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계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해 아직 반신반의하는 모습입니다. 수치로 드러나는 성적 순서대로 줄을 세운 뒤 1등에서부터 차례대로 상위권 대학 입학하는 지금의 전근대적인 입학 전형 방식보다는 새롭고 더욱 발전된 형태의 입시 모델이라는데는 대부분 동의합니다. 문제는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냐는 부분입니다. 입학사정관제는 각 대학이 자기만의 인재상을 세워 놓고 그에 합당한 선발 방식과 기준을 정해서 자율적으로 입학생을 뽑는 방식입니다. 정량적, 즉 성적에 대한 평가보다는 정성적, 대상 학생의 창의성과 잠재력, 발전 가능성, 배움에 대한 열성과 자질을 살펴보는 방식입니다. 듣기에는 멋있습니다만 창의성과 잠재력 등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아니, 대학은 어떤 방식으로든 기준을 세워 평가를 한다지만 그 결과를 수험생들에게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요?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유별나게 교육열과 대학 진학 욕구가 높은 나라에서 말썽과 분쟁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런 저런 이유로 각 대학들이 입학사정관제의 우수성을 인정하면서도 선뜻 채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건국대가 올해 대단히 도전적으로 입학사정관제 선발에 나섰습니다. 수시 1학기 리더쉽 선발 전형이나 자기추천 전형, 예술특기자 전형 등 90명을 뽑는데 전원을 입학사정관제 방식을 적용한 것입니다. 특히 자기추천 전형에서는 대학 최초로 1박2일의 합숙면접까지 실시하며 4차례에 걸친 구술과 토의, 면접 과정을 거쳐 신입생을 선발했습니다. 저는 무척 궁금했습니다. 과연 기존의 전형에서와는 뭔가 다른 학생들이 뽑혔을까? 선발된 신입생들이 남다른 창의성이나 잠재력, 독창성을 정말 가졌을까? 마침 지난주 이들에 대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있어서 직접 찾아가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학교측에 부탁해서 3명은 따로 시간을 내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직접 면접을 해보는 것이죠.
처음 만난 학생은 인천에 사는 조아라 양이었습니다. 5백 시간 넘는 자원봉사 활동 경력을 높이 평가받아 선발됐습니다. 100 시간 자원봉사활동 경력도 찾아보기 어려운데 5백 시간이라니, 정말 어마어마하죠. 단순히 대학 입학에 필요한 자원봉사 활동 경력을 얻기 위해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됐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자원봉사를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학교 선생님이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자원봉사 활동에 나섰던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 유익한 활동을 하는 것이 즐거워졌다고 합니다. 조 양은 "공부하다 잘 안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으면 자원봉사로 풀었다"고 합니다. 자원봉사가 컴퓨터 게임이나 친구들과의 놀이보다 더 즐겁웠다는 말이겠죠! 중, 고등학교 때부터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환경단체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나 프로그램을 보고 찾아다니며 활동했다는군요. 그러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과 지식, 경험을 키우고 이 분야에서 소명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환경공학부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어떻습니까. 단순히 학교에서 교과서나 참고서적을 통해 환경에 대한 지식을 쌓고 자신의 성적에 맞춰서 입학하는 학생보다 훨씬 더 전공에 대한 열정과 목표의식을 갖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나요.
논산시 원성면 출신의 이의정 양도 인상 깊었습니다. 이 양이 살던 마을은 논산시에서도 버스로 30분 이상 시골로 들어가야 하는 농촌으로 버스가 40분에 한대씩 다닌다고 합니다. 그러니 학교에 통학하기 어려웠고 논산여고에 들어가서 줄곧 기숙사 생활을 했답니다. 경제적 형편이나 기숙사 생활 환경 때문에 학원이나 사교육은 물론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양은 학교에서의 방과후학교나 기숙사에서 친구, 선배들과의 생활을 통해 학업에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 양은 이번에 생명공학부에 다니게 됐는데요. 평소 수박을 비롯해 각종 농작물을 키우시는 부모님을 도우면서 주변의 수많은 풀과 꽃, 나무, 각종 생명의 신비에 대해 관심을 키웠다는군요. 그래서 이 양에게 생명공학은 단순히 과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평소 관찰하던 현상이요, 궁금해하던 비밀이고, 삶을 영위하는 터전이었습니다. 이 양은 생명공학에 대해 공부하면서 기회가 되면 의학전문대학에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비록 사교육을 통해 영어와 수학이 단련된 다른 학생들에 비해 학과 실력이 조금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만, 생활 속에서 얻은 과학에 대한 관심과 정열은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도 남을 것이라 믿어졌습니다. 적어도 생명의 소중함을 체화했다는 점은 좋은 의사로서의 제1 덕목을 갖춘 것 아니겠습니까!
서울에서 생활한 양영경 양에게 학교는 국, 영, 수 등의 교과목만 배우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양영경 양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급회장과 전교학생회 간부 역할을 꾸준히 맡아왔고 고교 3년 동안은 학급회장에 이어 전교 부회장, 전교 회장직을 수행하며 조직을 운영하고 학생과 학교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삶의 지혜를 키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양 양은 자신에게 학우나 선생님들이 "넌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했으니 대학은 그런 전형으로 쉽게 갈 수 있지 않겠니"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싫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공부시간을 쪼개고 내 시간을 희생하면서 학생회 활동을 한 이유가 대학 입시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학우들을 위해 뭔가 사업을 하고 그것이 현실화 돼서 학교와 학급, 학우의 생활이 개선되는데서 얻는 보람이 특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랍니다. 양 양은 정치학과에 입학할 예정입니다. 정치라는 학문이 자신이 학창생활에서 몸으로 배우고 체득한 각종 지혜를 학문화한 분야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정치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정치라는 학문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높은 비전과 이상을 가져다줄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각오를 밝힙니다.
제가 만나 같이 얘기해본 3명, 또 만나지 못했지만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자유롭게 의견을 밝히는 입학사정관제 전형 합격자들은 밝고 건강했습니다. 공부에 찌들기보다는 자신의 삶 속에서 뭔가를 찾고 얻고 이루려는 도전의식이 빛났습니다. 그래서 건국대의 올해 첫 실험은 성공적이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비록 3천2백명의 전체 입학생 가운데 90명이라는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입학사정관제 선발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경험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선발 숫자가 90명이 아니라 천명, 2천명에 이르게 되면 과연 올해처럼 선발과정에 철저한 검증과 확인이 가능할지, 90명은 너무 뻔히 들여다보여 정실이 전혀 개입되지 않았다지만 대규모로 선발할 때에도 그런 부정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지, 입학사정관제에 들어가는 막대한 선발 비용을 어느 규모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등등입니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했을 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교육적 성과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시험 성적에만 매달려 인성이나 개성은 무시 당한 채 학교가 아닌 학원 생활을 하는 우리 학생들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공부 기계가 아니라 생활 속에 진리와 지혜를 찾는 진짜 학생이 될 수 있습니다. 자원봉사나 자연활동에 사교육은 필요하지 않을테니 사교육의 폐해도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무엇보다 입시에 짓눌려 왜곡되고 변질되고 있는 현재의 공교육이 참되고 바람직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건국대가 이번에 찾아낸 가능성을 굳게 부여잡고 입학사정관제를 제대로 키워봐야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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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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