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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뇌관, 강만수 장관의 '입'

- 최경환 한나라당 의원
"(종합부동산세 위헌소송과 관련해) 대체로 어떤 판결을 예상하고 있습니까?"

-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헌재와 접촉했지만 확실히 전망할 수 없습니다.
일부는 위헌 판결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 한 마디에 나흘째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던 국회 대정부질문은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났다. 강 장관의 발언에 대해 야당 의원들은 사법부가 유린당했다며 격렬히 항의했고 여야 원내대표들이 나서 머리를 맞댔지만 결국 본회의는 정회 끝에 파행됐다.

하지만 심각한 분위기 속에 여야 원내대표 회담이 진행되고 있던 그 때, 본회의장 앞에서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과 함께 서 있던 강만수 장관의 얼굴은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당시 강 장관의 표정에서 받은   일감은 '뭐, 그런 걸 갖고 그렇게 부산들을 떠나. 정치인들이란...'이라는 느낌이었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는 종합부동산세 위헌소송이 진행중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재판 결과에 따라 종부세는 사실상 존폐가 갈리게 된다. 지난 달 종부세 부과기준을 현행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조정하는 정부 개정안을 놓고 여야는 물론 여당 내에서조차 의견이 갈릴 만큼 논란이 컸다. 이것만 봐도 재판 결과가 갖는 폭발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판결은 전적으로 사법부가 법과 양심에 따라 해야한다. 그외의 어떤 것도 재판결과에 영향을 미쳐선 안된다. 때문에 재판이 진행중인 사안은 언론은 물론 국회에서조차 관련 발언을 삼가는 게 통례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강 장관의 발언은 아예 대놓고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시인하는 듯한 내용이었다.

-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세제실장과 담당국장이 (헌재가) 종부세 관련 통계를 요청해서 제출하고...
세대별 합산은 위헌으로 갈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헌재의 어느 분을 만났다고 들었습니까?"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주임재판관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주심재판관을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아예 주심재판관..."

이 대화 내용대로라면 위헌 소송의 당사자인 행정부가 우리나라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주심재판관을 직접 만나 자신들의 입장을 개진하고 재판결과까지 미리 들었다는 것이다. 사법부와 협의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는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기획재정부측은 서둘러 장관의 '말 실수'라며 진화에 나섰다. 재정부는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종합부동산세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헌법연구관 면담을 통해 정부의견을 설명한 것을 강 장관이 답변하는 과정에서 '잘못' 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강 장관이 대정부질문에서 '헌재와 접촉'했다고 말한 것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등 실무자가 지난달 23일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헌법연구관을 면담하고 종부세 의견서 제출의 배경을 설명한 것을 말한 것이라면서 어떤 형태로든 헌법재판관을 접촉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였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답변에 책임을 져야할 국회 본회의장에서 종부세 논란의 분수령이 될 위헌 소송을 마치 사법부와 조율해 처리하고 있는 것처럼 말한 만큼 이를 그대로 넘어간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일 상황이었다.

민주당은 진상조사위 구성을 요구하며 본회의장을 떠났고 애꿎은 여당 원내대표만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는 '또 강만수 장관이냐'라는 탄식과 함께 퇴진론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여권의 한 핵심 의원은 강 장관이 미국과의 줄다리기 끝에 받아낸 통화 스와프 300억달러 가운데 290억달러를 '말 한 마디로' 전부 까먹었다고 말했다. 


 강만수 장관의 '입'에서 튄 불똥은 사법부도 떨게 만들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7일 공식입장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다. 강 장관의 발언이 헌법재판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우려를 자아낼 수 있는 사태를 초래한데 대해 심각한 유감의 뜻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종부세관련 기존 입장을 변경하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세제실장 등 기획재정부 관계관이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방문해 그 경위를 설명하고 의견서를 제출했을 뿐이며 헌법재판소는 기획재정부측에 방문을 요청하거나 자료제출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방문 당시 재판결과와 그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바가 전혀 없음은 물론 그러한 사실이 주심재판관에게 보고된 바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의구심을 가라앉힐 수 있을지 노심초사해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평소 재판사항은 선고에 앞서 철저히 '비밀'을 지켜왔는데 강 장관의 발언으로 자칫 헌재가 판결내용을 행정부에 귀뜀해줬다는 오해를 사게 될 경우 헌재의 공정성과 독립성에 치명적 손상을 입을지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동시에 뒤흔든 강만수 장관의 '입'도 '입'이지만 퇴진론이 다시 일 만큼 큰 물의를 일으키고도 사과보다는 자기 해명에 더 급급해 보이는 모습이, 강만수 경제팀에 대한 불신을 넘어 경제위기를 맞은 정부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편집자주] 예리한 시각과 꼼꼼한 취재가 돋보이는 남승모 기자는 2000년 SBS 공채 8기로 입사해 사회부,경제부를 거쳐 정치부 정당 출입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특유의 적극성으로 활발한 현장취재를 통해 복잡한 정치 현장의 맥을 짚어주는 기사들을 전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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