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라는 이름에는 대학로라는 이름을 다시 얻기까지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법대가 떠나갔어도 법대 앞을 지킨 문방구 아저씨, 문리대가 떠나갔어도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켜 온 학림 다방 사장님, 그리고 그 밖의 이름 모를 술집과 밥집 아줌마 아저씨들의 하나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꿈은 꿈에 그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땅 이름 지명(地名)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그 땅의 흔적, 거창하게 이야기 하면 역사를 담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땅의 역사이면서 그 땅 위에 사는 사람들까지 포함한 공간의 역사다. 그래서일까 어떤 지명 전문가는 '지명은 땅의 혼을 담고 있다'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대학로라는 이름은 과거에 그곳에 대학교가 있었음을 내포하고 있듯이 오래된 지명은 그 이름만으로도 그곳이 과거에 어떤 곳이었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서울 강남의 잠실(蠶室)은 이름 그대로 조선시대부터 누에를 기르던 대표적인 지역이었고, 청계천을 끼고 있는 마장동(馬場洞) 역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 초부터 말을 기르던 양마장이 있었던 곳이었다. 서울 한 복판에 있는 종로(鐘路)는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서울 도성 8대문을 열고 닫는 시각을 알리는 종루가 있어 유래된 지명이다.
또 소박한 식당들이 즐비한 종로의 뒷 골목길 피맛골은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뜻의 피마(避馬)에서 유래됐다. 당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종로를 지나다 말을 탄 고관들을 만나면 행차가 끝날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다. 똥이 무서워 피해가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해가듯 서민들은 그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큰 길 양쪽에 나 있는 좁은 골목길로 다녔다고 한다. 피맛골은 그렇게 서민들에 의해 생겨나고 붙여진 이름이다. 서민들이 이용하다 보니 피맛골 주위에는 선술집 국밥집 색주가 등 술집과 음식점이 번창했다. 원래는 현재의 종로구 청진동 종로 1가에서 6가까지 이어졌지만 지금은 청진동으로 대표되는 종로 1가 교보문고 뒤쪽에서 종로 3가 사이에 일부가 남아 아직도 그 옛날 피맛골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피맛골도 이제 서울시의 재개발이라는 미명아래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허름한 식당 건물, 어지럽게 이어진 전기 줄, 좁은 골목길이 없어지고, 더 넓고 더 반듯하고 더 깨끗한 건물과 길이 생길 것이다. 결국 서민의 정취가 배어있는 그 공간성은 새로운 건물들에 의해 사라질 것이다. 다만 '피맛골'이라는 이름만이 유일하게 남아 그 공간의 역사를 묵묵히 증언할 뿐이다. 흰색은 좋은 색이고 검정색은 나쁜 색이라는 편견이 있듯, 옛것은 나쁘고 새것만 좋은 세상이다.
산업화와 도시화로 옛 모양새를 잃어버린 곳이 하도 많아서 그곳이 그곳 같고 여기나 저기나 별로 다를 바가 없지만 지명은 땅의 옛날 모습을 증언하기도 한다. 고개 현(峴)자를 쓰는 서울 논현동(論峴洞)에는 옛날에 논고개가 있었고, 쇠북 종(鍾)에 바위 암(岩)자를 쓰는 종암동(鍾岩洞)에는 종모양의 큰 바위가 있어서 그 지명이 유래됐다. 설화나 역사적 일화를 품고 있는 지명도 있다. 서울 구로동(九老洞)은 아홉 명의 신선 또는 장수 노인이 살았던 마을이라는 데서 비롯됐고, 서울 오금동(梧琴洞)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는 길에 이 마을에서 잠시 쉬면서 오금이 아프다고 말한 데서 오금동이라는 불리게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왕십리(往十里)도 조선의 도읍지를 정한 무학 대사의 일화가 있다. 태조 이성계의 명에 따라 새로운 도읍지를 찾고 있던 무학 대사는 어느 날 꿈에 한 도인을 만났는데, 꿈에 나타난 그 도인은 무학 대사에게 지금 자고 있는 곳에서 십리를 더 가서 도읍을 정하라는 가르침을 주었다고 한다. 잠에서 깬 무학 대사는 그길로 십리를 더 가서 보니 그곳이야말로 꿈에서 도인이 말한 대로 천하명당이었고, 이성계는 그곳에 궁궐을 지었는데 그곳이 지금의 경복궁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일화 때문에 무학 대사가 꿈을 꿨던 그곳은 갈 왕(往)자에 십리(十里)를 붙여 왕십리라 불리게 됐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지명이 갖는 진정한 역사성은 유기체처럼 그 이름이 사라지기도하고 다시 그 이름이 살아나기도 하는 지명의 변천사에 있는 것 같다. 대학시절 명절 때면 전라선 기차를 타고 고향인 전라남도 광주에 내려가곤 했다.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매 역마다 기관사는 다음 정차할 역을 미리 방송을 통해 알려줬다. 그 중 잊혀 지지 않는 지명 한 곳이 있었는데 바로 전라북도 정주시였다. 분명히 내 기억에 '다음 역은 정주'라고 했던 곳을 어느 해부터인가는 정주라고 하지 않고 정읍이라고 방송을 하는 것이었다. 