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가 첫날 열렸습니다. 새 정부 들어 워낙 많은 교육 문제들이 쟁점으로 부각됐고 교육에 대한 철학과 이념에 따라 여야의 입장이 분명히 갈리기 때문에 매우 뜨거운 분위기로 진행되리라 예상했습니다. 막말로 싸우고 고성을 내는 추태를 부리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정책에 대해 가열찬 논쟁을 통해 여야가 더 좋은 대안을 수렴해내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대도 했습니다.
- 여당 "역사교과서 편향성", 야당 "사분위 문제"에만 매진
그런데 막상 교과부 국감 현장에서 보게 된 모습은 그런 기대와 영 딴판이었습니다. 뭐랄까… 여야가 서로 다른 링에 서서 허공에 대고 헛손질하는 모습이랄까. 여당 의원들은 거의 모두 역사 교과서의 편향성 문제를 빼놓지 않고 한마디씩 거론했습니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는 북한 역사 교과서와 시각을 같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같은 당 김세연 의원은 증인과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한종 교원대 교수(금성출판사 근현대사 주저자),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국사편찬위 위원), 이상갑(2002년 근현대사 교과서 검인정 당시 교육부 주무 국장), 김상열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을 쭉 앉혀놓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은 대한민국에 있나, 북한에 있나?', '우리의 역사가 자랑스러운가, 부끄러운가?' 등 초등학생들에게나 물어볼 법한 사상 검증성 질문을 한 뒤 돌아가며 대답하게 하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은 이런 역사 교과서 편향성 문제에 대해 각을 세우기 보다는 사학분쟁조정위(사분위) 문제에 일로매진했습니다. 안민석, 김영진, 김진표 의원 등 교육에 대한 당내 에이스들이 돌아가며 최근 있었던 교과부의 임시이사 재파견 시도를 따졌습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조선대, 영남대, 세종대, 상지대 등 오랫동안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던 문제 사학들을 사분위가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려는데 교과부가 이를 돕기는 커녕 사분위와 협의도 없이 임시이사를 다시 파견하려고 각 단체에 추천 공문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교과부는 해당 학교들의 분쟁이 쉽게 해결되지 않아 전임 임시이사의 임기가 이미 끝났는데도 정이사 체제 전환을 빠른 시일내에 이뤄낼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시적으로 임시이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의견을 낸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교과부의 설명도 썩 시원스럽지는 않습니다만 어떻든 여당과 제1 야당인 민주당의 공격 포인트는 이렇게 서로 전혀 달랐습니다.
- 방과후학교·고교 다양화 문제 등 당면과제는 피상적 논의에 그쳐..
거대 여당과 제 1야당이 원 포인트 공격에 매달리다보니 여타 여러가지 교육 현안들은 전혀, 단 한번도 논의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방과후학교·수준별 이동 수업 등 민감한 내용을 포함한 각종 학교 자율화 문제도, 지난 연말부터 시끄러웠던 영어 공교육 강화도, 평준화 해체 논란을 빚고 있는 자율형 사립고를 비롯한 고교 다양화 문제 등등 우리 학생과 학부모가 그토록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교육의 당면 과제들은 매우 피상적으로 언급되고 말거나 아예 묻혔습니다.
이런 모든 일보다 역사 교과서의 편향성 문제나 사학분쟁조정 문제가 훨씬 중요해서일까요? 많은 선진국들은 역사 교과서 전체를 일절 검증과정 없이 자유롭게 내도록 하고 학생과 학부모, 학교의 선택에 맡기고 있습니다. 현명한 대중이 말도 안되는 교과서는 알아서 퇴출시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죠. 우리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을 그렇게 믿기 어려운가 봅니다. 다른 많은 교육 문제를 다 제쳐두고 이 문제에만 매달리니 말입니다. 사학분쟁조정은 중요하죠. 특히 그 학교에서 공부하거나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그렇죠. 하지만 이 문제가 국민 대다수가 연관된 다른 교육 문제들을 우선해서 국감일 하루 내내 매달려야할 일인가요? 사분위 위원장을 불러 '소신을 갖고 하라'는 둥 무익한 입씨름을 할 것이 아니라 확실한 증인을 불러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면 되는 것 아닌가요?
- 올해 국감도 '무용론'으로 마무리?
항상 국감이 끝나면 후렴구처럼 무용론이 나옵니다만, 이번 국감도 그런 수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첫날 모습만으로는 심히 걱정이 됐습니다. 설사 언론에 부각되지 않고, 국감 스타로 명성을 떨치지 않더라도 정말 우리 교육에 핵심적인 사안들을 놓고 건설적이면서 실제 도움이 되는 수준 높은 의견을 주고 받는 쿨한 국감을 하는 것이 더 보람 있고 소중하지 않을까요? 밥 먹어야 배부르다 수준의 뻔한 주문을 매년 되풀이 하는 우리 기자들의 자괴감도 여러 의원님들 부디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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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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