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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외딴 섬 주민들?

얼마 전 서울 종로구 신영동에 사는 분에게 제보를 받았습니다. 평창동, 삼청동, 인사동은 익숙한 동네였지만 '신영동'은 사실 좀 낯선 동네였습니다. 정확한 위치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전화로 제보 내용을 들었습니다. 제보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보자는 이상하게 나눠진 동(洞) 경계 때문에 신영동 5번지 16세대 주민들이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면, 집에 도둑이 들어 경찰에 신고를 해도 바로 5분 거리에 있는 지구대(파출소)에서 정확한 번지를 찾지 못해 1시간 넘게 헤매거나, 소방서도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해 불이 다 꺼지고 난 뒤에 겨우 도착하거나, 네비게이션에 위치 표시가 안돼 있어서 택배업체 직원들의 짜증을 자주 듣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서울에서, 그것도 도심 한복판인 종로구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참 궁금했습니다. 현장을 직접 보기 전에는 이유를 알 수가 없을 것 같아 다음날 신영동 5번지를 찾아갔습니다. 네비게이션에 위치 표시가 안돼서 제보자와 전화통화를 이어가며 겨우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해보니 얼마 안돼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평면상으로 지도를 보면 신영동과 평창동은 바로 옆에 맞닿아 있습니다. 제보를 접수한 신영동 5번지 16세대도 평면상 지도를 보면 신영동쪽으로 포함돼 있습니다. 하지만 고도상으로 보면 신영동보다 한참 높은 평창동쪽으로 붙어있었습니다. 아예 산으로 분리된 곳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동(洞) 경계가 이렇게 기묘하게 돼있다 보니 주민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경찰이나 소방 서비스 같은 기본적인 치안, 행정 서비스를 제 때 받지 못하고 있고, 택배나 우편물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고해도 제때 오지 못하는 경찰, 소방관을 주민들은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3집당 한 집씩 주민공동 경보 시스템을 설치해놓고 있었습니다. 어떤 집에서 화재나 도난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 그 집에 설치된 경보장치가 울릴 뿐 아니라, 세 집 건너 한 집씩 설치한 모든 경보기가 울리고, 모든 세대에 휴대전화가 울리도록 시스템을 구축해 놨습니다. 또 걸어서 5분 거리에 동사무소가 있는데도 버스로 6정거장이나 떨어진 부암동사무소까지 나가서 민원 처리를 해야 합니다. 쓰레기 수거도 평창동 따로, 신영동 5번지 따로 각각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런 불편 때문에 주민들은 10년 전부터 종로구청에 주소 변경을 신청했습니다. 똑같은 세금을 내는 시민인데 이렇게 기본적인 행정 서비스조차 받지 못해서야 되겠냐는 겁니다. 외딴 섬 주민들도 아니고 말이지요. 하지만 종로구청은 10년째 별다른 조치를 취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주소의 일부를 변경하면 토지대장 등 각종 공문서를 무려 80가지나 바꿔야 하는데 여기에 따르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수많은 민원인을 상대하는 구청 입장에서는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담당자가 한번이라도 현장에 가보기는 했는지 궁금합니다.

20여 년 전 종로의 한 야산에 그어진 동(洞)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21세기 행정의 무능함을 보는 듯 해 맘이 씁쓸했습니다.

 

[편집자주]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 성실한 취재로 생활밀착형 기사들을 많이 전해주는 이병희 기자는 사회1부에서 서울시청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2001년 입사해 사회부 사건팀과 기획취재팀, 정치부 등을 거친 이 기자는 지난 2002년에는 시장의 저가의류에 유명상표를 붙여 비싸게 되파는 시내 유명백화점의 실태를 심층고발해 큰 반향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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