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4 기방난동사건(감독: 여균동, 주연: 이정재, 김석훈, 김옥빈)
여균동 감독은 현역으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중견 감독입니다. 몇 몇 영화에서는 배우로 활약하기도 했고요.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연륜과 통찰이 묻어나는 작품들을 내 놓는 할리우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리들리 스콧 할아버지 감독 같은 사례는커녕 40대만 넘기면 퇴물 취급을 받고 좀처럼 영화를 만들 기회를 찾지 못하는 한국영화계의 척박한 현실에서는 참 드문 사례입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한국영화계에 대자본이 들어오면서 '돈이 하는 말'을 잘 듣는 신인이나 젊은 감독을 선호하는 시스템 탓이 큰 것 같습니다. 암튼 2005년 저예산 예술영화인 [비단구두]에 이어 대규모 상업영화로 만들어진 이번 작품은 독특하고 발랄하고 싶은 의도를 지녔지만 의도한만큼의 결과물을 얻어내지는 못한 사극 액션 영화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부정부패와 가렴주구가 판을 치며 왕조의 쇄락이 시작되던 1724년, 서울 저자거리에서 주먹 하나로 이름을 날리는 천둥(이정재)이 양주파 보스인 짝귀(여균동)와 한판 맞장을 뜨다가 짝귀가 혼절한 채로 깊은 잠에 빠지게 되고, 양주파에 버금가는 세력인 야봉파 만득(김석훈)이네 세력과 갈등을 빚는데 여기에 빠질 수 없는 미녀로 미색을 자랑하는 평양기생 설지(김옥빈)가 있는 구도입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천둥이는 저자거리 서민들의 편에 서는 것이고 야심 많은 만득이는 조정의 고위관리와 결탁해 전국 주류유통권을 쥐고 부를 축적하면서 더 많은 야심을 실현하는데 혈안이 되어 걸림돌은 가차 없이 제거하는 악당중의 악당인거죠. 요즘의 조폭물의 무대를 조선 말기로 옮긴 건데 많은 상상력이 가미되어 의상이나 미술, 말투가 일반적인 사극과 많이 다릅니다.
영화 초반부는 이런 많은 고민을 거친 아이디어들이 쏟아집니다. 고증보다는 상상이 더 많이 가미된 의상, 엽기적인 말투나 욕설, 슬랩스틱 코미디, CG의 비현실성을 도드라지게 강조한 주먹질 액션 장면 등 퓨전 사극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요소들 때문에 흥미를 유발합니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서 복고적이고 신파적인 이야기 구조가 등장하면서 천둥 개인의 울분이나 설지와의 사랑 등 중요한 감정선에 선뜻 몰입되지 않습니다. 앞에 열거한 새로운 요소들과 균형이 맞지 않아 따로 놀기 때문입니다.
액션 장면도 마치 할리우드 영화 [300]처럼 과감하게 CG를 사용했는데 만화의 과장법처럼 침과 피가 튀는 모습과 얼굴 근육이 출렁거리는 표현은 독특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긴박감이나 새로움을 느끼기는 어렵더군요. 주먹으로 싸우는 것이 대부분이고 일부분 칼이 등장하는 설정의 한계 때문인 듯도 싶고요.
배우들의 연기는 좋습니다. 특히 일부러 고르라고 해도 그러기 어려울 만큼 영화 흥행과는 거리가 먼 영화만 골라서 출연했던 김석훈은 이 작품에서 딱 제격인 악역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처음 등장하는 클로즈업 샷에서 보여주는 표정 연기에서부터 남다른 포스로 객석을 압도하며 시작하더니 끝까지 기대에 어듯나지 않게 고른 톤을 유지하며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이정재도 오랜만에 심각하지 않은 배역을 맡아 힘뺀 자연스런 연기를 보여줍니다. 영화로는 [다세포 소녀]에서 처음 봤던 김옥빈도 이제는 경륜이 많이 붙었더군요. 매력과 성깔을 함께 부리는 평양기생에 제격입니다. 혼자서 또는 천둥이나 만득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전혀 꿀리지 않고 제 몫을 톡톡히 해냅니다. 특히 버선에 먹을 묻히고 춤을 추면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볼만합니다.
요즘 젊은이들 취향에 맞게 빠른 전개와 만화적인 화면에 신대철이 맡은 음악까지 조화롭게 어울립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중반 이후의 신파 부분을 - 예를 들면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울다가 웃다가 하는 장면이나 비장한 표정으로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 같은 것 - 앞부분처럼 밝고 경쾌한 톤으로 갔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 여균동 감독도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해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연기를 선보입니다.
** 하이라이트 부분에 설지와 만득이 입고 나오는 화려한 의상은 가슴팍에 상표나 로고가 써있지 않는데도 딱 보니 그 '수~따일'이 '앙 선생님' 의상인 줄 알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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