 갈 즈음인 작년 10월 어느 날, 그때 나는 그녀를 만났다. 당시 나는 연극 100주년 기획기사로 배고픈 연극배우의 삶을 보도할 생각으로 젊은 배우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소개 받았다. 

"가르치는 게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것 같던데요?"

"제가 영문과를 나와서 그나마 과외도 하고 이렇게 학원 알바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인 것 같아요. 다른 배우들이 어떤 때는 되게 부러워해요 (웃음)."

"계속 이런 아르바이트를 해 왔어요?"

"연습할 때는 할 수가 없어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어떤 때는 밤새 연습을 하니까 과외를 할 수가 없어서 못해요. 그때만 아니면 과외를 계속해서 했어요. 오히려 공연 들어가면 시간이 나거든요. 그리고 공연이 계속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예 없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는 학원 알바도 뛰고 그랬어요. 사실 연극만으로는 돈을 벌 수 없잖아요"

그렇게 나는 그녀와 첫 인사를 나눴다. 어깨까지 오는 긴 머리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그녀의 인상은 맑고 밝았다. 29살의 늦깎이 배우, 나는 그녀에게 가장 궁금한 것을 곧장 물었다.

"어때요, 연극배우로 산다는 것이?"
"음......, 배우라는 게 끊임없이 배운다고 해서 배우라고 하는데. 음.......,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면 연극배우라고 말하기가 좀 망설여질 때가 있어요. 작품을 하고 있을 때는 그렇지 않은데 작품을 안 하고 있을 때가 사실 더 많거든요."

"그동안 얼마나 벌었어요?"
"수입이라는 게 일정하지가 않아요. 처음에는 조연출을 했는데 그때 한 30만원 받았던 것 같고, 그리고 그 다음에 워크숍 공연을 두 달 했는데 그때는 공연이 다 하고나서 수입에서 나눠주는 식으로 했거든요, 근데 거의 공연 끝나고 나면 그때마다 술값으로 다 나가서 거의 받은 게 없어요."

"거의 수입이 없었다고 봐야겠네요?"
"사실 이것 안하면 죽겠다 아니면 힘든 것 같아요. 열정이 있어야 하고 열정 하나만 갖고 하는 건데..............아직까지는 연습하고 무대에 서는 게 행복해요"

그녀가 지난 2년 동안 대학로 극단 배우로서 받은 돈은 대략 50만원 정도였다. 배우들은 공연이 없으면 수입도 없다. 공연이 없으면 무직자다. 대부분 제대로 된 직장을 다닌 적도 없기 때문에 실업 수당이라는 것도 배우들에게는 남의 얘기다. 배우들 사이에서는 혹 교통사고가 나서 보상이라도 받을라치면 무직자로 처리된다는 말을 하소연처럼 하곤 한다. 공연이 있어도 무명배우들은 무직자로 취급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배우의 현실이다.
 
10년 이상 된 배우라도 공연에서 버는 돈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 연극은 보통 연습 기간 한 달에 한 달 또는 두 달 가량 본 공연을 한다. 그런 공연 한 편을 하면서 받는 출연료은 대략 2백만원에서 3백만원 선이다. 경력이 오래되지 않은 배우의 출연료는 채 백만원도 안된다. 10년 넘게 연극만하다 우연히 뮤지컬 무대에 선 한 배우가 뮤지컬 출연료를 받고서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야~ 내가 지금까지 연극하면서 받은 돈보다 이번 뮤지컬 한편하면서 받는 돈이 더 많네"

그래서 대학로 배우들은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한다. 공연이 없을 때면 다른 공연의 조명이나 무대 일을 하는 배우도 있고 그러다 아예 그 길로 간 배우들도 적지 않다. 배우보다는 그쪽이 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운 좋게도 영문과를 나와서 과외나 학원 강사를 하지만 남자 배우들은 대리운전이나 마트에서 짐 운반하는 아르바이트 등 짬짬이 할 수 있는 각종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힘든 배우를 왜 하려고 하느냐고 질문을 하려다 말았다. 나는 그녀의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인터뷰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눈빛에서 조금의 실망이나 후회의 기미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 눈빛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대신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친구들한테 그랬어요. 앞으로 내가 몇 달 학원 알바로 돈을 벌어서는 내년에는 알바 안하면서 연극만 할 거라고. 일단은 그렇게 할 거예요. 연극만해서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안되잖아요. 이 작품 끝나면 다음 작품하고 해서, 연극만 해서 먹고 살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녀의 소망은 소박했다. 하지만 곧 나는 '그녀의 소망이 언제쯤이나 이뤄질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다시 학원으로 갔다. 연극만을 하기 위한 날을 위해 그녀는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다.

그리고 석 달이 흘렀다. 그녀는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까? 아니면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있을까?  봄이 되면 대학로에서 다시 연극을 하기 위해 아침마다 꼬박꼬박 운동을 하고 있다고 그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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