훗날 알게 됐지만 그곳은 옛적부터 정읍이라고 불리다가 1981년에 시로 승격되면서 정주시라고 지명이 바뀌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정읍은 본래의 지명을 잃고서 1995년 1월 다시 정읍이라는 이름을 되찾을 때까지 10여년 넘게 정주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남해안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경상남도 통영시도 정읍시와 비슷한 지명의 변천사를 갖고 있다. 통영 역시 예전부터 원래 통영이었다가 역시 시로 승격되면서 이순신 장군의 시호인 충무공을 따서 충무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1955년부터 충무시가 된 통영은 그 뒤 무려 40년 동안 충무라고 불리다 1995년에야 비로소 본래의 이름인 통영을 되찾았다. 얼마 전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이나 시인 유치환 선생 등이 통영 출신인데, 어느 날 갑자기 당신들의 고향이 통영이 아니라 충무로 바뀌었을 상황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난다. 마치 홍길동이 아버지가 있음에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통영이라는 멀쩡한 고향을 놔두고 난데없이 충무를 고향이라고 해야 했을 상황을 생각하면 말이다. 다행히 그분들 뿐 아니라 통영을 고향으로 둔 많은 분들이 원래의 고향 이름을 찾았지만, 40년 동안 충무라고 불리는 동안 그 지역의 이름에서 유래된 충무 김밥만큼은 통영김밥이라고 다시 개명되지 않고 여전히 충무김밥으로 남아있다. 충무김밥은 80년대 초반 여의도 광장에서 펼쳐진 전국 음식 대회에서 처음으로 TV를 통해 소개됐는데 그 때 김 따로 밥 따로인 이 독특한 김밥을 당시 충무시의 이름을 따서 충무김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원래부터 특정한 이름이 없었던 김밥이었기에 김밥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충무김밥이 본디 이름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굳이 그 충무김밥마저 통영김밥이라고 하지 않고 여전히 충무김밥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명이 본디 이름을 되찾은 경우는 그래도 다행이다. 우리나라 지명중에는 여전히 본디 이름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불행한 지명들이 있다. 바로 일제 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지명이 본디 이름을 힘없이 잃게 된 경우가 그렇다. 일제는 우리나라 지명 가운데 왕(王)자가 들어간 곳은 일본(日) 왕(王)을 상징하는 왕(旺)으로 바꾸고 또는 천황을 상징하는 황(皇)으로 바꿨다. 그래서 계룡산의 천왕(王)봉은 1911년 일제의 창지 개명으로 천황(皇)봉으로 바뀌었고 강원도 정선에 있는 가리왕산과 설악산 토왕성 폭포도 왕(王)자가 왕(旺)자로 바꿨다.
일제가 우리 땅의 지명을 바꾼 이유는 땅이 갖고 있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 그 땅의 이름을 잊으면, 마치 고유 언어가 없어져야 비로소 그 민족이 사라지듯이, 스스로 그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광복이 되고 일제 청산의 세월이 흘렀어도 본디 이름을 되찾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서울에 있는 북한산은 일제 강점기 시대를 거치면서 원래 삼각산(三角山)이라는 이름을 아예 잃어 버렸다. 현재의 북한산은 팔도군현지도와 해동지도, 광여도 등 옛 고문서에는 북한산이 아니라 모두 삼각산으로 적혀있다고 한다. 지명의 변천사 이면에는 이렇게 정치적인 격동의 수난사가 서려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아직도 지명의 수난사가 계속되고 있는 땅이 있다. 바로 우리 땅 독도다. 얼마 전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라는 이름 옆에 일본이 주장하는 이름인 다케시마라는 이름을 병기해 놓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논란이 됐다. 재외동포들이 나서고 네티즌들이 나서고 정부가 나서는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미국 정부가 다시 다케시마라는 이름을 삭제하고 독도라고 원상복귀 시키긴 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독도라는 지명보다는 리앙쿠르라는 프랑스 이름이나 다케시마라는 일본 이름이 더 알려져 있다는 엄정한 현실을 우리는 알게 됐다. 또 독도 문제가 너무도 커서 다른 지명의 문제는 크게 다뤄지지 않았지만 그 미국 지명위원회에 규정된 우리 나라 지명들이 일본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 또한 심각한 일이다.
미국 지명위원회의 해외 지명 데이터 베이스인 지오넷에서 우리나라 수도인 서울을 찾아보면 일제 시대 때 쓰였던 '케이조'(경성-京城)이란 이름이 버젓이 별칭으로 함께 등재돼 있다는 것이다. 또 한강은 '간고' 혹은 '난간고', 청계천은 '세이케이센', 청량리역은 '히가시게이조'라는 식으로 서울 시내 주요 지명 역시 일제 시대 이름이 함께 올라와 있다고 한다. 광복이 된 지 수십 년이 흘렀고 일본에 대한 나쁜 감정을 일부러 가질 필요 또한 없지만 미국 지명위원회에 기재된 우리 땅의 이름은 우리 민족의 아픈 식민지 역사를 아직도 엄연한 현실로 기록하고 있다. 땅의 이름을 빼앗기는 것은 단지 그 이름만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의 역사를 빼앗기는 것이고, 땅의 이름을 되찾는 것은 그 땅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와 역사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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