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말정말 오랜만에 편지 띄웁니다. 제가 영국 생활 시작한 지도 10개월이 다 돼 갑니다. 1년 예정으로 온 연수였으니, 이제 영국서 지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셈입니다. 아직 논문 쓸 일이 남아있긴 하지만, 강의 듣는 건 이제 끝내고 요즘 열심히 공연 보러 다니고 있습니다. 한국서 공연 취재 다니던 때와 비교하면 그리 공연을 많이 본다고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연수 기간, 되도록이면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공연을 많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얻은 학생 신분을 이용해 싼 표를 사는 것도 큰 재밉니다. 지난해 피아니스트 안스네스와 버밍엄 심포니의 협연을 보고 쓴 글에서 영국 공연장의 학생 할인제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여기는 학생들 마음만 먹으면 저렴하게 공연 볼 수 있는 방법이 많습니다. 한국에서도 벤치마킹했으면 해요.
오늘은 얼마 전 런던에서 본 피아니스트 폴리니의 공연 얘깁니다. '최정상'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그야말로 대가지요.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한 번도 공연한 적이 없습니다. 제 블로그(http://ublog.sbs.co.kr/shkim0423)에도 올린 글입니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영국 공연 소식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연 얘기 말고, 제가 영국서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시면 제 블로그에 놀러오셔도 좋고요.^^
얼마 전 피아니스트 마우리찌오 폴리니의 공연을 다녀왔다.
지난 10일,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열린 독주회였다.
1942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난 폴리니는 그야말로 피아노의 대가다.1960년 쇼팽 콩쿠르에서 18살의 나이로 우승했으니 반 세기 가까이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셈인데, 지금껏 한국에는 한 번도 온 적이 없다.
한국에서 잘 안 알려진 아티스트도 아니고, 한번쯤은 다녀갔을 법한데 왜 안 왔을까.
이유를 추측하다 보니 음악계에는 이런 소문까지 돌았는데, 그건 '열성 공산당원인 폴리니가 한국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연주자를 볼 수 있게 됐으니 내가 영국에 온 덕을 보기는 보는 셈이다.
현장에서 처음 접한 폴리니의 연주는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60대 후반인데 노쇠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를 싹 씻어내는, 진정 대가다운 것이었다.
슈만의 크라이슬러리아나에 이어 쇼팽의 마주르카와 스케르초 1번, 그리고 드뷔시의 전주곡집 1권이 본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이 날 공연이 뒤로 갈수록 더욱 좋았다.
특히 휴식 시간 후의 드뷔시 연주가 압권이었는데, 몽환적이고 세련된 감성, 살짝 살짝 잔물결을 타고 넘는 듯한 리듬감, 명료하면서도 섬세한 타건......
좋은 말은 다 가져다 붙여도 될 듯 했다.
영국에서 내가 본 공연 중에서는 아주 이례적으로 앙코르가 세 곡이나 나왔다.
그만큼 연주자도, 관객도 신이 났던 공연이었다.
마지막 앙코르 곡이었던 쇼팽의 발라드 1번 연주가 끝나자, 객석은 문자 그대로 환호의 도가니였고, 거의 모든 관객들이 아낌없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나는 공연이 끝나는 게 아쉬워 한숨이 나왔다.
로비에서 열린 사인회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몰렸는데, 나도 한참을 기다려 사인을 받았다.
여기서 나는 취재 기자가 아니라 일반 관객의 입장이지만, 사인 받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기자 정신'이 발동해 혹시 한국에 안 오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를 물었고, ’전혀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다.
정치적 신념 때문에 한국에 안 오는 것이라는 소문까지 있는데, 사실이냐’고 다시 물었더니재차 아니라고 한다.
사실 다른 대답이 나올 거라고 예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국에 안 오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얘기를 본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니,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수많은 팬들이 당신을 한국 무대에서 보게 되길 고대하고 있다’고 얘기한 뒤, 사인 받은 음반을 소중하게 안은 채,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폴리니의 이번 공연을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 한 가지는 Young Person's Platform'이라는 좌석등급의 존재다.
인터넷에서 예매할 때는 이런 좌석등급을 보지 못했는데, 공연장에서 보니 피아노 바로 뒤편, 무대 위에 100여석의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연주를 코앞에서 볼 수 있는 명당 자리다. (아래 사진, 빨간 의자)
처음에는 '관계자를 위한 특별석'인가 했었는데, 공연장 직원에게 물어보니 아니다.
아티스트가 허락할 경우 16-25세의 젊은 사람들을 위한 자리로 공연 예매 막바지에 판매를 시작하고, 공연 시작 직전에 일반 관객들에게도 개방한단다.
가격도 저렴하다. 내가 산 중간 등급의 자리는 23파운드였는데 이 자리는 7파운드였다.
기회가 닿으면 꼭 이 자리에서 한 번 공연을 보고 싶다.
비록 음향이 좀 떨어진다고는 해도, 연주자의 표정이나 숨결,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터이니 말이다.
얼마 전에 나는 '스튜던트 스탠드바이' 티켓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러고 보면 영국의 공연장들은 학생이나 젊은 사람들을 위한 제도가 참 다양하다.
영국서 얻은 학생 신분을 맘껏 활용해서 좋은 공연을 많이 보고 가야 할 텐데.
그러려면 논문을 빨리 써버려야겠다는 결론에 또다시 도달했다.
그나저나 폴리니는 내년에 또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독주회를 한단다.
폴리니는 유럽 지역에서 주로 연주를 많이 한다지만, 일본도 가고, 중국도 간단다.
한국에 안 오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하니, 공연 기획자 여러분, 더 늦기 전에 폴리니 할아버지 좀 모셔 오시기를.^^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