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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위기 완화…'낙관은 일러'

10월 한 달간 글로벌 금융위기의 공포에 짓눌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국내 금융시장은 이달부터 해빙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달 말 한국과 미국의 통화 스와프 협정 발표 이후 곳곳에서 해빙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한국이 '달러 우산' 속에 들어간 뒤 국내 은행들을 바라보는 외국의 불안한 시선들도 달라지면서 한국에 조금씩 손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 등 세계 각국의 유동성 공급 조치로 국제 자금시장에서 돈이 돌기 시작하면 국내 은행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달러 가뭄'도 해갈될 전망이다.

국내 원화 단기자금 시장에도 숨통이 트이고 있다. 이달 7일부터 한국은행이 환매조건부채권(RP) 대상에 은행채를 편입하면 은행들의 원화 유동성 문제는 사실상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한 달간 폭등, 폭락의 진기록을 쏟아내며 공황 상태에 빠졌던 외환시장과 주식시장도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금융위기보다 더 큰 실물경제 침체라는 악재가 도사리고 있어 낙관하기는 이르다. 실물경제가 안정되지 않는다면 금융시장은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글로벌 신용경색도 풀리지 않고 있어 국내 금융시장에 대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달러가뭄 해소 조짐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의 달러 사정은 개선 조짐이 뚜렷하다.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정부의 은행채무 지급보증, 달러 유동성 공급 등 전방위적인 조치들이 쏟아져나오면서 약효가 발휘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리스크도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도 최근 국민,우리, 신한, 하나, 외환, 우리금융지주, 신한카드 등 7개 금융기관들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대상에서 해제했다. 정부의 지급보증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3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이 체결 등으로 외화 유동성 위험에 대한 우려가 해소된데 따른 것이다.

한국은행이 매주 정례 입찰을 통해 외화자금 시장에 달러를 풀고 있고 정부도 수출입은행을 통해 달러를 공급한 점도 달러난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

은행들도 올 연말까지는 외화자금 사정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은행 최영한 자금담당 부행장은 "기존에 외화를 선제적으로 조달해 놓았고 필요할 경우 한은의 경쟁입찰 등에 참여하면서 외화를 조달할 수 있어 연말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자금 담당자도 "아직까지 기간물은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지만 한국에 대한 신뢰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하루짜리 단기차입에 의존했던 은행들은 속속 기간물 차입에 성공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10월중 미국계 은행으로부터 2주짜리 5천만 달러를 차입한 데 이어 영국계 은행으로부터도 1년 만기로 5천만 달러를 빌렸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각) 뉴욕지점에서 3개월 만기로 2천만 달러를 와코비아 은행에서 차입했고 외화채권을 발행해 미화 4천500만 달러를 조달하기도 했다. 신한은행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업어음(CP) 직접 매입대상에 포함돼 8천만 달러를 조달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장기화하면 또다시 달러난에 봉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시중은행 자금담당 부행장은 "국내 은행에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여유를 되찾아야 본격적으로 달러가 돌 수 있다"며 "개선 여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또다른 은행 관계자도 "글로벌 금융위기 사태가 오래가면 적극적인 펀딩(자금조달)은 어려울 것"이라며 "내년까지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은은 이달 중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에 최종 사인한 뒤 필요할 경우 달러를 인출해 사용할 계획이다. 이광주 한은 국제담당 부총재보는 "통화 스와프는 일종의 `예비군'"이라며 "자금시장 사정을 봐가며 인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원화 `돈맥경화' 완화될 듯

국내 채권시장에서 단기자금 경색 현상도 완화되고 있다. 금융감독당국의 원화 유동성 비율 제도를 개선한 데다 한은이 단기자금 시장을 겨냥해 10월말 1조원의 유동성을 공급했기 때문이다.

한은이 오는 7일부터는 RP대상에 은행채를 편입하게 되면 자금 흐름은 더 나아질 전망이다. 은행채가 한은의 RP대상에 들어가면 은행채의 상품성이 좋아지고 수요가 많아져 결국 발행도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만기 3개월인 은행채 금리는 리먼 브러더스 사태 직후인 9월16일 5.63%에서 10월20일 6.30%까지 치솟았으나 31일에는 6.11%로 낮아졌다. 만기가 같은 3개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도 급락해 모처럼 5%밑으로 떨어졌다.

한은 관계자는 "지금 크레디트물 고금리 채권을 사는 사람이 이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레디트물은 회사채와 은행채, CD, CP 등으로 한은의 각종 유동성 공급조치가 효과를 발휘하면서 채권금리가 하락할 것(채권값은 상승)이라는 전망에 근거한 것이다.

오는 7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 금리를 추가로 내린다면 채권 금리 하락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유동성 비율이 완화되면서 자금에 대한 가수요가 많이 사라지고, 한은이 은행채 매입에 들어갈 경우 원화 유동성 문제는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91일 물짜리 장기 자금을 공급하는 등 이례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는 한은은 앞으로도 기간, 대상, 규모 등을 조합해 다양한 방식으로 유동성을 적기에 공급, 금융시장 불안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다. 필요하다면 RP방식이 아닌 은행채 단순 매입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외환.주식시장 불안 진정될 듯..외국인 관건

외환시장과 주식시장도 10월보다는 안정된 모습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원.달러 환율의 경우 지난달 28일에는 10년7개월 만에 최고치인 1,467.80원까지 치솟은 뒤 월 말 1,291.00원으로 급락하는 등 외환위기를 방불케 할 정도의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달러 발행국인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로 국가 부도 위험성이 사실상 사라진 데다 정부의 지급보증으로 은행권 차입도 활기를 띨 수 있기 때문에 환율의 변동성이 완화될 것으로 관측했다.

경상수지가 10월 흑자로 돌아서고 연말까지 이런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이 주식 매수세를 지속하지 않는 한 환율 하락세가 장기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경상수지가 뿐만 아니라 자본수지도 유입초를 보이면서 국제수지 전체가 흑자를 보여야 환율 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건설업체의 부도설 등 국내 불안요인이 도사리는 점도 환율 변동성을 키울 수 있는 요인이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금융연구실장은 "4분기가 계절적으로 수출 호황기여서 환율이 지난달보다 안정될 수 있겠지만 이달 받을 달러를 미리 내다 판 수출업체들도 있어 환율 하락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며 "통화스와프 협정이 외환위기 가능성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겠지만 당장 외화가 부족한 시장 수급에 변화를 줄 요인이 아니므로 환율이 당분간 급등락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투자자는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 소식이 전해진 이후 10월29일부터 사흘 연속 매수세를 나타냈으며 코스피지수도 1,100선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추세적으로 주식 매수로 돌아섰다고 낙관하기는 이르기 때문에 당분간 국내증시도 외국인의 투자 패턴에 따라 출렁일 가능성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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