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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카메라를 놓지 마라, 난 마이크를 놓지 않을게"

김광현 기자의 중국 대지진 현장취재기…여진 공포 무릅쓰고 '현장 속으로'

※ 8만 명이 넘는 인명피해를 낸 중국 쓰촨성의 대지진 현장에 급파돼 9일 동안 치열한 취재와 함께 영상과 기사를 위성 송고해왔던 SBS 보도국 국제부 김광현 기자가 현장의 경험이 생생하게 담긴 취재기를 보내왔습니다. 화물 트럭을 얻어타고 통신 두절과 여진의 공포라는 악조건 속에 이뤄진 현장 취재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 김 기자의 문장에 잘 녹아있습니다.

외신 기자도 극히 일부만 남아있는 극한의 취재 조건을 무릅쓴 유일한 한국 취재진의 목숨 건 취재 후기, 인터넷 뉴스 연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편집=SBS 인터넷뉴스부)  

가장 피해가 컸던 지역 가운데 하나인 쓰촨성 베이촨은 현장에 도착한 지 나흘째인 지난 24일(토),  이곳에 생긴 거대한 자연호수가 붕괴위험을 맞았다는 내용을 취재하기 위해 들어갔던 곳입니다.

워낙 가는 길이 험하다는 정보를 듣고 출발했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은 채 아침 6시 호텔을 나섰습니다.

가이드는 타지 못한 채 트럭은 출발하고... 

차로 달리길 2시간 30분...하지만 베이촨으로 들어가는 단 하나의 길은 중국 공안이 막은 채 허가받지 않은 차량의 출입을 막고 있었습니다.

중국인들은 허가받은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서로 경쟁하듯 올라타 위태위태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할 수 없이 취재진(저와 카메라기자, 오디오맨, 현지 가이드)은 들어가는 차량에 양해를 구하고 올라탔습니다. 하지만 아뿔싸! 공간이 협소한 탓에 그만 가이드가 타지 못한 채 차는 출발하고 말았습니다.

급히 얻어 탄 차는 옛날 삼륜차와 비슷한 조그만 트럭. 가이드를 제외하고는 중국말을 못하는 탓에 우리는 운전석과 조수석에 타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베이촨"만을 외쳤습니다. 

휘발유가 가득 들어찬 차 안, 휘발유 통 위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중국인들

휴대폰으로 가이드와 베이촨 입구에서 만나기로만 하고 우리는 짐칸에 쭈그려 앉은 채 어서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차에 타면 한국말을 하면 안 된다는 가이드의 사전경고와는 달리 중국인들은 친절했습니다. 생수 한 병씩과 담배를 권하더군요. 그런데 차 안을 둘러보니 재해지역으로 휘발유를 실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휘발유 통 위에 앉은 채 주위에 휘발유 통이 가득 들어찬 차 안에서 담배 피워보신 적 있으십니까?

전 겁이 나서 차마 못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피우더군요. 잠시 야속했습니다.

베이촨으로 들어가는 길은 험난했습니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져 있고 집채 만 한 바윗덩이들이 곳곳에 보였습니다. 오른쪽은 돌산, 왼쪽은 절벽... 여진이라도 생긴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겁을 낼 여유도 없더군요. 어서 가이드와 만나 취재를 무사히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만 간절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베이촨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아뿔싸, 심한 재난지역이어서 그런지 휴대폰이 터지지 않았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취재 허가증 없인 중국 취재진도 통행이 어려워...
막막한 상황 속 위력을 발휘한 영문  프레스 카드

그런데 저쪽에 가이드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달려가 얼싸안았습니다. 일단 안도의 한숨! 하지만 난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입구부터 다시 군인들이 사람들의 통행을 막았습니다. 중국 취재진들이라하더라도 허가증을 꼼꼼이 살핀 뒤에야 들여보내고 있었습니다.

