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비정규직 문제, 고령자 취업 문제, 여성 취업 문제... 노동시장의 현안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기획된 일자리 시리즈. 취재를 위해 지난달 중순, 8박 10일에 걸쳐 스웨덴과 네덜란드를 방문했습니다.
산업이 집적화, 고도화되면서 새로운 일자리를 무한정 늘리는 일은 이제 불가능해졌습니다. 정부가 신규 일자리 창출 목표를 60만 개에서 다시 30만 개로 낮춰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최근 몇 개월의 실적을 보면 목표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건설경기를 개선해 단기 일자리를 늘리고, 각 회사에 사람 더 뽑으라고 독려하는 등 경제부처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지만, 아쉽게도 일자리는 앞으로 급증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산업 구조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구조적 요인'도 있고,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경기 침체도 큰 몫을 하기 때문이지요.
모두가 어려운 상황인데, 애로사항은 전혀 해결해주지 않으면서 '너희들 사람 좀 더 써라' 하는 얘기가 먹힐 리 없습니다. 건설 수주로 만들어내는 일자리 역시 단기 근로자만 확 늘린다는 점에서, 길게 보면 바람직하지는 않고요.
"일자리 새로 만드는 게 어렵다면, 있는 일자리를 나눠라"
선진국들의 해법은 간단했습니다.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게 어렵다면, 있는 일자리를 나누자'는 겁니다. 일자리를 어떻게 나눌까, 잘 와 닿지 않으시죠?
스웨덴과 네덜란드 등에는 파트타임 근무(part-timer), 즉 '시간제 근로'라고 불리는 근무 형태가 존재합니다. 쉽게 생각하면, 한 사무실에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2명씩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일자리를 나누는 방법은, 직급과 하는 일이 완전히 같은 A과장과 B과장이 번갈아 격일로 근무하든가, 아니면 하루에 일을 나눠서 4시간씩 일하든가, 하는 식입니다. 급여는 당연히 혼자 1주일 내내 일하는 것보다야 낮을 겁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으니 좋고,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일하니 기업도 좋고, 개인은 자유시간이 많아서 좋고, 모두가 만족하는 형태라 하네요. 물론, 모든 직업이 이처럼 듀얼(dual) 시스템으로 가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시간제 근로는 노동시장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각종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오래 일하기 힘든 고령자들의 재취업에도 이 '시간제 근로'는 큰 도움이 됐지만 무엇보다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결혼 이후 임신과 출산, 육아 문제 때문에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그만두거나, 고민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모성보호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과 지원이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황이 좋지 않은 곳이 많기 때문이지요.
스웨덴에서 얼마 전 아이를 낳고 복직한 여성 근로자를 만났습니다. 스웨덴의 출산,육아 휴직 기간은 최대 18개월. 쉬는 동안 정부에서 수당을 받습니다. 여성 근로자가 쉬는 동안 회사는 다른 시간제 근로자를 고용해 업무 공백을 메웁니다.
휴직했던 여성 근로자는 복직 이후에도 상사와 협의해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는 하루 4시간만, 또는 1주일에 이틀만 근무하기로 하고 나머지 시간에 가정을 돌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남편도 똑같이 휴직과 근로시간 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고용정책의 목표를 훌륭하게 달성하고 있었습니다. 근로시간은 자유롭게 조정하는 대신, 시간에 비례해 급여를 받습니다. (가계 수입을 고려한다면 무작정 조금만 일할 수는 없겠네요.^^)
"여성 일자리 늘어나는 이유? 남성들보다 일 잘하기 때문에"
2006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53%... 겨우 절반을 넘는 수준이지만 덴마크와 스웨덴 등은 70% 이상, 네덜란드는 68% 정도로 높습니다. 특히 네덜란드는 경제 활동을 하고있는 여성의 74%가 시간제 근로자들입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대로 노동시장에 연결되지 못하면, 교육에 쓰인 사회적 비용과 훌륭한 인재들이 아깝게 버려지는 셈이 됩니다.
스웨덴의 한 기업 인사담당자를 찾아간 길에, "왜 지속적으로 여성근로자 비중을 늘리려고 하느냐?"라는 질문을 했더니,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 데다, 여성들의 성적이 갈수록 남성을 능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또 "한 성별만 있는 것보다 남녀를 비슷한 비중으로 함께 일하게 하면 업무 효율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농담 아닌 농담도 곁들이더라고요.
물론 시간제 근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전제돼야 합니다. 구조조정이 쉽게 하는 고용 유연성 확보, 임금수준 합의, 근로시간 단축, 등에 대한 노,사,정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스웨덴 인구 9백만, 네덜란드 인구 1천5백 만 명에 불과하니 인구가 훨씬 많은 우리나라가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고 기존 근로자들의 많은 양보도 필요하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정착만 된다면 좋은 점이 더 많지 않겠나, 생각도 해 봤습니다.
덧붙임. 아이 둘을 낳아 기르고 있는 직장여성에게 길거리 인터뷰를 시도하면서 "일 때문에 출산 문제를 미루거나 육아를 고민해 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아니, 두 가지가 무슨 상관이 있나? 왜 고민을 하냐?"라며 의아하게 되물어 물어본 저를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
→ SBS 연속기획 시리즈, 일자리 선진국을 가다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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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백화점과 할인점을 누비며 알짜 생활정보를 전해주던 남정민 기자가 지금은 기획재정부와 공정위를 출입하며 굵직한 경제 뉴스들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2002년 SBS 공채로 입사한 남 기자는 여기자 특유의 꼼꼼한 취재에 해맑은 외모로 개인 블로그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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