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재연에 대한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면서 코스피지수가 1,400선을 위협받는 약세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이익 수준이나 거시경제 지표, 증시 규모 등이 외환위기 때인 1997~1998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돼 있어 섣부른 공포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거시지표 악화에 투자자들 공포 = 상반기 국내 증시는 미국의 신용위기나 글로벌 경기침체 등 해외 변수에 영향을 받아 약세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이뤄진 급락장세를 불러온 것은 환율, 단기외채, 금리 등 국내 거시지표가 눈에 띄게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 공포를 느낀 개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투매였다.
증시 참여자들을 무엇보다 두려움에 떨게 한 것은 원.달러 환율의 급등이다.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달러당 1,010원대에서 거래되던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가파르게 상승해 3일 장중 1,150원을 넘어섰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말 환율의 초강세를 연상시킨다.
더구나 2003년 말 508억달러였던 단기외채가 올해 6월 말 1천756억달러까지 늘어난 반면 외환보유고는 올해 들어 200억달러 가까이 줄어들어 투자자들에게 `환란' 재연에 대한 두려움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외국인이 올해 들어 주식시장에서 27조원의 자금을 회수한 데다 이번달에 외국인 보유 채권의 만기가 집중돼 있다는 사실도 공포지수를 더욱 높였다.
`단기외채 급증→외국인투자자 자금 회수→원화가치 폭락→금리 급등→기업 연쇄부도→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던 외환위기 당시의 악몽을 떠올린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서 투매에 나선 것이다.
8월29일과 이달 1일, 2일 사흘 동안 개인 투자자들이 팔아치운 주식은 1조원을 넘어선다.
◇ "외환위기 때와는 상황 달라" =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와 지금의 증시 상황은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어 투자자들이 섣불리 공포에 휩싸일 이유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근거로 일단 기업의 이익수준을 눈여겨 보라고 한다.
기업의 주가를 결정짓는 것이 해당 기업의 이익이라고 한다면 국내 기업의 이익 수준은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해 대단한 질적 도약을 이뤄내 증시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에 들어선 1997년 524개 상장기업(12월 결산)의 총 매출은 410조원이었지만 순손실은 2조8천억원에 달했다. 대규모 차입에 의존한 과잉 및 중복투자로 인해 순이익의 대부분을 이자비용으로 까먹은 셈이었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579개 상장기업(12월 결산)의 총 매출은 440조원, 순이익은 30조원에 달한다. 반기 매출이 1997년 한해 매출을 넘어설 정도로 외형이 커졌고 수익성 측면에서도 `A' 학점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증시 규모에서도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만한 변화가 있었다.
1997년 말 시가총액은 71조원에 불과했지만 올해 9월2일 현재 시가총액은 715조원으로 10년 새 10배로 늘어났다. 외국인 보유 비중도 같은 기간 14.6%에서 29.6%로 늘어 선진화된 증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금융불안과 경기침체에도 올해 들어 국내 증시의 일간 변동성이 1.48%로 프랑스(1.59%), 독일(1.53%), 영국(1.50%) 등 선진국보다 낮다는 것은 우리 증시가 그만큼 성숙했음을 보여준다.
거시경제적 측면에서도 질적 개선이 이뤄져 1997년 말 204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고는 올해 8월 말 현재 2천432억달러로 10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외환위기에 대비할 실탄이 그만큼 많아진 셈이다.
증권가의 비관론자로 유명한 이종우 HMC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도 "국내 경제의 성장과 기업 이익 수준의 질적인 도약을 고려한다면 투자자들이 외환위기의 재연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대우증권의 고유선 애널리스트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이 부채 수준을 대폭 낮추고 수익성을 높이는 등 구조조정에 힘써 기업 펀드멘털이 당시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동조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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