막막했습니다. 취재 허가증이 있을리 없습니다. 정작 저수지에는 가지도 못한 채 여기서 물러서야 하나....그런데 카메라 기자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혹시 이런 게 통할까요?" 지갑에서 꺼내 든 것은 한국카메라기자협회가 발행한 영문 프레스(press)카드. 혹시나 하는 생각에 군인들에게 빨간 글씨로 'press'라고 적힌 카드를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무사 통과! 그 뒤에도 이 영문 프레스 카드는 취재현장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절절한 사연들이 이어지는 인터뷰…눈앞에 펼쳐진 대지진 참상

고도 2천 미터에 위치한 베이촨까지는 입구에서부터 산길을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어들어갈수록 그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큰 산들에 빙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한 마을은 산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상당 부분이 흙에 파묻힌 상태였습니다.

중국내 소수민족인 창족 2만여 명의 보금자리였던 베이촨! 이 가운데 대지진으로 8천 명 이상이 숨졌습니다.

누구와 인터뷰를 하더라도 절절한 사연이 이어졌습니다. 가족을 잃고 전염병과 홍수의 위험을 피해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 대지진의 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베이촨의 중심지에 가까워지면서 시신들을 수습해 커다란 비닐 가방에 넣어 옮기는 군인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됐습니다. 이미 소개령이 내려졌지만 집안 어디엔가 남아 있을 지 모르는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일부 공무원들이 돌아다니며 대피하라고 외치고 다니더군요.

일부 외신기자들의 모습도 보였지만 이 와중에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들은 대부분 중국 CCTV 기자들 뿐이었습니다. 특히 중국 여기자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더군요.

건물이 무너져내리고 땅이 솟아 자동차를 삼킨 장소까지 기어올라가 스탠딩을 하고 있는데 어떤 중국 기자가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어디서 왔냐고 물어봅니다. 한국이라고 말해줬더니 짐짓 놀라는 표정입니다.

한국 취재진으로서는 아마도 이렇게 베이촨현 깊숙이 들어가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카메라 기자가 갖고 있던 영문 PRESS 카드의 위력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이날 취재의 가장 큰 목적은 베이촨을 위협하는 거대한 저수지를 촬영하는 것이었습니다만 눈을 돌리는 곳마다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어 기자로서 무엇하나 그냥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후배인 카메라 기자에게 다짐을 받기도 했습니다. "내가 촬영이나 인터뷰에 욕심을 내더라도 좀 말려 달라"고요. 물론 후배가 욕심을 낼 때면 제가 말리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취재를 무사히 마치고 난 뒤 베이촨을 빠져나오면서 또 한 번 난관에 빠졌습니다. 베이촨을 빠져 나오는 차량이 전혀 없는 겁니다. 할 수 없이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을 섭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마저도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급한 마음에 돈을 달라는 대로 주기로 하고 한 대에 두 명씩 허리를 잡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타이어가 터질 듯 불안한 낡아빠진 소형 오토바이
산사태 현장 속 아슬아슬한 질주…'이러다 죽나보다'

베이촨을 빠져 나오면서 오디오맨과 제가 올라탄 것은 배달용으로 사용하기도 힘든 낡아빠진 소형 오토바이.

제 몸무게가 좀 나가는 탓에 타이어가 터질까 불안불안 했습니다. 저는 중국말로 만만디(천천히)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중국인은 꽤 속도를 내더군요. 더욱이 마주 달려오던 차를 향해 정면으로 달리거나 산사태로 굴러떨어진 바윗덩이를 스치듯 질주해 비명을 몇번이나 질러야 했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이 사람이 왜 이러나, 내가 이렇게 죽나보다"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오토바이에서 내려서 운전자의 얼굴을 본 순간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한쪽 눈은 아예 시력을 잃었는지 검은자가 없었고 다른 눈도 진물이 나와 반쯤 감긴 상태였습니다. 급한 마음에 고맙게 올라타긴 했지만 이런 상태로 두 명이나 더 태운 채 오토바이를 몰았다니...

                       

그 길로 호텔로 달려와서 기사와 촬영한 화면을 송고하고 나니 저녁 7시(한국시간으로는 8시).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상태였지만 이상하게도 배는 고프지 않았습니다.

중국 취재 9일 동안 점심을 먹은 것은 딱 2번, 취재 장소가 청두에서 2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 많아 아침도 여러 차례 걸렀지만 배가 고프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3끼씩 꼬박꼬박 먹고, 한 끼라도 거를라치면 못견뎌했던 것들이 일종의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이런 생각이 오래 가진 못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니 점심시간이 한시간만 늦어져도 배가 고파 못견디겠네요. 역시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임에 틀림없나 봅니다!

취재지시에 다시 강력한 여진이 경고되는 현장 속으로...
차라리 통과가 저지되었으면 하는 은근한 기대도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문화재를 취재하라!" 저에게 취재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왠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바로 전날, 규모 6,7의 강력한 여진이 올 것이란 중국 방송들의 경고로 청두 시민들도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상황. 피해를 본 문화재들을 취재하기 위해선 또다시 청두를 벗어나 진앙지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진 경고로 두장옌으로 가는 도로가 전면 봉쇄됐다는 가이드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두장옌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정도 달렸을까? 정말 도로는 공안에 의해 봉쇄된 상태였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래, 차라리 잘됐다. 최선을 다했지만 안 되는 건 할 수 없지"하는 위안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영문 PRESS카드를 보여주자 그대로 통과시킵니다. 대신 택시를 타고 통과하려던 중국 CCTV 기자 두 명을 태우게 됐습니다.

각각 무전기 한 대씩을 갖고 있던 이들은 다급한 목소리로 누군가와 교신을 나눕니다. 손에는 GPS도 한 개씩 들고 있습니다. 잠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눈치챘는지 한번 보라며 GPS를 넘겨 줍니다. 막상 보니 별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작은 화면엔 지도와 함께 방향을 알려주는 화살표가 깜박입니다.

"넌 카메라를 놓지 마라, 난 마이크를 놓지 않을게"

중국에서는 당 간부나 부유층 자제들만 뽑는다고 알려진 CCTV 기자들인 만큼 두 기자는 영어도 구사할 줄 알더군요. 지금 이런 상황에 두장옌에 들어가는 것이 무섭지 않냐고 물아봤습니다. 기자정신으로 무장된 듯 전혀 무섭지 않다면서 눈을 번뜩입니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후배인 카메라 기자에게 농담반 진담반 말을 걸었습니다. "취재현장에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넌 카메라를 놓지 마라, 난 마이크를 놓지 않을게"   

마음 속에는 아내와 두 아이의 얼굴이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첫 번째로 도착한 유적지는 2천2백년전 대수로인 두장옌(마을 이름도 이 유적지를 따 지어졌습니다).

산 기슭에 위치해 산사태로 돌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건물을 덮친 상태. 우리가 있는 동안 여진이 발생한다면 피할 곳 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촬영을 하고 있던 저희들에게 군인들이 다가와 취재허가는 받았는지를 물으며 어서 나가라고 소리칩니다. 저도 덩달아 카메라 기자에게 어서 찍고 나가자고 재촉을 하게 됩니다. 

두장옌 피해유적지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다른 아이템을 제작하던 도중 카메라 기자가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 전경을 촬영하고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당했습니다. 땅이 패어 있는 곳이 잔디에 가려져 있어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발목이 거의 90도나 꺾였다가 돌아오는 바람에 땅에 드러누워 데굴데굴 구르며 아파하는 후배 기자를 보며 당황한 저도 무슨 정신으로 업고 차까지 뛰어가 근처 병원으로 달려갔는지 너무나 힘들고 고달픈 하루였습니다.

엑스레이 촬영 결과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지만 걸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서 그 카메라 후배는 귀국 때까지 줄곧 휠체어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 [취재기 전문 보기] "차라리 날 막아줬으면"…베이촨을 가다

[편집자주] 김광현 기자는 1995년에 SBS에 입사한 경력 14년의 고참 방송기자입니다. 사회부와 경제부, 시사고발프로 '뉴스추적' 등에서 활약한 뒤 현재는 국제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깊고 차분한 취재로 정도를 걷는 방송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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